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2.24 18:42수정 : 2014.12.24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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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4월9일 아침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8명이 대법원 판결 18시간 만에 형 집행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들과 함께 서울 서대문형무소로 달려와 항의하던 시노트 신부가 경찰에 끌려가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가신이의 발자취] `시노트 진필세’ 신부님 영전에

지난 12월18일, 문정현·안충석 신부와 함께 병상에 계신 시노트 신부님을 찾아가 뵈었습니다. 혼미한 의식 속에서도 신부님은 저희를 보시고 “아! 문 신부님, 안 신부님, 함 신부님이 오셨군요. 반가워요”라고 기쁘게 응답하시며, 또박또박 말씀하셨습니다. “나, 지금 하느님께로 가고 있어요!” “우리가 함께했던 그때 참 좋았어요.” “여러분들 참 좋은 일을 했어요!” “지학순 주교님이 교회를 확 바꾸어 놓으셨어요!” “참으로 아름답고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저희는 숨죽이며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이고 묵상하며 기도했습니다.


목이 마르고 입술이 타, 메리놀회 신부님들이 얼음물을 타 드리니 입술을 축이시며 계속 읊조리셨습니다. 하늘과 땅을 넘나드는 천상의 언어였습니다. 링거 주사로 멍이 든 신부님의 팔과 손을 잡고 저희는 40분 남짓 곁에 있었습니다. 신부님의 요청으로 기도를 하며 최근의 행업을 함께 되새겼습니다.


지난 10월24일 동아자유언론수호선언 40돌 기념행사에서 신부님께서는 1960년에 선교사로 한국에 오시어 영종도에서 14년간 사목하시며 섬 주민들과 병든 이웃을 위해서 헌신하셨던 일, 그리고 74년 청년 학생들의 무더기 투옥을 지켜보면서 세상 한복판으로 나오게 된 과정, 도시산업선교를 위해 투신하신 목사님들을 통해 받은 자극, 마틴 루서 킹 목사의 ‘해방을 위해 꿈을 지녀야 한다’는 설교를 통해 두번째 회심 과정을 거쳤다고 하셨지요.


특히 김수환 추기경님과의 만남을 회고하셨습니다. “추기경님, 왜 가톨릭교회는 이처럼 잠잠합니까? 목사님들은 투신하고 또 많은 분들이 감옥에 갇혀 계신데 왜 가톨릭인들은 이를 외면하고 있습니까? 성령께서는 개신교 안에서만 활동하고 계십니까? 가톨릭의 현 모습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가톨릭은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라는 항변의 편지를 드린 게 계기였습니다. 훗날 직접 만난 자리에서 격한 표현에 대해 사과했을 때 김 추기경님은 “아닙니다. 신부님께서는 참으로 바른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때문에 제가 오늘 이렇게 신부님을 모셨습니다”라고 대답하시며 반겨주었고, 두 분은 두어 시간 동안 깊은 대화를 나누셨다지요.


신부님께서는 ‘동아투위’ 해직기자들의 헌신을 기리며 아름다운 찬송가 한 구절을 되새기셨습니다.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결단할 때가 있나니, 참과 거짓이 싸울 때 어느 편에 설 건가!” “그렇습니다. 결단은 투신입니다. 결단은 선택입니다. 그리고 모험입니다. 침묵만 하면 자리가 보장되고 미래가 보장되건만 동아투위 기자들과 인권·민주화를 위해서 투신한 여러분은 결단했습니다. 그것은 위험을 무릅쓴, 자신의 전 존재를 건, 그리고 가정을 넘어선 위대한 결단이었습니다. 모든 예언자들과 선구자들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여러분들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 말씀이 이제 우리에게는 귀중한 유언이 되었습니다.


신부님, 2004년 9월 금강산에서 열린 정의구현사제단 30돌 기념 남북 공동행사 때 감개무량해하던 모습도 선연합니다. “이제 내 소원은 이루어졌다!” 당신은 그날도 무고하게 희생당한 인혁당 사형수들과 가족들을 위해 울며 기도를 바치셨습니다. 그분들이 바로 신부님께는 십자가의 예수님이고 부활의 표징이었습니다. 신부님의 가장 아름답고 밝고 기쁜 모습을 저는 늘 그 가족들과의 만남에서 확인했습니다.


파주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 잠드실 신부님, 하늘나라에서 우리 민족의 일치와 화해를 위해 하느님께 전구해 주십시오. 신부님을 기리며 우리는 모두 진정한 참회와 속죄의 기도를 드립니다. 아멘.


함세웅 신부/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