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7.13. 20:06 수정 : 2014.07.14 10:12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

교황 프란치스코·에우제니오 스칼파리 외 지음, 최수철·윤병언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신앙인과 무신론자.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1936년생.  vs.  에우제니오 스칼파리. 1924년생.


베르골리오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계 철도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지난해 3월 로마의 대주교, 곧 교황이 된 사람. 그가 취한 이름 프란치스코는 역사상 어떤 교황도 택하지 않았던, ‘아시시의 성자프란체스코에게서 따온 것. ‘청빈에 살고 불의에 눈감지 말 것을 온통 삶을 통해 요구했던 이의 이름이다.


스칼파리는 이탈리아 중도좌파 성향의 일간 <라 레푸블리카>의 창립자. 1976년 이 신문을 창간해 96년까지 이끌며 우파 성향의 다른 일간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력지로 키워낸 언론인이다. 스칼파리는 지난해 7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교황 프란치스코에게 무신론자가 교황에게 묻는다라는 제목으로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하나의 진리만이 존재하는가? 무신론자도 용서받을 수 있는가?


신자유주의의 야만이 전일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시대의 한복판에서 교황은 교회의 목적이 선교가 아니라고 말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청빈한 교회야말로 예수와 그 사도들이 세우려 했던 교회라는 것이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프란치스코 교황의 답신은 정중하면서도 진솔했다. 진리는 하나인가? “저는 진리가 절대적이라고 신자들에게조차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절대적인 것은 이탈되어 있는 초월적인 것, 모든 관계를 벗어나 있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에 따르면 진리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고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다. 따라서 진리는 관계이다.”

 

교황은 오늘날 세계 경제 현실을 야생적 자유주의라며 질타했다. 교황이 꿈꾸는 교회는 청빈한 교회와 수평적 교회다. 청빈한 교회를 내세우는 행위가 공동선을 실현하는 하나의 기적이다.

 

스칼파리는 1962년 소집됐던 가톨릭교회의 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기한 과제를 거론했다. 2차 공의회는 진리와 자유의 주제를 정면으로 다뤘을 뿐 아니라 교회와 근대성 사이의 대화를 시도하겠다고 천명했다. 쉽게 말하면, 교회의 사명을 선교(개종)가 아니라 인류의 존엄성과 공동선 실현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를 가톨릭계에서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일컬었다. 그러나 2차 공의회 정신은 이후 좌초했다.

 

이에 교황은 신앙이란 비타협적인 것이 아니며 외려 타자를 존중하는 공존의 상황 속에서 성장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인류의 공동선 추구와 이를 위한 대화 의지의 강한 표명인 셈이다.

 

얼마 뒤 스칼파리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저편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프란치스코 교황입니다.” 이렇게 편지 논전은 교황의 소박한 거처 산타 마르타작은 방의 대담으로 이어졌다.

 

교황은 스칼파리와의 대담에서 2차 공의회 정신을 되살려 적극 펼치겠다는 뜻을 피력한다. “우리는 그분들이 제시한 방향으로 그리 멀리 나아가지 못했지만 이제 저는 다시 그 일을 해내고 싶은 겸손함과 야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두 사람이 가닿는 공통지점은 인류를 위한 공동선의 추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황은 타인에 대한 사랑이 줄고 에고이즘(이기주의)이 늘어나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 세계의 경제 현실을 두고는 야생적 자유주의라며 강하게 질타했다. “저는 야생적 자유주의라는 것이 강자를 더 강하게 하고 약한 자를 더 약하게 할 뿐이어서 결과적으로 소외를 더 심화시킨다고 생각한다. () 지나치게 벌어진 격차를 바로잡기 위해 부득이한 경우라면 정부의 직접 개입도 허용해야 한다.”

 

스칼파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꿈꾸는 교회를 이렇게 요약한다. “그의 소명은 혁신적인 두 메시지 위에 기초한다. 아시시의 성자 프란체스코의 청빈한 교회와 (마르티니 추기경이 추구했던) 수평적 교회다. 여기에 더해, 세 번째는 심판하지 않고 용서하는 하느님이다.” 그러곤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청빈한 교회를 내세우는 교황의 행위가 이 세상에 공동선을 실현하는 하나의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교황은 교황 관저를 거절하고 산타 마르타의 작은 방을 택한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다. “교황궁 안에 자리한 교황 관저는 깔때기를 거꾸로 엎어놓은 것 같은 모양이에요. 커다랗고 널찍하지만 입구가 정말이지 좁아요. 사람들이 물방울이 하나씩 떨어지듯 들어가는 거예요. 그런데 전 아니에요. 사람들 없이는 살 수가 없어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해요.”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 윗글은 허미경 기자의 긴 글을 임의로 대폭 줄인 압축글이다.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