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1.29 19:08수정 : 2015.01.29 23:43

이삼성 교수. 사진 한승동 선임기자

[짬] ‘동북아 안보공동체 토론회’ 발제
이삼성 교수

“핵무기가 파괴가 아닌 평화의 수단이라고 인식하는 핵무기주의의 미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핵 무장은 북한뿐만 아니라 남북통일 이후의 한반도 안보와 평화도 지켜주기보다는 오히려 더 위태롭게 만들 것이다. 세계 3대 핵 보유국이 밀집한 동북아에서 핵무장한 한반도는 강대국간의 갈등이 무력충돌하는 유사시에 일차적인 공격 목표가 될 위험성을 자초하는 어리석고 위험한 선택이다.”


지난 28일 서울 충정로 평화운동단체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상임대표 문규현) 부설 평화통일연구소에서 열린 ‘동북아 안보공동체 연구·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선 이삼성(57·사진) 한림대 교수는 핵전쟁은 그 자체로 결코 용납해선 안될 일이지만, 만일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상대적으로 좁은 국토를 지닌 한반도는 훨씬 더 많은 고성능 핵무기를 지닌 광대한 국토의 상대국들을 대적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평화 위한 핵무기주의’ 미망은 위험
‘북핵’으로 동북아 군비경쟁 악순환
‘핵무장한 한반도’ 유사시 공격 유발
평화협정·‘동북아 비핵무기지대화’
한반도·동아시아 안전에 필수적
“미국만 바라보는 정부 안타까워”


이 교수는 “핵무기의 궁극적 폐기를 지향하는 것이 인류 보편의 국제적 규범”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북 또는 남·북 모두 핵무장을 추구해서는 안될 이유를 일단 두 가지로 요약했다. “우선, 일방 또는 쌍방의 핵무장은 군비경쟁의 질적인 상승을 초래한다. 그만큼 상호불신과 불안 및 적대의식이 심화될 수밖에 없으며, 대화와 협력을 토대로 한 평화적 통일 과정에 독이 될 수밖에 없다. 또 핵무장을 했거나 그런 의혹을 받는 한반도의 통일을 주변국들은 더욱 경계할 수밖에 없다. 그런 주변 환경은 한반도 통일을 가로막는 치명적인 악재가 될 수 있다.”


예컨대 북의 핵개발이 남북 갈등뿐만 아니라 일본의 핵무장을 자극해, 핵 경쟁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동아시아 국가들의 군비경쟁을 가속화시켜 “한반도 안보 상실이라는 돌아올 수 없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2014년 현재 분리 플루토늄을 4만7000㎏(47톤)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핵무기 보유국들에 비해서도 현저히 높은 수치다. 플루토늄 8㎏이 원폭 1개에 해당한다는 것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공식 견해다.


“일본은 지금 5천개 이상의 원폭 원료를 갖고 있는 셈이다. 그걸 신속하게 핵무기화할 기술도 갖고 있다.” 이 교수는 ‘동북아 비핵무기지대화’가 필요한 절실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이 막대한 원폭 원료를 보유한 상황에서 비핵지대화론은 무의미한 얘기라고 냉소하는 주장도 있지만,그는 그럴수록 한반도와 일본이 함께 비핵무기지대 건설을 위해 협력하도록 하는 것이 절실한 중요성을 갖는다고 믿는다. 그는 남북뿐만 아니라 일본까지 비핵무기지대화에 참여하게 되면, 핵우산을 핵으로 한 미국 주도의 동북아 안보질서에 의미있는 내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은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는 안보질서에도 근본적인 변화의 시작을 뜻하게 된다. 그로써 미국과 중국 사이의 핵군비경쟁 역시 전반적인 절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교수가 보기에 북한의 결과적인 핵무장 배경은 “미국에 의한 핵 선제공격 옵션뿐만 아니라 첨단 재래식 전쟁 능력에 의한 위협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따라서 북한 핵폐기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미국의 핵선제공격 위협뿐만 아니라 재래식 전쟁 위협도 제거하는 포괄적 안전보장이 핵심적이다.”


이 교수는 6자회담이 한반도 평화와 함께 동아시아 공동안보를 구축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중대한 제도적 자산이라고 이해한다. 6자회담의 지원하에 남북한과 미국 및 중국이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이를 바탕으로 남북한 및 주변 4강이 함께 동북아 비핵무기지대를 구축함으로써 동아시아 공동안보의 제도적 초석을 마련할 수 있기를 그는 희망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리더들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그것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 동아시아 공동안보를 향한 비전을 개발하고 제시하는 일에는 대단히 소극적이라는 사실을 이교수는 안타깝게 생각한다.


“평화협정 체결과 동북아 비핵무기지대화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도, 동아시아 평화와 안전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동북아 안보공동체, 평화공동체에 대해 일부에서 얘기는 하지만 그마저 너무 추상적이다. 구체적 어젠다에 대해 얘기할라치면 곧바로 비현실적이라거나 너무 먼 얘기라는 부정적인 반응이 돌아온다.”


그리고 “이런 논의 자체를 당사자인 우리가 아니라 주변 강대국들의 의지와 선택에 맡기고 있는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중국의 급속한 국력 성장으로 미일동맹과 중국 사이의 지정학적 긴장은 더욱 누적되어가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열을 올리고 있는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은 핵무기체계에서 그렇지 않아도 심한 불균형에 처해 있는 중국의 불안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이 교수는본다. 이 마당에 박근혜정부는 전시작전권 환수를 다시 사실상 무기한 미국에게 맡기기로 결정했다. “한국 안보의 경제적 기초는 대중국 의존으로 커다란 지각변동을 겪고 있음에도 한국 보수정권의 지정학적 전략은 ‘가치동맹’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오히려 더 심각한 미국 의존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맹목적인 가치동맹이 아니라 가치의 균형과 주체적 종합에 우리의 길이 있다고 믿는 이 교수는 한국정부의 전략적 사고에 “더 근본적이고 치열한 고민”을 주문했다.

 

이 교수는 2002년 “세상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싶어서 서재 삼아” 경기 남양주군 수동면 산중턱에 “직접 톱질, 망치질해서” 집을 짓고 홀로 들어갔다. 어언 10여 년, 동아시아의 질서와 평화를 중심으로 하는 연구와 강의에 집중하며 살았다. 현직 교수이면서도 은거하는 사람처럼 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는 그의 생활방식은 한 가지 점에선 확실히 긍정적이었다고 했다. “산골에 살면서 장작을 패는 등 육체노동을 일상의 일부로 삼아서인지 심장병은 크게 좋아졌다. 유학시절 이후 내내 괴롭혔던 아토피 증세도 95%는 나은 것 같다.” 말 그대로 그는 건강해 보였고 마음의 평화도 느껴졌다. 그의 식구들은 ‘수동 움막’에서 자동차로 40분쯤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단다.


요즘은 2009년 1·2권을 출간한 대작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제3권 집필에 집중하고 있는데, 20세기 동아시아가 그 주제다. “6년째인 셈인데, 올해 말에는 탈고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