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5.06 19:59

오수성 전남대 명예교수 연구결과
공권력 인권침해 피해자 43.1% 최고
“집단적 치유 통해 자존감 높여야”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과 여순사건, 고문 등 인권침해 사건의 피해자와 가족들이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오수성 전남대 명예교수(심리학)는 지난 3일 광주에서 ‘임상심리학, 인권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열린 한국임상심리학회 학술대회에서 ‘국가폭력과 트라우마(외상)’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외상후 스트레스와 주요 우울증이 당사자와 가족 등 50% 이상에서 나타났다”고 밝혔다.

오 교수는 지난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와 공동으로 △항일독립운동 관련 사건(9.8%) △국민보도연맹 사건, 군경토벌작전 관련 민간인 희생사건, 전국 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 여순사건, 부역 혐의 민간인 희생사건, 미군 관련 민간인 희생사건 등 집단 희생사건(79%) △30년 이상 지속된 독재정권 때 저질러진 가혹행위 등 인권침해 사건(11.3%) 등의 피해자와 가족 51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리피해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렇게 주장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극심한 위협적인 사건으로 인한 심리적 충격을 경험한 뒤 일어나는 불안 증상 등의 정신장애를 말한다.

조사 결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할 수 있는 비율은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집단이 43.1%(당사자는 48.8%)로 가장 많았고, 심각한 경우도 13.8%로 측정됐다. 집단 희생사건 집단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19.5%(당사자 38.9%)로 나타났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비율은 미군 관련 민간인 희생사건(40.9%), 부역 혐의 민간인 희생사건(26.2%), 여순사건(18.1%), 국민보도연맹 사건(17.8%), 군경토벌작전 관련 민간인 희생사건(14.3%) 차례로 높았다. 피해자들은 심리 건강이 매우 나빴고, 우울·불안 등 생활스트레스가 심각한 상태인 것으로 나왔다.

한국전쟁 등 50년이 지난 사건의 당사자나 가족들의 심리적 피해를 알아보는 본격적인 조사와 그 의미를 분석한 연구는 드문 일이다. 오 교수는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의 경우 32.8%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나타난 것(2006년)에 견줘도 집단 희생자와 인권침해 집단의 장애 비율이 매우 높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피해자와 가족들의 심리적 고통이 커 만성화됐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가 차원의 화해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오 교수는 “교통사고나 재난 등에 따른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달리 이들은 정치적인 여건 탓에 피해 사실을 드러내지 못하고 적절한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했다. 개별적인 치료뿐 아니라 공통의 아픔을 가진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집단적인 치유 과정을 통해 사회적 지지와 자존감을 높이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겨레,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