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치면] 옥산리 : 1951년 4월 24일(음력 3월 19일) 주민들은 국군 제8사단 군인들이 총을 쏘면서 옥산리 마을로 들어오자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 병약자를 집에 둔 채, 마을 뒷산으로 피신하였다. 당시 전북 순창군 쌍치면 옥산리 535번지에 거주하던 정씨는 79세의 고령으로 피신하지 못하고 집에서 있던 중 토벌군인이 쏜 총격을 당해 사망했다. 시신은 배에 총상을 당해 마당에서 엎어진 채 발견되었다. 당시 15세였던 김희곤과 18세였던 김영권이 마당에서 사망한 정씨의 시신을 목격했으며, 시신은 숙부 김용기와 같은 마을 주민 김용철이 수습하여 원옥마을 앞산으로 이장했다. 한편, 『한국전쟁사료』58권의 국군 제8사단 「전투상보」에 따르면, 1951년 4월 6일 국군 제11사단과 교체된 제8사단이 1951년 4월 20일과 21일 순창군 쌍치면에서 소탕작전을 전개했음이 확인된다. 이 외에도 마을 주민들이 많이 희생되었으나 정씨 외에 김식두도 희생되었다고 하나 더 이상 확인되지 않았다. “전북 도의회 보고서”(1994)에는 군경에 의해 희생된 숫자가 206명에 이르며, 국채환 등 176명의 희생자 명단이 있다.

 

[구림면] 안정리 : 구림면 안정리 이씨가 한국전쟁 이전 절터만 남아있던 안정리 337번지와 541번지 등지에 만일사(萬日寺)를 재건하고 주지가 되어 거주했는데, 1951년 8월 13일 법당이 빨치산의 은거지가 된다는 이유로 국군이 방화하자 법당을 지키려던 백모도 법당과 함께 불에 타 사망했다고 한다. “전북 도의회 보고서”(1994)에는 황정국 등 29명의 희생자 명단이 있다. 가해자는 8사단.

 

출처, <전북도의회 보고서>,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