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인권위에서 보내온 자료 편집 해 올립니다)

 

지난 1984년 방위병으로 복무하다 의문의 죽음을 당한 故최영식 일병이 27년 만에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습니다. 고인은 경기도 화성 소재 해안초소 야간 경계근무를 섰다가 인근 닭섬에서 머리에 총을 맞은 채 발견된 바 있습니다. 지난 8월 30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이하 행심위)는 서울지방보훈청의 국가유공자유족 등록거부처분을 취소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고인은 청각장애 6급에 해당하는 장애인으로 방위병 입영처분 자체가 위법한 것이었습니다. 2009년까지 운영된 대통령직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군의문사위)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1984년 ‘병역처분기준’상 고인이 신체등위 5급으로 현역 또는 보충역복무는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고 대전병무청이 회신했습니다. 청각장애 6급은 1.0∼1.5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큰 소리로 말해야 알아들을 수 있으며 군중이나 강의실 내의 말소리는 청취가 곤란할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인은 고참병들의 말에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여 반항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아 더 구타를 당했고, 근무시에도 암호를 제대로 못 알아듣고 큰 목소리로 대답한다는 이유로 구타를 당하는 등 부대원들로부터 ‘고문관’이라는 놀림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고인은 자신의 팔뚝을 담뱃불로 지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고인은 △출근시간만 약 3시간 정도 소요되었는데 출퇴근 과정에서 선임 방위병에 의한 일상적인 구타와 가혹행위가 있었으며 △고인을 포함한 방위병들은 근무 시간 외 부당한 작업에 동원되었고 △초소 근무시 방위병과 2인 1조로 근무한 현역병에 의한 구타 등 일상적인 차별과 가혹행위를 당해야 했습니다. 소초장 및 간부들은 고인의 청각장애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에서 행심위는 △고인의 소속부대가 방위병에 대한 일상적인 구타와 차별, 가혹행위, 부당한 근무지시 등이 상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점 △고인이 청각장애가 심해 부대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급자들의 구타와 가혹행위로 인한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자신의 손목을 담뱃불로 지지는 등의 인격장애가 발병했고 그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나 보호 또는 관리를 받지 못한 점 △군의문사위의 심리부검자문소위원회에서도 “청각장애를 앓고 있었던 고인 자신의 의지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상황에서 달리 도피처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일상화된 폭력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극도의 절망감 내지 심신상실의 상태”였다고 인정한 점 △사망 당일 고인이 상급자의 술 심부름과 구타를 당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등의 가혹행위가 있어 자기 손상감과 심리적 고통이 심하여 극단적인 절망감에 사로잡혔을 것으로 추정되는 점 △고인은 청각장애인으로 소위 ‘고문관’으로 불리는 등의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데, 상급자의 구타 등 가혹행위와 그로 인한 피해는 일반 사회보다 피해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는 점 △고인이 입대하기 전 공무원시험에 합격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등 자살을 결행할 만한 다른 뚜렷한 이유가 없었던 점 등을 제시하면서 고인의 죽음이 “상급자의 구타 및 가혹행위로 인하여 극도의 절망감 및 우울증상으로 발생한 것으로서…고인의 정상적이고 자유로운 의지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동안 군 복무 중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람들은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유공자법)에 따른 ‘순직군경’으로 예우를 받아야 마땅했지만, 죽음의 경위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자살로 처리된 채 같은 법 제4조 6항의 예외사유 중 “자해행위로 인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 등록을 거부당해 왔습니다. 다만, 대법원은 “자해행위로 인한 사망은 자유로운 의지에 따른 사망을 의미하는 바…그 자살이 자유로운 의지에 따른 것인지 여부는 자살자의 나이와 성행 및 직위, 복무행위의 내용과 정도, 자살자의 신체적․정신적 심리 상황, 자살과 관련된 질병의 유무, 자살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상황, 기타 자살의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4. 3. 12. 선고 2003두2205 판결 등)고 선언하여 예외를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이 판례에 따라 국가유공자로 인정되는 사례는 사망 이전에 정신과 진단을 받은 경우 등 극히 예외적인 사건 외에는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다행히 지난 9월 15일 국가유공자법 개정에 따라 예외사유 중 “자해행위로 인한 경우”가 삭제되었으나, 순직군경의 요건에 “국가의 수호·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이라는 전제가 추가됨에 따라 향후 명예회복과 배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행심위의 이번 결정은 국가가 군의문사위의 심리부검 등 조사결과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습니다. 군의문사위의 자료에 따르면, 2008년 10월 현재 군의문사위에서 순직자 재심을 요청한 군내 자살자는 총 32명으로 그 중 경찰청이 4명(전의경), 법무부 1명(경비교도대) 등 모두 5명에 대해서 자살의 동기가 가혹행위 등 국가의 책임이 있다며 순직자로 인정했지만, 국방부는 군내 자살자 24명 중 1명도 순직자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유가족들은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등 국가를 상대로 길고 긴 싸움을 홀로 진행해야 했습니다.

 

한편, 우리 위원회는 이번 결정이 고인이 자살했다는 전제 아래 국가유공자 인정 여부를 결정한 것일 뿐 고인이 타살 당했을 가능성 등 진상 규명 과제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첫째, 사건 초기 시신 유기 모의가 있었습니다. 군의문사위 조사 결과, 사망 추정일(2월 1일 밤)의 다음날인 2일 오후 2시경 닭섬에서 수색 중 시신을 발견했다는 분견초장 이 아무개 중사는 부대관리를 소흘히 한 책임을 추궁당할 것이 두려워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현역병들과 함께 시체를 누가 어디에 담아 어디에 묻을 것인지 등 유기를 모의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에 김 아무개 일병이 비밀을 지킬 수 없다고 나서자 이 중사는 시체 유기 모의는 절대 발설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린 후 3일 오전 10시경에야 중대에 보고했습니다. 이에 따라 초동 수사도 지연되었습니다. 헌병대 수사관이 사고 현장에 도착한 것은 3일 오전 11시 50분경이었고 부검은 4일에야 실시되었습니다.

둘째, 시신 발견 이후 현역병들이 시신을 돌려 눕히고 총기를 회수하는 등 시신과 현장의 상태가 변형되었습니다. 유가족들은 시신을 발견한 부대원으로부터 고인이 가부좌 상태로 앉아 있는 채 발견되었다는 증언을 들었다고 합니다. 군의문사위 조사 결과, 최초발견자인 현역병은 고인이 반듯이 엎어져 있었다고 증언했고 또 다른 현역병은 발견 후 성명불상의 병장이 고인의 몸을 뒤집어서 바로 뉘었다고 증언했습니다. 헌병대 수사와 부검이 자살을 전제로 진행되어 현장 훼손 가능성을 무시했던 것입니다. 또한 시신이 5일 화장되어 6일 유골이 닭섬에 뿌려지는 등 사후 처리가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으로 보아 헌병대가 고인의 죽음을 자살로 예단하고 부실한 수사를 했을 개연성이 큽니다. 부검사진 외 현장 사진이나 현장에서 찍은 시신 사진 및 글도 남아 있지 않는 등 검시가 미흡했습니다.

셋째, 총상이 일반적인 자살(근접사)과 일치하지 않는 등 타살의 가능성이 남아 있습니다. 군의문사위 조사 당시 재미 법의학자 노여수 박사는 법의학 감정 회신에서 “원거리 총상이며 타살의 의심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습니다. 당시 헌병대 수사 결과, 시신 우측 팔 옆에 탄피 24개가 있었고 좌측 발 옆에는 탄창 2개와 탄피 2개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시신 손에 대한 총상 잔흔 검사나 총에 대한 지문 검사도 누락되었습니다. 군의문사위 법의학자문소위원회도 “M16에 의한 접사(근접사)의 일반적인 모양과는 다르고, 2발이 발사되었는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넷째, 사망 직전 고인과 근무를 서다가 술심부름과 함께 노래를 부르라고 시키며 구타한 것으로 알려진 백 아무개 하사는 군의문사위 조사를 거부했습니다. 군의문사위는 출석요구서를 발송하고 주민등록 주소지를 직접 방문했으며 백 하사의 어머니와 누나 등을 상대로 두 차례의 탐문조사를 실시했으나 가족들의 강한 항의에 부딪혀 조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우리 위원회는 이번 결정이 비인간적인 군 복무 환경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린 사건에 대해 어떠한 예외도 없이 국가유공자로 인정하지 않았던 국방부의 잘못된 입장을 행정부가 스스로 바로잡았다는 점에서 환영합니다. 우리 위원회는 이번 결정을 통해 죽음의 진실 규명과 고인의 명예 회복을 위해 오랜 세월 노력해 온 유가족들의 한이 조금이라도 풀어지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