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1.27 20:16

그림 박재동 화백

잊지 않겠습니다

가수가 꿈이었던 보미에게 바치는 ‘거위의 꿈’

안산 단원고 2학년 이보미(17)양의 어머니가 편지글 대신 딸이 생전에 즐겨 불렀던 ‘거위의 꿈’ 노래 가사를 보내왔다.

난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혹 때론 누군가가/
뜻 모를 비웃음 내 등 뒤에 흘릴 때도/
난 참아야 했죠 참을 수 있었죠 그날을 위해/
늘 걱정하듯 말하죠/
헛된 꿈은 독이라고/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수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


이보미양은


노래를 잘 부르던 여학생이 있었다. 그는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어릴 때는 노래만 잘하면 가수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커가면서 연예계의 ‘현실’을 알게 됐다. 노래만 잘한다고 가수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학생은 책상에 ‘건국대 수의학과’라는 글씨를 써붙였다. 가수가 못 되면 아픈 동물을 돌보는 수의사가 되겠다고 했다. 4월16일, 여학생의 꿈은 세월호와 함께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이 학생은 ‘거위의 꿈’을 부르는 동영상으로 널리 알려진 단원고 2학년 9반 이보미(17)양이다.


지난 7월24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100일 추모 시낭송 음악회에서 가수 김장훈(47)씨가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보미가 지난 2월 학교 졸업식에서 선배들을 위해 ‘거위의 꿈’을 부르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에 김장훈씨가 따로 녹음한 자신의 목소리를 더해 듀엣곡을 만들었다. 김장훈씨는 무대 위에서 뮤직비디오 속의 보미와 함께 ‘거위의 꿈’을 불렀다.


보미는 꿈과 욕심이 많았다. 노래뿐만 아니라 공부도 전교에서 손꼽을 정도로 잘했다. 마음도 착하고 따뜻했다. 강아지를 좋아했던 보미는 4년 전 겨우 엄마의 허락을 얻어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5살 많은 언니와 자기 이름의 돌림자를 따서 강아지 이름을 ‘이보들’로 지었다. 보미는 보들이를 마치 자신의 동생처럼 키웠다. 수의사의 꿈도 보들이를 키우면서 갖게 됐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열흘 만인 4월25일, 보미는 엄마의 품에 돌아왔다. 가족들이 자신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을까? 보미의 목에는 학생증이 걸려 있었다. 보미는 지금 경기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다. 이달 29일은 보미의 생일이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