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동체성 회복에 진실화해위가 남긴 숙제 / 임태환
 
 
진실을 바탕으로 한 화해는 바로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것
그렇기에, 멎은 진실화해위의 숨은
범국민위가 깊고 길게 내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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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태환 목사·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상임대표·총회준비위원장
“우리 시대 자체가 계속 뭔가 근원적인 것을 찾아가는 상황에 몰려 있는데”, “과거에서 현재로 오는 동안 우리도 모르게 잃어버린 것”, “세계인의 심금에 공통으로 울림을 지닌 ‘엄마’”. 아, ‘엄마’를 찾아 떠났던 <엄마를 부탁해>의 작가 신경숙씨가 돌아와 한 말이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는 그 상징이다. 그게 공동체적 감각, 인간에 대한 공감에서만 발견될 수 있음을 수개월 동안 11개국을 돌며 새삼 느낀 것이라 했다. ‘엄마’는 그저 제 피붙이에 붙어 있는 기생언어가 아니다. 그건 생물학적이되 그 공동체 경험에서 ‘너’를 바라볼 줄 아는 시선의 회복이다.

“교육이란 뭔가.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동심을 찬양만 할 게 아니라 마땅히 보호해야 하는 까닭은, 진정한 인간다움에 대한 그리움” 때문임을 고 박완서님은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에서 부드럽게 일러 워즈워스의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를 들어 살폈다. 어린이 급식은 동심에 사람다운 사람됨을 새기는, 함께 나누는 어깨동무 사회생활 교육인데, ‘엄마’의 가슴과 시선을 어디 두고 요설이 분분했다. 수사적 공격무기는 역시 역효과 명제(perversity thesis), 무용 명제(futility thesis), 위험 명제(jeopardy thesis)였다. 앨버트 허시먼의 <반동의 수사학>(The Rhetoric of Reaction)에서 염려하는 대로다. 수평적 연대보다는 수직적 예종을 강제하려는 ‘너희들만의 리그’ 준칙은 “누구라도 공동체의 굳센 성원이어야 함을 기꺼이 망각한다. 그까이꺼!” 그래서는 ‘공정사회’가 될 수 없고 ‘공생발전’을 이룰 수 없음에도 수사만 그럴듯하다. 공동체의 숨이야 막히고 멎더라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범국민위)는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를 태동시킨 몇 노력들 중 근간이다. 그때까지 범국민위가 수고로이 애쓰던 과제가 진실화해위에 넘겨져, 2005년 12월1일 출범한 진실화해위는 이 일에 다른 몇 가지 일을 더하여 땀방울을 꽤나 흘렸다. 진실화해위 같은 국가기관은 1·3·5공화국 등 권위주의 정부에서는 한사코 설립이 거부되거나 저지되거나 했고, 간난신고 끝에 탄생하여 그 소임을 빙산의 일각이나마 감당하고 있을 때 엠비정부는 그 종언을 서둘러 2010년 6월30일 활동이 종료되고 그해 12월31일로 해산되었다. 진실화해위는 완전히 숨이 멎었다.

진실화해위가 해체되면서 남긴 과제는 여전히 이전 범국민위의 과제다. 그 과제의 첫째가 신청사건에 대한 깊이있는 조사다. 둘째, 미신청사건의 규모가 아주 커 적극 발굴 및 추가조사가 절대 필수다. 셋째, 희생사건의 사회적 인정과 후속 조처가 화급하다(유골수습 및 추모공원, 배·보상 특별법, 과거청산 재단법인 설립). 이에 집단적으로 제기해야 할 개별 소송들이 뒤따른다. 과거사 정리는 일개 정부의 일이라기보다 국민과 민족 공동체의 과업이다. 진실을 바탕으로 한 화해는 바로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것. 우리 민족을 짓누르고 있는 어둠을 걷어내는 것이 역사 바로 세우기. 그렇기에, 멎은 진실화해위의 숨은 범국민위가 깊고 길게 내쉬어야 한다.

‘그러시든가!’ ‘잘될 건가?’ 냉소적이거나 시큰둥해서는 저 수사적 반동을 헤쳐 이기기도 어렵지만 우리가 똑같이 그렇게 저지를 위험도 있다. 경건히 그리고 겸허히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과제에 소명으로 임하자. 공동체의 건강을 위한 일이다.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보여주었듯이 말과 행동은 진실할수록 힘이 있습니다”라고 초대 진실화해위원장 송기인 신부는 밝히 말씀했다. 지금 국가 운영위원장은 누가 맡고 있나? “추노하고 흡혈하는” 원리를 우리가 배울 순 없고, 반동적 수사가 역사의 발목을 잡게 할 수는 없다. ‘엄마’ 찾아 3만리! 총회를 준비하면서 범국민위 운영위원장을 정중히 공개 초빙한다. 전문직이나 봉사직이다. 긴급하나 무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