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1.08 17:28l최종 업데이트 14.01.09 12:02l                      김성수(wadans

 
OECD국가 중 자살률, 해외입양, 연간노동시간 1위인 반면 사회복지지출, 정부신뢰도, 출산율은 꼴찌인 나라가 바로 '국민행복시대'를 누리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나는 지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아래 의문사위)와 진실화해위원회(아래 진실위)에서 일할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이 두 위원회에서 일하면서 나는 우리 국력과 경제규모에 비교해 너무나 초라하고 열악한 우리나라 인권 수준에 경악했다. 

진실위에 근무했던 당시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진실위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 칠레와 아르헨티나 법무부 관리들이 우리 한국 진실위 일행에게 이런 말을 했다.

"가해자의 사과나 처벌 없이 어떻게 피해자와 화해가 이뤄지나요? 우리는 학살과 인권침해를 자행한 반인륜범죄 가해자를 끝까지 규명하고 처벌합니다. 가해자의 사과 없는 또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없는 화해는 거짓입니다."

당시 사회정의를 중요시하는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과거사 정리 활동이 너무나 부러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최근 한 지인이 내게 "과거사 정리를 하더라도 보복 없이 해야지요"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어이가 없었다. 한국의 진실위는 과거 이승만·박정희 정권시절 집단학살과 인권침해 가해자들에 대해 보복을 한 적이 전혀 없고 구조적, 법적으로 할 수도 없었다. 아니 보복은커녕 가해자들은 오히려 자신의 학살과 고문행위를 마치 '애국과 안보'를 위한 행위로 끊임없이 정당화했고, 심지어 자랑스러운 무용담처럼 '빨갱이사냥'을 떠들고 다녔다.

반면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평생 동안 숨을 죽이고 두려움 속에서 억울한 피해사실과 아픔을 숨기고 살아야 했다. 무식한 것도 심각한 죄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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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춘 교수
ⓒ 김동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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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망각하는 국민은 그 과거를 반복하게 된다. 지난해 우리가 과거를 망각하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과거사 정리에 관한 책 3권이 발간되었다. 그런데 저자가 한 명이다.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 2000년 당시 그가 세상에 발간한 <전쟁과 사회>를 읽고 받은 충격과 전율은 지금도 생생하다. 김동춘 교수의 책을 읽으며 나는 한국현대사에서 일어났던 국가폭력의 실상과 한국인의 잔인함을 보았다. 그 무지막지한 폭력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아픔에 찌든 피해자들의 모습을 보았다.

지난 7일, 저자 김동춘 교수를 성공회대에서 만났다. 다음은 김동춘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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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 한국전쟁과 학살, 그 진실을 찾아서>,<대한민국 잔혹사: 폭력 공화국에서 정의를 묻다>,<전쟁정치 - 한국정치의 메커니즘과 국가폭력> 책표지.


- 지난해 무려 3권의 책을 냈다. 작년 1월 <대한민국 잔혹사: 폭력 공화국에서 정의를 묻다>, 이어서 7월엔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 한국전쟁과 학살, 그 진실을 찾아서>, 또 12월엔 <전쟁정치 - 한국정치의 메커니즘과 국가폭력>을 연달아 냈는데 1년에 무려 3권씩이나 책을 쓰는 그 에너지와 영감은 어디서 나오나?
"책은 거의 동시에 출간되었지만, 진실화해위원회(아래 진실위)에서 나온 뒤인 2010년부터 3년 동안 작업한 결과다. 비슷한 내용의 책을 동시에 준비했기 때문에 생각만큼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았다. 특히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는 주로 진실위 활동의 기록이기 때문에 2000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활동이나 진실위 상임위원으로 일하는 동안 충실하게 기록을 정리했기 때문에 작업을 쉽게 할 수 있었다."

- 박근혜 정부 집권이 채 1년도 안 된 상황에서 '국정원 등 국가기관 대선개입문제', '철도· 의료 민영화문제', '국사교과서 문제' 등이 여전히 뜨거운 이슈다. 또 1990년대 초반 이후 없어졌던 시국 관련 분신 자살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아직도 우리사회가 국가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한 단면이다. 어떻게 보나?
"이명박 정부 이후 국정원과 기무사가 다시 과거와 같은 민간인 사찰, 대북심리전을 명분으로 한 국내정치 개입 활동을 했기 때문에 고문사실, 노골적 간첩조작만 제외한다면 과거 식의 국가폭력이 재현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기관에 대한 제도적인 과거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과거 관행이 부활한 것이다."

"국가보안법 개념이 헌법상 자유민주주의 원칙을 압도"

- <대한민국 잔혹사>에서 우리나라 과거사를 조망해 국가폭력의 그림자를 들여다보았다. 왜 이 국가폭력의 그림자가 지금까지도 우리 현실에 짙게 드리워 있다고 보는가?
"거시적으로 보면 남·북한의 분단과 군사적 대치상태가 가장 큰 원인이다. 국가보안법 개념이 사실상 헌법상의 자유민주주의 원칙을 압도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계속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직접적으로는 취약한 정당성을 가진 한국의 기득권 집권세력이 북한과의 대립을 명분 삼아, 국내 정치적 반대세력을 여전히 적대시하고 자신의 치부를 감추고 권력을 계속 유지하려는 동기가 가장 큰 것이다."  

- <대한민국 잔혹사>에서는 정의와 상식을 모르는 대한민국 국가폭력의 끔찍한 사례를 다각도로 보여 주었다.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암울하며 도무지 출구를 찾기 어려운 것인가?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 여전히 한국의 민주화와 시민사회의 성장은 세계적 기준에서 보자면 가장 놀라운 것이고, 그 역동성은 아직 상실되지 않았다. 지속하는 권력의 폭압과 불법에도 이렇게 오랜 세월 줄기차게 저항하고 연대의 정신을 발전시켜 왔다는 사실은 우리의 중요한 자산이다. 또한 이러한 피해 속에서 저항하고 새로운 변화를 개척해 온 우리의 현대사야말로 세계 민주주의에 빛을 던져 줄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다."  

- "가해자의 폭력이 반복되는 중요한 이유는 바로 폭력 상황에서의 방관자, 정확히 말하면 다수, 즉 따돌리는 편에 서는 폭력의 묵시적 동조자들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대한민국 잔혹사>에서 지적했다. 이 다수의 방관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것은 흔히 나치 시대의 학살을 묵인 방관한 독일인들에 대한 경고와 동일하다. 자신은 빨갱이가 아니니까 종북 시비, '빨갱이들에 대한 탄압'은 자신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권력의 폭압은 비켜가지 않는다. 지금 시점에서는 좀 가혹한 이야기겠지만, 송전탑을 반대하는 밀양의 어르신들 역시 수십 년 동안 새누리당만 지지했을 것이다.

진주의료원 폐업으로 고통을 겪은 환자들과 그 가족들 역시 그랬을 것이다(물론 이들이 고통을 겪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 아니다). 인간성을 말살하는 권력은 다수의 지지를 얻기 위해 가장 정치적으로 위협적인 세력을 악마화하지만, 그러한 권력의 폭력은 결국 묵인 방관하는 다수에게도 향한다. 자기 이해의 관점이 아닌 공공적인 관점에서 권력의 속성을 볼 수 있어야 장차 자신과 자기 후손들에게도 피해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결국 시민의식의 문제다."   

- 진실위 상임위원으로 4년을 활동하셨는데 진실위 활동을 통해서 우리나라 과거청산의 주요 쟁점과 한계를 지적하면?
"여야의 타협과정에서 진실위 기본법이 변질된 게 가장 치명적인 일이었다. 진실규명과 인권존중의 정신에 기초한 법이 결국 적대세력에 의한 조사 부분을 대폭 포함하는 내용으로 변질된 것이 그것이다. 어쩌면 취약한 여론 기반과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정치력의 한계였을 수도 있다.

한편 모든 개혁운동이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변질은 불가피한 점이 있다. 결국 관료의 자기 이해를 중심으로 운영될 위험성이 존재한다. 앞으로도 이런 문제는 계속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데, 당사자들의 높은 시민의식, 운동세력의 감시가 없으면 운동이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가해자 처벌이 없는 게 가장 치명적"

- 한국의 과거사 정리에 대해 냉정한 비판을 한다면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과제인가?
"가해자 처벌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치명적이다. 설사 진실·화해의 정신에서 출발했다고 하더라도, 국가기관의 명백한 범법 사실이 확인되면 일정한 처벌이 필요한데, 그것이 거의 없었다. 반드시 보복적 처벌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본보기 처벌은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고문 경찰이나 간첩조작의 당사자들이 저렇게 시퍼렇게 살아있을뿐더러 오히려 권력의 요직에 진출하여 큰소리까지 치고 있고 정작 피해자들은 저들을 처벌하라는 요구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이 바로 한국 과거 청산의 한계를 보여주고, 오늘의 국정원 사태를 불러왔다." 

-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에서 "민주화 이후에도 부드러운 방식으로 학살이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감회를 밝혔는데, 그 '부드러운 학살'의 예를 들어 달라
"유럽에서 나치 학살의 부인도 범죄로 취급하듯이, 가해자들이 '학살은 없었다'고 부인하는 건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1980년 광주 5·18민주화운동 당시의 학살이 간첩 소행이라는 주장이 오늘날 공중파를 타고 전파될 수 있는 현실이 바로 언어를 통한 학살이다. 정치적 반대세력을 종북으로 몰아가는 것도 일종의 학살이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종북으로 낙인찍히는 것은 사회적 시민권의 박탈을 의미하고, 결국 생존권의 박탈을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 프랑스 교민의 시위에 대해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하겠다"는 발언의 주인공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이번엔 내란음모 혐의를 받는 피의자의 변호인 접견권을 제한하는 반헌법적 법률을 발의했고 새누리당 의원들 다수가 동조했다. <전쟁정치>에서 "'전쟁정치'는 국가가 대내외적 적과 마주하고 있다는 상황 인식 위에서 이데올로기 혹은 담론으로 선포되고, 국가기관이 내부의 적을 자주 공격한다. 특히 민간인 저항세력도 무장한 적과 같이 취급되고, 군법회의와 같은 사법절차, 통제 방식이 민간인에게도 적용된다"라고 지적다. 김진태 의원의 행태도 결국 '전쟁정치'의 산물이라고 보나? 
"전쟁정치는 최고 권력자와 핵심 권력집단이 기획한 것이지만 출세주의 경찰, 검찰, 기관원, 정치가들에게 의해 확대 강화된다. 반공이 출세 보증수표가 된 나라에서 극우 반공주의 경쟁이 그러한 것이다. 김진태 의원의 발언이나 법안제안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전쟁정치의 극복은 정당정치의 회복을 통해서 가능하다. 상대를 종북으로 몰아가면 대화, 협상이 불가능하다. 그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박근혜 정부나 국정원이 하고 있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정치는 실종되고 통치만 존재하는 셈이다."

"이명박 정권은 국가 경제 위기에 빠뜨린 책임 주체"

- 우리 정부의 전체 지출 중 사회보장 비중은 13%로 OECD 국가들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했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도 23%로 OECD 국가들 중 가장 낮게 나타났는데, 이런 현상도 결국 우리 정부가 '공권력의 반인륜성'을 OECD 국가 중 극대화해서 행사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 폭력은 사회를 타락시키고 도덕적 기반을 붕괴시킨다. 폭력의 최대 피해는 사실 사회 혹은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다. 이 불신으로 인해 우리가 치러야 할 사회 경제적 비용은 계산 불가능할 정도로 크다. 나는 인권의 경제학이라는 표현도 쓰고 싶다. 신뢰는 사회적 자산이고 곧 경제적 자산이다. 이점에서 과거의 군사정권이나 이명박 정권은 사실 국가 경제를 가장 심각하게 위기에 빠뜨린 책임 주체다." 

- 대한민국은 짧은 기간에 경제발전을 성취했다. 그러나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판별하는 국가의 핵심적 기능, 즉 박근혜 대통령이 늘 말하는 정의와 원칙은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 현대사를 되짚어봐야 할 문제다. 해방 직후 친일파가 다시 권력을 잡은 데서 시작된 일이다. 오로지 자신과 가족의 이해에만 충실했던 사람들이 공익을 대변해야 할 자리에 오르게 된 모순이 그 시작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자신의 취약한 정당성을 만회하기 위해 경제성장에 목을 멘다. 그들은 약자를 향해서는 성난 얼굴로 법 운운하지만, 실제로는 최고의 범법자들이었다. 그 범법을 감추기 위해 그들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은 오직 외형적인 경제 지표밖에 없다. 고시출신의 모범생 관료, 판검사들은 그들의 충실한 하수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자신의 임무인 정의를 세우는 일을 포기하거나 등한시하게 된 것이다."

- 그런데 책 제목을 왜 <전쟁정치>로 잡았나.
"전쟁정치는 원래 이 책 이전에 다른 논문에서 이미 사용했던 용어다. 이 책에서 그 논문의 내용을 일부 포함시킨 것이고, 그 사례들을 풍부하게 포함한 것이다.

좀더 학술적으로 논의해 볼 여지가 있는 개념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정치는 정당이 한 것이 아니라 공안기관이 해 왔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국가 위의 국가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 질서를 청산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가 어렵다고 본다. 서구 민주주의 이론의 한계를 지적하는 점도 있다. 많은 비판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덧붙이는 글 | * 김동춘 교수: 1959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역사비평>과 <경제와 사회> 편집위원, 참여사회연구소 소장,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했으며, 2004년 한겨레신문 선정 '한국의 미래를 열어갈 100인'으로 뽑혔고, 2006년에는 제20회 단재상을 수상했다. 현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황해문화> 편집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엔 <전쟁과 사회>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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