등록 : 2015.01.12 20:45

잊지 않겠습니다

디자이너 꿈꾸던 예슬에게

내 딸 예슬이에게.

우리 딸을 보지 못한지, 우리 딸 목소리를 듣지 못하지 9개월이 다되가. 시간은 흘러가고 또 흘러가는데, 엄마와 아빠는 여전히 우리 큰 딸을 기다리고 있어. 오늘은 오겠지, 내일은 오려나, 내일모레는 와주려나? 이렇게 하루하루가 흘러가는데 아무 소식 없는 우리 딸이 왜 이리 원망스럽고 안쓰럽고 불쌍한지….

예슬아, 기억하고 있겠지? 우리 딸은 아마도 기억하고 있을 거야. 엄마 딸이지만 엄마는 늘 우리 예슬이를 볼 때마다 마치 첫사랑을 하는 것처럼 가슴 설레고 두근거렸다는걸. 한날한시도 내 딸을 보며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는걸. 훗날 아주 많은 시간이 흘러 엄마가 우리 딸 만나는 그날이 오면 또다시 우리 딸을 보며 가슴 설렘이 시작되겠지? 엄마는 그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착하고 거짓 없이 자라줬고, 예의바르고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해주던 예슬이가 엄마는 얼마나 자랑스러웠던지…. 엄마 눈에는 늘 아기 같던 내 딸이 꿈을 향해 더운 여름에도, 추운 겨울에도 한발 한발 내닫던 모습에 가슴 뿌듯했단다. 그런 너를 바라보던 엄마의 눈빛을 우리 딸은 잊지 않고 있겠지?

예슬이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이렇게 가슴 저린 아픔이 있다는걸 몰랐어. 마치 상사병에 걸린 사람처럼 오로지 한 사람만을 기다리고 바라볼 수 있는 외 사랑이 있다는걸 우리 딸이 알려주고 저 먼 어딘가로 떠나 버렸네. 열 달 내 품에 품어서 18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했던 내 딸을 지켜주지 못하고 큰 고통과 두려움을 안겨줘야만 했던 이 엄마는 너무나도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죄스럽고 또 죄스럽다.

우리 딸이 불러주는 엄마라는 소리가 듣고 싶다. 우리 예슬이가 말해주는 사랑해라는 말이 듣고 싶다. 가슴 시릴 정도로 우리 딸이 보고 싶지만, 오늘도 엄마는 우리 예슬이 만날 그날을 기다리며 이 밤을 또 보내고 있네. 예슬아 이젠 아무것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말고 우리 예슬이도 힘내는 거야, 알았지? 그리고 잊지 마. 4월16일부터 예슬이의 심장은 엄마와 함께 뛰고 있다는걸. 엄마의 심장 뛰는 한 우리 예슬이의 심장도 함께 뛰고, 늘 엄마와 함께라는걸.

내 딸아. 지금의 기다림은 끝이 아닌 시작의 기다림이 될 거라는걸 이 엄마는 알고 있어. 그날이 오면 그 땐 우리 예슬이 아무한테도 내어주지 않고 오로지 엄마의 딸로 꼭 끌어안고 잃어 버리지 않을게. 우리 이제부터는 시간을 갖고 기다리자. 내 딸 사랑하고 또 사랑해. 뼈에 사무칠 만큼 그립고 또 그리워. 사랑한다. 예슬아. 엄마가. ^^


박예슬양은


4월16일 아침 엄마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집에서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텔레비전에 단원고 학생들이 탄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엄마는 허겁지겁 학교로 향했다. 딸 예슬이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오전 10시12분 엄마의 휴대폰에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예슬이었다. 세월호가 전복(10시17분)되기 5분 전이었다.


예슬이는 울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엄마가 울자 예슬이도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울지 마. 걱정하지 마. 나 꼭 구조될 거야.” 예슬이가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는데 전화가 끊겼다. 5분 남짓의 짧은 통화였다. 전화는 다시 오지 않았다. 예슬이는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 오전 9시37분부터 9시41분까지 배 안에서 친구들을 찍은 동영상을 휴대폰에 남겼다.


예슬이는 4월21일 돌아왔다. 손발이 차가웠다. 아빠는 예슬이가 추울까봐 젖은 양말을 벗겨 발을 만졌다. 하지만 예슬이의 발은 따뜻해지지 않았다.


예슬이에게는 두 살 어린 여동생이 있다. 엄마 앞에서는 언니를 잃은 슬픔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동생은 화장실에서 물을 틀어 놓고 몰래 운다. 하지만 물소리는 울음소리를 모두 삼키지 못한다.


단원고 2학년 3반 박예슬(17)양의 꿈은 디자이너였다. 시간이 나면 구두 등을 디자인했다. 지난해 7월4일 서울시 종로구 효자동 서촌갤러리에서는 예슬이가 평소 그렸던 디자인과 그림 등을 전시한 ‘박예슬 전시회’가 두 달 동안 열렸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 그림 박재동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