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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5-11-08 18:50수정 :2015-11-08 20:47
1950년대 할리우드 명배우 로버트 테일러와 데버러 커가 주연한 <쿼바디스>라는 영화가 있다. 원 제목은 <쿠오 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라틴어: 어디로 가시나요, 주님)이다. 그런데 올가을 우리 외교를 보면 ‘쿠오 바디스, 박근혜 외교’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9월3일 박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나란히 천안문 성루에 올라 전승절 열병식을 사열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수교한 지 20여년이 되지만, 50년대 초 한국전쟁 이후 40년 이상 적대관계에 있던 두 나라 지도자가 사이좋게 환담하는 장면은 “우리나라도 이제는 G2 국가 중국이 존중할 수밖에 없을 만큼 큰 나라가 됐다”는 증명사진이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도 박 대통령이 균형외교로 국격을 더 높여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성취감과 기대는 40여일 만에 무너졌다. 한-미 정상회담 차 미국에 간 박 대통령은 10월14일 한미우호협회 연설에서 “한국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정책의 핵심축”이라고 말했다. 원래 미국은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가를 내심 싫어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자신의 브랜드인 미-중 균형외교 차원에서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가했다. 그러자 미국에서 ‘한국의 중국 경사론’이 나왔다. 그걸 너무 의식했는지, 박 대통령은 미국에 가자마자 ‘핵심축’이라는 용어를 써가면서 “나 중국 편 아니고 미국 편이야”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했다.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정책은 아무리 미사여구로 화장을 해도 그 본질은 중국 압박 정책이다. 동맹관계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공식적 요청을 받기도 전에 박 대통령이 자진해서 그런 정책의 핵심축을 자임하고 나선 것은 좀 과했다.

이렇게 되면 9월초 한-중 정상회담 후 “조속한 평화통일을 위해 앞으로 두 나라가 긴밀하게 협의하기로 합의가 됐다”던 박 대통령의 말은 어떻게 되는 건가? 우리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미국 편에 서버릴 경우, 우리에게 무역흑자를 계속 안겨주고 있는 중국이 앞으로 어떻게 나오겠는가? 중국이 아직까지는 반응을 안 보였고, 11월초 방한한 리커창 총리도 그 일에 대해 내색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 앞으로도 그냥 넘어갈 거라고 보면 그건 오산이다. 중국은 박 대통령의 발언들을 굵직하게 메모해 놨을 것이다. 그리고 좀더 지켜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그걸 문제 삼으면서 우리를 압박해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

10월15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에서 박 대통령은 “한-미 동맹을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아시아 재균형 정책으로 중국을 압박해 나가려는 미국에 한-미 동맹을 압록강-두만강까지 확대하자는 박 대통령의 말은 매우 반가웠을 것이다. 반면에 그건 북한이 우리 대북 제의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말이다. 중국도 지금까지 박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했던 말들의 신뢰성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이쯤에서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 대통령이 ‘전략적 협력 동반자’인 중국의 국가행사에 참가한 것이 미국에는 대역죄가 되는 건가? 중국 경사론 좀 나왔다고 미국에 비대발괄해야 할 만큼 우리는 아직도 약소국인가? 박 대통령은 그런 나라의 대통령인가?

11월2일 한-일 정상회담을 하고 돌아간 아베 총리의 언행도 우리를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 “점심 따위로 국익을 깎겠나”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해 주었다.” 아베 총리가 박 대통령을 어떻게 봤기에 이런 오만방자한 말들을 쏟아낸단 말인가? 이건 미-중 사이에서 좌충우돌 외교를 하는 한국을 보면서, 일본이 앞으로 한국을 막 대하기로 작정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정세현 한반도평화포럼 상임대표·전 통일부 장관
정세현 한반도평화포럼 상임대표·전 통일부 장관
미-중 사이에서 나름 균형외교를 해왔던 박 대통령이 올가을 극과 극을 달렸다. 우리 외교가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걸 보고 일본이 우리를 함부로 대하는 일도 벌어졌다. 어떤 점에서 이건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보다 더 심각한 문제인데 이번 일도 그럭저럭 넘어가고 있다. 이러면 안 된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할 때 우리 외교의 ‘재균형’이 절실하고 시급하다.

정세현 한반도평화포럼 상임대표·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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