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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2015-09-21 20:09
프란치스코 교황이 20일 쿠바 수도 아바나의 혁명광장에서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차를 타고 들어서고 있다. 뒤에 보이는 정부기관 건물에는 쿠바 혁명가인 카밀로 시엔푸에고스의 얼굴을 묘사한 금속 조형물이 붙어 있다.  아바나/AP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일 쿠바 수도 아바나의 혁명광장에서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차를 타고 들어서고 있다. 뒤에 보이는 정부기관 건물에는 쿠바 혁명가인 카밀로 시엔푸에고스의 얼굴을 묘사한 금속 조형물이 붙어 있다. 아바나/AP 연합뉴스

르포 ㅣ 교황, 아바나 미사 집전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섬김을 받으려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합니다. 섬김은 결코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상이 아니라 사람을 섬겨야 합니다.”

20일(현지시각) 오전 9시를 조금 넘은 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의 낮게 깔리는 음성이 쿠바의 수도 아바나 혁명광장에 울려퍼졌다. 미사를 보러온 수만명의 신도들은 “아멘”으로 교황의 강론에 화답했다.

왼쪽으로는 아바나에서 제일 높은 건물인 혁명탑, 오른쪽에는 체 게바라의 얼굴을 묘사한 금속 조형물이 걸린 내무부 건물을 사이에 두고 마련된 단상에 교황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등이 자리했다.

혁명탑·체게바라 초상 보이는 곳
통제선 넘어 수만명 운집
라울·아르헨티나 대통령도 참석
엄숙한 분위기로 95분간 진행

교황 “기독교인이 된다는 건
형제자매 존엄성 위해 싸우는 것
가장 취약한 이웃을 돌봐야”


한국의 한여름같은 찜통더위가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는 아바나에서 혁명광장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미사 시작 1시간30분 전인 오전 7시30분께 혁명광장 주변을 빙빙 돌았지만 모든 자동차는 통제됐다. 어쩔 수 없이 차에서 내려 40분은 족히 걸어서야 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은 이미 눈썹을 타고 넘어 눈을 찔러댔다. 앞에 걸어가는 쿠바인들의 등도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미국과 쿠바의 관계정상화를 중재한 교황, 아르헨티나 출신인, 첫 중남미 출신 교황을 보기 위해 온 신도들로 혁명광장은 이미 발디딜 틈이 없었다. 통제선인 철제 바리케이드를 넘어 인도와 도로도 사람으로 가득찼다. 쿠바인들은 199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 때보다는 사람이 다소 적지만 동원인력은 거의 없는 것 같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먹을 것과 깔개 등을 준비해온 신도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미뤄볼 때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도 꽤 많아 보였다. 아바나 동쪽의 마탄사스에서 왔다는 자니 가르시아는 “차를 빌려 친구들과 함께 어젯밤 11시에 출발해 오늘 새벽 5시쯤 광장에 도착했다”며 “가톨릭을 믿은 지 1년밖에 안 됐지만 교황을 볼 수 있게 돼 행운”이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론 등을 통해 세계가 이념적 갈등을 종식하고 평화와 화해의 길로 가야 한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선 “이념이 아니라 사람을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념적 갈등과 이로 인해 세계가 겪는 고통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하고 천착해왔다. 그가 미국과 쿠바의 관계정상화에 발벗고 나선 것도 이런 문제의식의 발로였다.

그는 50년 내전을 끝내기 위해 콜롬비아 정부와 반군이 벌이는 평화 협상에 대해서도 “수십년간의 무장 갈등으로 수천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피를 흘렸다”며 “확실한 평화를 위해 노력을 계속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아울러, 교황은 세계의 경제적 불평등 문제에 대해 다른 자리에서처럼 직설적으로 비판하지는 않았지만 ‘가난한 이웃’을 돌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다른 형제자매의 존엄성을 향상시키고, 그것을 위해 싸우고, 그것을 위해 사는 것”이라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항상 개인의 바람과 욕망, 권력 추구 의지 등을 한쪽으로 치워두고 가장 취약한 이웃을 돌봐야 한다”고 역설했다.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는 1시간35분가량 진행됐다. 미사 분위기는 전날 거리 환영행사 때와 달리 엄숙했다. 하지만 교황의 방문에 거는 기대는 환영행사 때 모인 쿠바인들의 희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메 바모사(42)는 “미국과의 관계가 좋아져 친인척을 자주 방문했으면 좋겠다”며 “그러면 삶이 조금 더 나아지지 않겠냐”고 말했다.

교황의 방문을 계기로 쿠바 정부가 가톨릭계의 오랜 숙원인 자체 라디오·텔레비전 방송 송출을 허용할지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쿠바혁명 이후 가톨릭계의 독자적인 방송활동은 금지됐다. 하지만 쿠바의 한 언론인은 “국가가 모든 미디어를 운영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그 같은 요구는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1일과 22일 쿠바의 도시 두 곳을 더 방문한 뒤 22일 미국 워싱턴으로 출발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영접을 받는다.
 

아바나/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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