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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1일(월) 11시 굵은 빗줄기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지역의 유족들이 모였습니다.

이 자리에는 강화, 고양, 가평 등 8개 지역에서 12명의 유족이 모였는데, 강화유족회장 서영선, 고양유족회장 마임순과 총무 이경숙, 가평유족 김옥봉 이순규 부부, 김포유족회 부회장 민천기, 여주유족 최견식, 용인유족회장 최완집 원용철, 포천유족 김순배, 양평유족회장 허광무 신강한께서 참석하였습니다.

 

서울역 시계탑에서 모여 범국민위 사무실로 이동한 수도권 유족들은 서로에 대한 위로의 말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처음 인사말을 하신 민천기 김포유족회 부회장은 하성면 유족 내부의 문제로 인해 북변동 등 김포내 다른 지역의 유족 사정조차 신경쓰기 어려운 사정임을 토로하였습니다.

가평유족 김옥봉, 이순규께서는 가평지역에서 신청인이 2명에 불과하여 활동이 어려우나 최선을 다할 것이며 최근 가평경찰서에서 희생당한 유족들이 새로 확인되어 유족회 결성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여주유족 최견식께서도 대신면을 중심으로 먼저 모임을 추진하고 가남면, 여주읍 등의 유족들을 만나 나가겠다고 하였습니다.

포천유족 김순배께서는 포천읍 현장에서 5명의 가족이 모두 학살당하고 혼자만 살아남았다고 울먹이며 혼자라도 끝까지 해보고 싶다는 의지를 밝혀주었습니다.

양평유족 허광무께서는 경기도 단위에서 계기를 만들어 단체로 정치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공동으로 대응하자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강화유족회장 서영선께서는 고양, 강화 유족들의 소송 현황을 소개하며 다른 유족들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고양유족회장 마임순께서는 경기지역은 유족들의 의사가 잘 통하지 않는 지역이어서 힘들지만 이제 더 늦어서는 안되며 더 늦기 전에 특별법 투쟁을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이어진 대화의 주요 주제는 추가조사, 집단소송, 추모사업 등이었으며, 전국유족회와 수도권 유족과의 관계는 무엇이냐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갔는데, 서영선 강화유족회장께서는 수도권 유족모임의 필요성에 대해 "다른 지역이 활성화된 것이 비해 수도권 지역에는 고양, 강화, 월미도 외에는 모이지 않았었다. 모임을 활성화시켜야 하므로 회장님도 뽑았으면 좋겠고 모임도 정례화 하자, 모이다 보면 소송경과도 알 수 있다. 서로의 위령제에도 열심히 참가해 줘야 하고 이 사건을 역사에 소개하여 바로 잡도록 해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추가조사와 추모사업은 특별법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 집단 소송은 전국 유족회와 함께 할  것, 수도권 유족모임은 전국유족회의 산하조직이 될 것이라는 논의가 있었으며 수도권 유족회의 구조를 갖추는 것에 대해서는 회칙같은 것을 더 검토해서 다음 모임에서 정하기로 하였습니다.

수도권 유족들은 오늘 만남을 시작으로 월 1회 모임을 갖기로 하고 다음에는 전국유족회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전국 최초의 유족회는 1960년 7월 초 경북 성주에서 만들어졌고 같은 달 중순 대구경북 유족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서울 경기 인천 지역이 움직이기도 전, 1년도 지나지 않아 군사쿠데타는 최초의 유족회들을 탄압했고 간부들은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습니다.

집단학살이 자행된 지 60년이 넘어서야 만들어질 수도권 유족회를 생각하면 참으로 답답한 마음이 앞섭니다.

경기지역의 대규모 집단희생사건으로 고양경찰서 180명, 남양주 진건지서 229명, 김포 고촌지서와 김포경찰서 400명, 양평경찰서 200명, 용인 원삼지서 300명 등이 희생된 사건이 있습니다. 당시 경찰조직이 있던 곳에서는 예외없이 집단희생이 있었다는 점으로 보아 1만명 이상이 희생되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범국민위는 판단의 정확한 근거를 준비 중에 있습니다만 어쨌든 ... 늦었어도 가야만 하는 수도권 유족회의 앞날이 밝기를 기원드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