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동박굴재사건은 1951년 2월 26일 봉황지서(지서장 이기호) 소속 경찰 등에 의해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 각동리, 송현리 주민 32명이 철천리 철야마을 뒷산(속칭 동박굴재)에 끌려가 28명이 학살당한 사건이다. 4명은 생존하였다.

1951년 3월 2일 '일일 적정보고서'에는 사건 발생일인 2월 26일 나주경찰서는 ‘50여 명의 적이 철천리 뒷산에 재결집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11명의 봉황지서원들이 즉시 현장에 출동하여 조우한 빨갱이 50명을 공격한 결과 적 28명을 사살하고 소 1마리를 노획하였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나주경찰서는 민간인을 학살하고서도 마치 전투 성과인 것처럼 보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사건이 나주지역에서 빨치산 토벌작전 중인 경찰에 의해 '빨치산과 주민사이의 연결고리를 분쇄하기 위해" 저질러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당시 다도면 국사봉에 있었다는 빨치산의 규모나 전투력에 대한 객관적 평가, 실제 빨치산과 주민과의 관계, 주민들에 대한 토벌군경의 판단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 나주경찰서와 11사단과의 관계도 해명해야 할 과제로 보인다.

참고, 진실화해위원회 결정서,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