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1 | 권영미 기자 | 입력 2015.10.15. 15:58 | 수정 2015.10.15. 16:04


원불교 100년 기념 이철수 신작판화전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관서 개최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안정된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은 사실 안 무너지고 싶다는 열망의 표현입니다.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들을 벼랑끝으로 몰지 않았나 스스로를 성찰하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깊은 속마음을 들여다보자는 얘기에 진보가 어디 있고 보수가 어디 있겠습니까."


판화가 이철수(61)가 4년만에 그의 '마음 공부'의 결과물을 담은 전시회를 연다. 1980년대 민중판화의 선굵고 강렬한 판화에서 일상의 서정을 담아낸 판화를 거쳐, 그는 이제 원불교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풀이한 소박하고 여운이 긴 판화에 도달했다.


판화가 이철수씨(오른쪽에서 두번째)가 15일 을지로의 한 식당에서 자신의 신작판화전 '네가 그  봄꽃 소식 해라'에 대해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News1
판화가 이철수씨(오른쪽에서 두번째)가 15일 을지로의 한 식당에서 자신의 신작판화전 '네가 그 봄꽃 소식 해라'에 대해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News1

이철수 판화가는 15일 서울 을지로의 한 식당에서 열린 '네가 그 봄꽃 소식 해라' 신작판화전 소개 기자간담회에서 최근의 자신의 화두가 '마음 들여다보기'라고 했다. 오는 21일부터 열리는 판화전 '네가 그 봄꽃…'은 원불교의 8대 교서 중 하나인 '대종경'을 읽고 감화를 받은 내용을 원전의 구절은 물론 그림과 작가 자신의 짧은 느낌을 새긴 판화 205점의 전시다.


5년전 원불교 관계자가 그를 찾아와 원불교 100년(올해)를 기념해 판화 100점을 제작해달라고 청하면서 이번 전시회의 준비가 시작됐다. 작가는 약 1년 반 정도 경전을 읽고 공부하고 나머지 3년반을 아침부터 밤까지 판화작업에 매달렸다. 그 결과 청탁받은 100점을 훌쩍 넘은 300여점을 제작했고 이 중 205편을 추려내 전시회를 열게 됐다.


이철수 작가 자신은 원불교 신자가 아니지만 젊었을 적 원불교를 믿었던 아내를 따라 원불교당에 간 적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그는 타종교에 열려 있는 원불교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 중이던 1984년 원불교 아침 법회에 갔는데 법당 한가운데 대형 TV를 놓고 그날의 법회를 여의도 광장에서 열리고 있는 교황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원불교에 호감을 갖고 있다가 5년전 원불교의 제안으로 '대종경' 등의 경전을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 작가는 우리말로 우리의 정서에 기초해 쉬운 언어로 써있는 원불교 경전에 매료된다.


"원래 모든 종교의 교리는 찰떡처럼 이리 저리 뭉쳐도 하나가 되는 서로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원불교는 우리의 언어로 쉽게 쓰여진 데다가 곱씹을수록 많은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하지만 쉬운 내용의 경전은 작가가 판화로 옮기는 과정에서는 도리어 난관이었다. 작가는 그 어려움을 이렇게 비유했다. "'대종경'은 자극적인 느낌없이 폭 익은 고구마같았습니다. 찔러도 저항이 없어 젓가락으로 들어올릴 수 없을 것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야깃거리를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작품 곳곳에서 작가의 의문과 감탄, 재해석, 위트가 빛난다. 덧붙일 것도 뺄 것도 없는 경전의 말씀엔 아무런 작가의 글도 덧붙이지 않고 '침묵'함으로써 '곰곰이 성찰중'임을 보여준다.


1980년대 강렬한 판화작품으로 시대의 정서를 대변했던 그는 1988년을 기점으로 자기성찰과 생명의 본질에 대한 관심으로 판화의 영역을 확대해 오늘날에 이르렀다.


"우리가 이루고 싶은 것은 존재에 대한 깊은 이해입니다. 표피로 흘러가는 예민하고 이기적인 판단이나 분노에 휩싸여 살다가 이에 피로감을 느끼면서 마음에 병이 들지요. 이 경전을 보면서 찔려도 찔리지 않고 맞아도 아프지 않는 마음이 우리 속에 자리하고 있다고 믿게 됐고 그 내용을 다양하게 풀어냈습니다."


아울러 작가는 자신을 '민중판화가'로 부르는 데 대한 부담감도 피력했다. "내게 뭐라고 딱지를 붙이고 싶어하는데 사람은 수없이 바뀌는 겁니다. 망가진 진보도, 망가진 보수도 많이 봤습니다. 나는 누구도 망가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딱지를 붙이지 말고 내 변화를 그냥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이어 "세상의 변화 속에서 이건 정말 긴급하게 알려야겠다 생각되는 것을 화가인 내가 끄집어내고 애쓰며 만든 결과물이 이번 전시회"라고 덧붙이며 세상의 현안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음을 시사했다.


판화전은 21일에서 다음달 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관에서 열린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대종경 필사본 및 영인본(원본을 과학적으로 복제한 판본) 8권도 함께 전시된다. 서울 전시가 끝나면 대구, 광주, 익산, 부산, 대전 등의 전국순회전도 열릴 예정이다. 전시작품이 그대로 담긴 같은 제목의 책도 문학동네에서 발간됐다. 다음은 전시회의 주요 작품들이다.

'개싸움'© 이철수
'개싸움'© 이철수
'봄바람은…'© 이철수
'봄바람은…'© 이철수
'참회문'© 이철수
'참회문'© 이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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