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석달마을' 국가배상소송 재파기..."위자료 과다"

14.06.12 09:18l최종 업데이트 14.06.12 09:18l                  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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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초동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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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학살사건 피해자들의 국가배상금 액수가 너무 많다며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조희대 대법관)은 지난 5월 29일 피고 '대한민국'이 채의진(78)씨 등 문경 석달마을 민간인학살사건 피해자 4명에게 억대 배상금을 지금하도록 한 원심판결이 "위자료 산정 법리를 오해했다"며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문경학살사건은 1949년 12월 24일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속봉리 석달마을에서 벌어진 국군의 무차별 학살극이었다. 석달마을 주민 127명 가운데 86명은 이 일로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문경학살사건이 여느 민간인 희생사건과 비교할 때 위자료액수를 높여야 할 특별한 사정이 없고, 피해자들 상호간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원심 판결에 문제가 있다며 두 번째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 국가 배상책임 인정하더니... 3년 만에 "금액 너무 많아"

2012년 4월 1차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채의진씨 등 원고들에게 피고 '대한민국'이 9억 원~18억 원에 달하는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년 전 대법원이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데에 따른 것이었다.

오랫동안 '무장공비의 학살극'으로 위장·은폐됐던 문경학살사건은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 결과 무고한 민간인이 국가폭력에 희생당한 범죄로 드러났다. 이후 채씨 등은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했으나 1·2심에서 잇따라 패소했다. 재판부는 문경학살사건이 국가공권력이 저지른 불법행위라고 인정하면서도 손해배상 청구권의 시효(5년)가 1954년 12월로 끝났기 때문에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2011년 9월 "국가권력의 비호나 묵인 하에 조직적으로 자행된 기본권 침해는 통상의 법 절차로 구제하기 어렵다"며 공소시효가 끝났어도 손해배상 책임이 유효하다며 원심 판결을 깼다. 이듬해 법원은 채씨 등이 가족을 잃은 피해자이자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인 점을 감안해 배상금 규모를 정했다. 그 기준은 희생자 본인은 3억 원, 배우자는 1억 5000만 원, 부모와 자녀는 9000만 원, 형제자매는 1500만 원, 조부모와 손자는 300만원이었다.

3년 사이에 대법원은 달라졌다. 이례적으로 배상금 원금까지 깎아버렸다. 지금껏 대법원은 과거사사건 위자료 산정을 사실심법원(1·2심)의 재량권으로 인정해왔다. 인민혁명당 재건위사건 피해자들의 국가배상금이 줄어든 것도 원금이 아니라 이자(지연손해금) 계산법이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국가가 상고이유로 내세운 '액수 과다' 주장을 받아들여 "원심 재판부가 위자료 산정 법리를 오해, 재량권을 잘못 행사했다"고 판시했다. 이미 2012년 5월 배상금을 지급받은 원고들은 2차 파기환송심 결과에 따라 다시 돈을 반환해야 할 수도 있다.

법원, 과거사 청산노력 후퇴하나... "국가 불법은 끝까지 책임 물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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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민간인학살사건 유족들이 여의도에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희생자들의 유골을 놓고 시위를 벌이는 모습(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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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에 참여해온 박갑주(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다른 과거사사건과 비교해 봐도 문경학살사건 청구금액은 과다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보다 더 큰 규모의 배상금이 확정된 사례도 있었다. 법원은 1987년 정부가 부부싸움에 이은 살인사건을 간첩사건으로 조작했던 '수지 김 사건'의 유족들에게 국가가 위자료 42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1973년 중앙정보부에서 불법수사를 받다 의문사한 고 최종길 교수 유족들도 국가배상금 소송에서 이겨 18억여 원을 받았다.

그는 "생존자 대부분은 가족 전체가 몰살당해 충격이 컸고 (국군의 방화로) 집이 불타는 등 재산피해까지 입은 데다 1960년대부터 진실 규명 노력을 해왔지만 '빨갱이' 등으로 몰리며 탄압당했다"고 말했다. 학살사건의 그림자가 평생 그들을 따라다닌 것에 비하면 위자료 금액은 결코 과다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박 변호사는 다른 문경학살사건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소송도 언급하며 법원의 보수화를 우려했다. 5월 29일 대법원 2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국가 범죄에 소멸시효는 없다'던 자신들의 결정을 근거로 문경학살사건 다른 피해자들이 제기한 상고도 심리불속행 결정(하급심 판결을 다시 심리하지 않고 기각)을 내렸다. 그는 "법원의 과거사 청산노력이 후퇴하는 것 같다"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처럼 군인·경찰이 조직적으로 저지른 국가의 불법행위는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그 책임을 끝까지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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