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5.16 20:30 수정 : 2013.05.16 21:56

“과거사위 결정만으로 배상 안돼”
‘신빙성 추가 증거조사 필요’ 판결

“유족에 직접 입증 요구는 무리”
‘과거사법 취지 무시’ 비판 일어

대법원이 16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조사보고서에 대해서도 추가 증거조사가 필요하다고 판결했다. 과거사 사건에 대한 진실화해위 조사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어서, 국가의 조직적 인권유린행위를 국가 스스로 조사해 책임을 진다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법’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등의 비판이 예상된다.

■ 대법 ‘과거사위 결정 다 못 믿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1950년 한국전쟁 직후 진도에서 인민군에 부역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된 뒤 사망한 박아무개·곽아무개씨의 유족 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유족들에게 1300만~880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진실화해위 조사보고서가 유력한 증거자료인 것은 분명하지만, 진실화해위 결정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그 신빙성 등에 대한 심사를 할 것도 없이 사실이 확정되고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이 반드시 인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조사보고서 내용에 모순이 있거나 수긍하기 곤란한 점이 보이면 진실화해위 결정과 상관없이 추가 증거조사를 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박씨의 경우, 조사보고서의 참고인 진술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신원이나 피해 경위 등이 분명치 않고 유족에 대한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으며, 곽씨에 대해서도 참고인 진술에 사망 경위에 관한 직접 진술이 없는 등 사실에 대한 증명이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그동안 하급심에서는 다른 증거가 특별히 없어도 진실화해위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많았다.

■ ‘피해자가 직접 입증하라는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일반 민사소송처럼 원고인 유족들에게 피해사실을 입증하라는 것이냐’는 반론이 있다. 이인복·이상훈·김용덕·김소영 대법관은 반대의견에서 “과거사정리법 대상사건은 진상을 외부에서 알기 어렵고 피해자 개개인이 진상을 밝히기 어려운 것들이다. 수십년 동안 왜곡·은폐돼 내놓을 수 있는 증거에도 한계가 있어, 유족·친지의 간접 진술이라고 해서 가볍게 여길 것이 아니다. 명확한 반증이 없는 한 과거사위 결정의 증명력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이들은 “피해 회복 등의 의무가 있는 국가가 돌연 진실규명 결정의 내용을 부인하면서 피해자에게 사건의 진상을 새로 증명할 것을 요구한다면 과거사정리법의 입법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을 지낸 김갑배 변호사는 “60년이 지난 사건에 대해 다시 심리하고 유족들에게 증명하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역시 상임위원을 지낸 김동춘 교수(성공회대)도 “진실화해위 조사가 상당부분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지만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결정한 일은 없다”고 말했다.

■ 소멸시효는 3년 대법원은 아울러 과거사 관련 국가배상 소송의 소멸시효를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날로부터 3년’으로 정하면서, 이 기간을 넘었거나 애초 진실규명 신청을 하지 않은 때에는 국가배상이 불가능하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위자료에 대해서도 “비슷한 사건에서 본인 8000만원, 배우자 4000만원, 부모·자녀 800만원이 인정된 바 있다”며 “위자료 액수를 정할 때 피해자들 상호 간의 형평도 중요하게 고려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