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2.04 21:57수정 : 2015.02.05 10:52

곽병찬 대기자의 현장칼럼 창 : 끌려간 소녀의 '애가' 한 편 얻는가

“이 작품을 만난 건 운명인 것 같습니다. 할머니들께 늘 죄송한 마음이 있었고 빚진 마음이었는데 이제라도 갚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귀향> 제작발표회(1월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 선 손숙 선생은 평생 무대를 지켜온 노련한 연기자였지만 떨고 있었다. 16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강일출 할머니의 정한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을까?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중국으로 미얀마로 끌려간 소녀 정민 역의 강하나, 그의 영혼을 이제야 제 고향으로 불러들이는 무녀 은영 역의 최리, 모두 10대. 캐스팅 제의를 받고는 두려웠다. 그러나 시나리오를 읽고는 거절할 수 없었다. 그건 어쩌면 저희들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다. 강하나의 어머니 김민수(오사카 재일동포 극단 ‘달오름’ 대표)씨는 위안소 관리담당 일본 여성 역을 맡았다. 일본군 사병 역이나 장교 역을 맡은 유신씨나 정문성씨 모두 재일동포다. 오사카 도심에 “바퀴벌레 조선인은 떠나라, 관동지진 때처럼 다 죽여버리겠다” 따위의 혐한 구호가 공공연히 나붙는 일본에서는 ‘어지간해서는 하기 힘든’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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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귀향’


<귀향>은 오는 3월 촬영에 들어간다. 조정래 감독이 작품을 구상한 지 12년 만이다. 시나리오를 들고 영화계의 알 만한 이들에게 협조를 구했다. 200부나 돌렸다. 관심도 많았고 격려도 많았지만 모두 손을 들었다. 어떤 극장이 그 아픈 이야기를 스크린에 걸까? 그 처참한 역사를 어떤 사람이 일부러 보려 할까? 일본과 콘텐츠를 교류해야 하는 대형 투자사들은 일본 쪽 파트너가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11년이 지나갔다.


지난해부터 국민 성금 방식에 호소했다. 일본동포들이 성금 5000만원을 보내왔고, 미국의 후원회장 유영구씨가 애리조나에서 모은 5000달러도 보내왔다. 그렇게 1억5000만여원이 모였다. 그러나 애초 예상했던 제작비는 25억원. 손숙 선생 등 배우와 스태프들이 노개런티로 참여하는 데 힘입어 일단 시작부터 하기로 했다. 그러나 경비와 제작비는 아무리 줄여도 최소 12억원.


지난해 12월 중순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이 포털 ‘다음’을 통해 뉴스펀딩에 나섰다. (▷ [다음 뉴스펀딩]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 )<귀향> 제작비 마련 프로젝트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였다. 애초 1000만원이 목표였지만, 1월30일 마감한 결과는 2억5000만원에 이르렀다. 이제 3월에 촬영에 들어가 8월에 개봉하기로 했다. 가다가 멈출 순 있지만, 불과 한달반 동안 뉴스펀딩에 참여한 1만4000여명의 시민이 뒷심이자 가능성이었다.


후원자들을 위한 콘서트가 서울 홍대 앞에서 열린 다음 날이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1월29일 미국 공립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일본군 위안부 관련 내용을 보고 “정말로 경악”했다. “(위안부 강제 징용 등) 고쳐 마땅한 것을 국제사회에서 바로잡지 않은 결과, 이런 교과서가 만들어지고 있다.” 마이크 혼다 미 하원의원은 30일 개탄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위안부를 성노예로 규정하고 규탄해왔다. 힐러리가 차기 미국 대통령에 당선돼 박근혜 한국 대통령과 함께 여성 대통령끼리 아베 총리에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장면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혼다 의원은 이렇게 촉구하기도 했다. 한국 교회는 일본 교회에, 한국 언론은 일본 언론을 상대로 진실을 이야기하고, 미국의 200만 한국인들은 백악관에 메일을 보내 미국 정부가 적극 나서도록 해야 한다. 얼마나 이 나라 정부, 이 나라 국민이 소극적이었으면 태평양 건너에서 그런 충고가 날아들었을까.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역대 어느 정상보다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3·1절, 광복절 등 각종 기념일마다 규탄은 이어져왔다. 그럼에도 밖에서 보기에 한국 정부와 국민이 하는 일은 없다. 그저 행사나 하고 규탄이나 할 뿐이다.


유대인 학살을 세계인의 가슴에 새긴 것은 희생자 숫자와 학살의 잔혹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계의 지성과 양심과 감성을 결정적으로 흔들고 울린 건 시와 소설과 회화 특히 영화였다. 쇼아, 소피의 선택, 쉰들러 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피아니스트, 아웃 오브 더 애시…. 그러나 일본군의 성노예 문제를 다룬 영화는 한 편도 없었다. 성노예로 끌려간 20만여명의 13~18살 소녀들. 차라리 학살당하는 게 낫지, 그들은 천 일의 밤낮 동안 유린당했다. 연극도 실은 일본의 극작가이자 연출가 후지타 아사야(1995년 작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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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그리운 이름, 어린 누이. 그러나 70여년 전 끌려가 대부분 돌아오지 못했다. 이제야 그 넋이라도 고향으로 불러들이려는가. 집으로 돌아가자, 나의 누이야, <귀향>(鬼鄕).


박 대통령은 매년 한두 편씩 꼭 영화관에서 관람한다. <국제시장>, <명량>, <넛잡>…. 그런데 모두 흥행에 성공한 대작이다. 영화를 정치적으로 소비하려 한다는 지적을 받는 까닭이다. 언니의 혼을 부르는 초혼의 상주가 되어, 그런 오해를 풀 수는 없을까?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