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7.08 19:03수정 : 2014.07.08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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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히 벡 독일 뮌헨대 교수(코스모폴리탄 연구소장)

‘위험사회’ 울리히 벡 서울 공개강연

“절로 ‘탈바꿈’ 안돼…잊지 않아야
기후변화 위기서도 정치권력 무책임
코스모폴리탄 관점으로 풀어야”

“지난 4월 벌어진 한국의 세월호 사고는 ‘특별한 재앙’이었고, 국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사회는 저절로 ‘탈바꿈’(Verwandlung)하지 않는다. 기자를 비롯한 여러 집단, 특히 시민들이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세월호 참사 뒤 ‘위험사회’에 대한 논의로 한국 사회에서 다시금 조명을 받은 바 있는 울리히 벡(사진) 독일 뮌헨대 교수(코스모폴리탄 연구소장)가 서울을 방문했다. 벡 교수는 8일 중민재단,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등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연 공개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도 세월호 같은 재난은 계속 일어날 것이고 국민들은 다시 한번 분노하며 문제를 깨달을 것이다. 그렇게 사고와 깨달음이 거듭되는 동안 거대한 ‘탈바꿈’이 일어나는 것이다.”

벡 교수는 지난 4월 이후 한국 국민들이 느낀 정치적 회의감이 앞으로도 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때문에 “정치 제도의 정당성을 의심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사고 뒤 정치권력은 자신들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좋은 질문’에 ‘나쁜 답변’을 하는 일종의 ‘정보 정치’를 했다. 이는 더욱 나쁘게 상황을 만들었고 정부의 무능과 무지를 드러냈다. 재난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매우 정치적인 처리방식이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 참사가 잊혀지고 여론이 잠잠해지면 정치인들은 또다시 과거 관행을 되풀이할 것이지만, 국민들이 정치적 회의감을 느끼면서 한번 약화된 정치적 정당성은 계속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처럼 근대화 이후 재난 국면에서 벌어지는 정치권력의 무책임성을 전지구적인 기후 변화의 위기에 대입해 다시 한번 강조했다. 글로벌 위험, 기후변화에서도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은 위험에 놓인 사람들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일컬어 “조직화된 무책임”이라고 그는 정의했다.

그렇다면 위기가 파국만 가져올까? 벡 교수는 지금까지 이어온 ‘위험사회’에 대한 경고와 달리, 기후변화 같은 거대한 재난이 가져다줄 긍정적인 변화의 가능성에 더욱 무게를 실었다. 예를 들면 2005년 미국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전에 홍수는 ‘환경 정의’의 문제와 관련이 없었지만 재난 뒤 인종 불평등과 자연재해의 연관성이 떠오르면서 ‘정의’에 대한 규범적 지평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는 글로벌 기후 위험이 지구 종말적 대재앙과 다른 일종의 “해방적 파국”이라며 “이것이 나쁜 것의 좋은 점”이라고 설명했다. 또 “민족주의의 틀을 넘어서 세계시민주의적 ‘코스모폴리탄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세계시민들이 위험 공동체로서 커다란 재난을 넘고 넘어야 세계의 사회 및 정치질서를 변경시킬 수 있는 근본적인 ‘탈바꿈’의 가능성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러자 청중들은 ‘너무 미래를 긍정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잇따라 던졌다.

“비관적으로 본다면 너무 지치지 않나? ‘탈바꿈’은 지금까지의 방법, 사고방식, 상상 및 정치 행위의 방법에 도전하는 것을 가리킨다. 기후변화 과학자는 비관적으로 미래를 전망하겠지만, 사회학자는 다른 접근법을 취한다. 잘될 거라 믿으면 잘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낙관주의를 가질 필요가 있다.”(웃음)

벡 교수는 9일 ‘기후변화와 위험사회’를 주제로 서울대 학술대회에 참가하며 10일 ‘서울은 안전한가?’라는 주제의 서울시립대 학술대회에 참가한다. 11일에는 서울시청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대담이 예정돼 있다.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