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1.29 21:02수정 : 2015.01.30 10:02

테사 모리스 스즈키와 함께 여행하면서 현지 그림을 그린 동생 샌디 모리스(왼쪽)와 일부 구간을 함께한 에마 캠벨이 압록강 단교 앞에 섰다. 멀리 보이는 건너편이 북한 땅. 현실문화 제공

[책과 생각]
영국 출신 호주 동아시아 연구자
분단 해법 성찰하는 금강산 여행기
“남북한은 제국주의 침략의 희생자
그 희생은 지금도 현재진행형”

길 위에서 만난 북한 근현대사
테사 모리스 스즈키 지음, 서미석 옮김
현실문화·1만8000원


“내 목표는 동북부 중국과 한반도가 세계 근대사에서 요충지였다는 것을 강조하는 동시에 독자들에게 그 지역 사람들, 특히 세계 언론에 비인간적이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습으로 그토록 자주 그려지는 북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소개하는 것이다.”


<변경에서 바라본 근대> <일본의 아이덴티티를 묻는다> 등의 책으로 잘 알려진 영국 출신 일본·동아시아 연구자 테사 모리스 스즈키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 교수의 <길 위에서 만난 북한 근현대사>(2010)의 원제는 ‘금강산으로 가는 여정’(To the Diamond Mountains)이다. 부제는 ‘중국과 한반도를 돌아보는 100년 여행’(A Hundred Year Journey through China and Korea).


이를 굳이 북한 근현대사라는 제목을 달아 출간한 것은 중국 동북3성(만주)에서 금강산까지 이어지는 여행기 형식의 책 내용이 주로 북한의 과거 및 현재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북한 주민들 일상사를 소개했다는(비난하거나 반대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종북주의자’로 몰리고 당국의 수사까지 받은 끝에 결국 국외추방당한 재미동포 신은미씨 일을 그와 연관지어 떠올리게 된다. 지은이는 책에서 이런 말도 한다. “내가 1970년대에 남한을 처음 방문했을 때, 남한은 독재자 박정희의 통치 아래 있었고, 많은 정치적 반대자를 감옥에 비참하게 가두어두고 있었다. 1970년대에 남한의 정치범들이 수용되어 있던 감옥은 오늘날 북한 감옥과 비슷하게, 넓지 않다. 어떤 면에서 오늘날 북한에 대한 나의 감정은 박정희 시절의 남한을 처음 방문했을 때 느꼈던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은 바로 정권의 본성에서 느끼는 절망감과 좁은 공간에 갇혀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은 채 어떻게든 살아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다.”


그 자신 디아스포라인 지은이는 탈근대주의자의 시선을 지니고 있으며, 북한을 기괴한 나라로 만들어가고 있는 북한의 억압체제에 대해서도 당연히 냉소하고 비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북을 외면해선 안 된다고 얘기한다. “만일 우리가 문을 닫아버린다면, 소통이 불가능하다며 일부 국가들을 상종하지 않으려 한다면, 갈라진 틈 사이로라도 엿보려고 시도조차 않는다면, 가장 억압적인 사회를 에워싼 복잡한 문제와 모순들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나면 우리는 너무도 쉽사리 마음속 이미지로 ‘불량국가’를 만들어내고, 그러한 사회의 매우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 안이하고도 단순한, 거의 틀림없이 잘못된 해결책들을 생각해내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억압체제에 균열을 내고 비인간화를 무너뜨릴 수 없다고 그는 얘기한다.


북한, 나아가 한반도 전체를 근대 제국주의 침략세력의 희생자로 보는 지은이는, 또한 그 희생이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고 본다. 그는 근대 100년을 전쟁으로 보낸 일본이 일으킨 1894~1895년 청일전쟁을 ‘제1차 조선전쟁’으로 본다. 그 뒤의 러일전쟁과 6·25전쟁까지 결국 한반도를 장악하기 위해 한반도를 전장으로 삼은 제국주의 열강들의 각축전으로 보는 지은이는 앞으로도 한반도를 갈라놓은 휴전선이 전체 동아시아 지역의 운명을 좌우할 것으로 본다. “1910년 켐프가 이 38선을 원만히 넘어갔을 때 그랬던 것처럼 동북아시아는 그 미래가 갈등이나 화합 어느 방향으로도 기울 수 있는 분수령에 서 있다. 한쪽 세력이 지게 될지, 여러 세력이 협력하게 될지 기로에 서 있다.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지는 이 휴전선에서 결정될 것이다.”


지은이가 설정한 금강산은 빼어난 현실의 명산 금강산이자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국경인 휴전선에 위치한 정치적·상징적으로 중요성을 띤 장소”이며, 불교에서 얘기하는 보살들이 모여 사는 모순이 해소된 세계라는 중층적 의미를 띠고 있다. “나의 여정을 개척해나가는 동안 지난 수많은 여정들의 자취를 더듬으며 시공간을 넘나들다 보면, 금강산으로 가는 여정은 새로운 시각에서 북한과 주변 지역을 바라보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지은이는 1910년 일제의 조선병탄 며칠 전 한반도에 도착한 영국 랭커셔 섬유재벌 출신의 억척스런 여인 에밀리 켐프가 남겨 놓은 여행기 <만주, 조선, 러시아령 투르키스탄의 얼굴>을 길잡이 삼아 금강산으로 가는 여정을 짜고, 또 실행에 옮긴다. 이게 이 책의 중요한 특징이다. 100여년 전 켐프는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와서 하얼빈과 선양, 단둥, 평양, 서울, 부산을 찾았고 금강산도 여행했다. 지은이는 분단 등으로 달라진 상황에서 꼭 같지는 않지만 그와 비슷한 여정을 밟아가며 100년 전 상황과 지금 상황을 시공간적으로 교차하면서 역사를 되짚고, 100년 전처럼 대변전 중이지만 꽉 막혀 있는 동아시아의 출구를 상상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소용돌이치고 있는 동아시아에서 달라진 점은 그때는 중국이 지고 일본이 일어서던 때였지만 지금은 그것이 역전됐다는 것이다.


이 독특한 여정은 판 전체를 꿰뚫는 조망력과 깊이, 일상적 대상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뛰어난 묘사력과 공감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 독자들에게 동아시아와 세계에서 자신의 나라가 처한 위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새로운 시각을 줬으면 좋겠다”는 지은이의 바람이 이뤄질까.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