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도 /거제경실련 공동대표
2013년 11월 15일 (금) 14:58:19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며칠 전 연초면 천곡리에 소재한 천곡사에서 1950년 전쟁전후 보도연맹과 민간인 학살 피해자에 대한 위령제가 열렸다. 나는 추모사를 낭독하면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할 수가 없었다. 행사를 마치고도 한 동안 당시 억울한 학살 피해자들의 아비규환이 재현되는 악몽에 시달려야만 했다.

제노사이드, 국가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학살, 인종청소 등을 일컫는 말이다. 재판절차도 없이 불법적으로 자행된 이 같은 행위는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 될 인류 중대 범죄에 속한다. 이러한 범죄는 제3세계 독재국가에서 종종 나타나며, 5,60년대 냉전시기에 많은 나라에서 자행된 전쟁범죄이기도하다. 이러한 범죄는 국제법상 공소시효조차도 없다. 그만큼 중대범죄로 인식하는 것이다. 국가는 반드시 그 진상을 규명하여야 하며 책임자를 처벌하고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유족에게는 배상을 통해서 통한의 세월을 고통 속에서 살아온 피해를 보상해 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또한 이와는 별도로 역사적 심판까지도 뒤따라야 만이 다시는 이 같은 국가공권력에 의한 억울한 학살범죄가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단죄가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범죄가 다른 나라가 아닌 우리 대한민국에서 정부수립초기에 일어났다. 그리고 6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부는, 국가는 그 의무를 망각하고 있다. 진상규명은 고사하고 재판에서조차 패소하기 일쑤다. 이것이 2013년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이 모든 사실이 현재의 대한민국이 어디쯤에 서 있는가를 웅변으로 대변하고 있다.

이승만은 미군정하에서 1948년 남한의 단독정부수립 이후 단독정부수립의 비난을 만회하고 남한 단독정부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 해방이후 좌익 활동을 하였거나 전향한 자들을 모아 국민보도연맹을 조직한다. 보도연맹에 가입하면 쌀도 주고 고무신도 지급했다.
많은 국민들이 이를 믿고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한다. 어떤 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오로지 쌀 한 되, 고무신 한 켤레에 현혹되어 가입한자들도 전국적으로 부지기수였다.

이승만 정부는 이들을 관제데모에 이용한다. 김일성타도! 공산주의 반대! 이승만지지, 대한민국지지! 그러다가,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이승만 정부는 강원도 횡성을 시작으로 1950년6월 26일 저녁부터 전국적으로 이 보도연맹가입자들을 경찰서와 각 지서로 불러 모은다. 우익인사들을 통해서, 마을 이장과 읍면동서기들을 동원하여 보도연맹 가입자들을 유인, 집결시킨다. 그리고는 불법체포와 구금을 통해 끔찍한 학살을 자행한다.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이들이 전국적으로 대략 50여만명에 이른다.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이들을 잠재적인 후방의 적으로 판단하고 행했던 천인공노할 만행, 즉 제노사이드를 자행했던 것이다. 그리고 후퇴를 거듭하면서 토벌, 수색, 색출을 통해 양민학살이 자행된다. 서울에서만 유일하게 3만여명의 보도연맹가입자들이 살아남았다. 이들이 없었더라면 서울에 고립된 당시 경찰과 우익인사들이 살아남을 수 없었다고 한다. 오제도씨의 증언에 의하면 이들에 의해 많은 경찰과 공무원, 그리고 우익인사들을 숨겨주고 탈출을 도왔기에 가능하였다는 것이다. 이들이 무고한 양민이라는 반증이다.

우리거제에서만 무고한 양민이 1000여명이 학살되었다.
일운면 구조라에서, 지심도 앞바다에서, 아주 당등산 골짜기에서, 송정계곡에서, 둔덕 죽전에서, 가조도에서, 거제도 곳곳에서 처참한 학살이 자행되었다. 뒤로 손발이 묶인 채, 굴비처럼 엮여서 수장되고, 총살되었다. 물론 이들 중에는 실질적인 위험이 되는 좌익들도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정상적인 절차와 법 집행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정당한 재판과정도 없이 불법적 체포와 학살이 자행되었기에 불법적이고 억울한 양민학살이라고 규정짓는 것이다. 이후 이들의 유족들은 연좌제에 의해서 국가와 사회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배제된 삶을 살아야만 했다.

공무원도 할 수 없었고 대기업에서 조차도 신원조회에서 거부당했다. 유족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고 통한의 세월을 견뎌온 것이다.이러한 인류범죄는 국제법상 공소시효가 없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1심 재판에서 패했다. 아직도 대한민국은 국제법이 인정되지 않는 후진국이란 말인가? 여러 지역에서 승소한 판례도 많지만,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에서 패했다. 대한민국엔 사법도 국제법 조차도 소용없는 것이다.

정부와 국가가 나서서 특별법을 제정해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특별법을 통해서만이 진상의 규명도, 유해의 발굴도, 피해자와 유족의 명예회복과 보상도 가능한 것이다.
지금도 차가운 땅 속 어딘가에 묻혀 편히 잠들지 못하는 피해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유해가 하루빨리 발굴되어 편히 잠들 수 있게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보도연맹, 민간인 학살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합동위령제에서 만난 초로의 할아버지는 이런 말을 절규하듯 토해냈다. 내 가슴을 울렸다.

“그 때 상황이나 지금의 국정원 불법선거개입이 모두 동일한 선상에 있다. 그들은 권력을 위해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그 학살자들의 그 세력, 그 중심이 바뀌지도 않고, 이어져 오고 있다. 그래서 이런 국가부정이 자행되고 있다, 언제쯤 우리는 국가공권력에 의한 피해자를 정부가 앞장서서 진상을 규명하고 명예를 회복시켜줄 것인가, 그러한 정부와 시대가 반드시 올 것이다. 지난해와 이번 봄이 남북한 간에 전쟁의 위기가 가장 높았다. 당시 보도연맹과 민간인 학살을 상기하면 이러한 학살이 재발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통진당과 이석기 사태도 이러한 피해의식에서 바라봐야지, 내가 눈을 감기 전에 바로잡는 것을 보고 죽어야 할 텐데....” 하시는 90세를 바라보는 노인의 절규와 같은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맴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