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7.16 20:09수정 : 2014.07.16 21:17

세월호 참사로 친구를 잃은 단원고 생존학생들이 16일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달라"며 국회를 향한 1박2일 행진 끝에 여의도공원을 지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곽병찬 대기자의 현장칼럼 창

노숙에 들어갔습니다
단식을 선택했습니다
세월호 침몰, 아이들 죽음 앞에
함께 고통스러워했던
이웃들을 위한 것입니다

이순신 동상 앞 분수대에선 아이들이 뛰놀고 있습니다. 물방울처럼 부서지는 아이들의 웃음이 눈부십니다. 천진하고 찬란한 생명.

분수대 앞에는 작은 천막이 있고, 거기엔 그런 아이들을 빼앗긴 아버지들이 있습니다. 죄책감에 숨도 제대로 못 쉬며 지내온 지 벌써 석 달, 그리고 오늘로 나흘째 곡기를 끊은 아버지들입니다. 천막 앞 학교 교실 반만한 잔디밭엔 어머니와 가족들이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손에 든 피켓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혀달라는 호소가 적혀 있습니다. 가족들이 피켓을 힘주어 잡고 있는 것이, 마치 떠나간 아이의 손목이라도 되는 것 같습니다.

한낮의 햇살을 가리는 노란 우산 위에는 이런 내용의 글이 적혀 있습니다. ‘별아, 우리 곁으로 와줘, 엄마 아빠의 수호천사가 되어줘.’ 또박또박 쓴 글자 하나하나가 하늘에서 내려온 별과 같습니다. 파란 잔디밭 위엔 노란 종이배들이 떠 있습니다. 배에는 아이들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습니다. 탐욕과 무책임의 이름인 ‘세월호’가 아니라, 이제는 죽어 평화와 안녕의 기도가 되어버린 아이들 이름입니다.

잔디밭 앞에는 서명대가 있고, 아이들의 오빠와 언니 나이쯤 되어 보이는 젊은이들이 두 손을 입에 모으고 호소합니다. ‘여러분의 서명이 여기 유족들의 눈물을 씻어줍니다.’ ‘여러분의 서명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듭니다.’ 정부 여당이 적당히 돈으로 입막음하려는 특별법이 아니라, 제대로 참사의 진실을 규명할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입니다. 광화문 네거리, 파란 신호등이 켜질 때마다 사람들이 밀려오고 밀려갑니다. 열에 한둘 다가와 서명지에 이름을 쓰고 주소를 쓰고 서명을 합니다. 1분이나 걸릴까. 그러나 대개는 신호가 바뀔세라 총총걸음입니다. 서명대 앞에서는 발걸음이 더욱 빨라집니다. 일부 고개를 떨군 이들도 있습니다. 신호를 한 번 더 기다린다고 바뀔 건 하나도 없는데…, 그들은 바쁘기만 합니다.

대개는 결혼해, 분수대에서 뛰놀 만한 아이들을 가진 사람들. 머잖은 날 결혼해 아이들 낳고, 그 아이들과 손잡고 들로 산으로 혹은 배 타고 비행기 타고 바다 건너 여행을 갈 법한 사람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는 수학여행에 아이들을 떠나보낼 사람들. 하지만 신호 한 번 더 기다릴 여유는 없나 봅니다. 더 빨리 가고, 더 빨리 벌고, 더 빨리 출세하려다, 세월호,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등 참사가 잇따랐는데…. 천막 속 아버지들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지금까지 풍찬노숙하다가 이제 단식이라는 마지막 수단을 든 것은 그런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일찍 찾아온 무더위, 한낮의 뙤약볕을 온몸에 받으며 안산에서 팽목으로, 팽목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광주에서 부천으로, 분향소에서 한국방송으로, 한국방송에서 청와대로, 청계광장, 광화문광장에서 국회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잊지 말아달라고 호소한 것도 그런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56)씨와 누나 이아름(25)씨, 김웅기군의 아버지 김학일(52)씨가 13일 경기 안산 단원고에서 전남 진도 팽목항까지 걸어가는 도보 순례를 하고 있다. <한겨레21> 정은주 기자

때론 돈 때문에 그러느냐, 자식 팔아 목돈 만지려고 하느냐, 종북 빨갱이 도와줄 일 있느냐, 따위의 이 나라 잘못 늙은 사람들의 조롱을 들으면서도 서명 용지를 내밀었던 것도, 배지를 단 자들에게 모욕을 당하면서도 국정조사장을 떠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보상을 바란 게 아닙니다. 의사자 지정이나 대입 특례 따위는 생각도 안 했습니다. 그저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지워, 우리 아이들이 안전한 대한민국을 세우는 데 밑거름이 되고자 했을 뿐입니다. 탈탈거리는 버스에 의지해 전국의 주요 도시를 찾아다닌 것도, 일부 유족이 안산에서 팽목으로, 팽목에서 대전까지 1900리 길 도보행진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았고, 억지로 뜻을 관철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눈물과 피와 땀, 그리고 정성만 바쳤을 뿐입니다.

그러나 국가를 개조하겠다는 사람들은 참사의 진실을 막는 데 온몸을 던졌습니다. 개조든 혁신이든 잘못을 드러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지만, 그들은 진실을 숨기는 데 온갖 노력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독립적인 기구에 진실 규명을 위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습니다. 힘도 없고 빽도 없는 유가족들은 급기야 국회 본관 앞에서 노숙에 들어갔습니다. 급기야 희생자 부모 열다섯 분은 생명을 건 마지막 수단, 단식을 선택했습니다.

자식이 희생된 것만도 감내하기 힘든 고통입니다. 그러나 이제 저의 몸과 마음을 시대의 제단에 내어 놓았습니다. 제 아이를 위한 것도, 남아 있는 가족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세월호의 침몰과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 함께 고통스러워했던 이웃을 위한 것이니, 어찌 성스럽다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이 야비한 세상에서 제 몸을 바쳐 이웃을 지키려는 성자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순신 장군 뒤로 광화문, 근정전 너머 청와대가 보입니다. 우리 곁에 온 성자들, 이제 누가 그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합니까.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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