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pressEngine ver.2

글 수 444
[관리자]
2015.05.09 01:07:04 (*.70.29.157)
3075
  등록 :2015-05-08 19:34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잊지 않겠습니다>, 4·16가족협의회·김기성·김일우 엮음
박재동 그림, 한겨레출판, 2015
모든 가족이 화목한 것은 아니다. 사고무친으로 태어난 이들도 있다. 가정의 달, 민망한 이름이다. 우리 집도 스위트 홈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엄마와 나는 특별했다. 내 인생은 엄마의 죽음 전후로 나뉜다. 삶의 엔진이었던 엄마가 사라지면서 동시에 내 숨도 멈췄다. 살아갈 이유와 방향이 없다. 잃을 것도, 원하는 것도 없다.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엄마를 만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 비교 가능한 죽음은 아니지만 나는 세월호 유가족과 동일시하며 살았다. 그래서 가장 불편하고 이상한 말이 “잊지 않겠습니다”이다. 내 삶에 재건 가능성은 없다. 폭삭 주저앉았다. 불치병으로 엄마를 잃은 내가 이럴진대, 살릴 수 있었던 자식을 바다에 보낸 유가족들은 어떻겠는가. 매일매일 생각나는 아이들 그러나 다시 볼 수 없는 그 아이의 부재가, 어떻게 잊고 안 잊고의 문제겠는가.

<잊지 않겠습니다>는 <한겨레>에 작년 6월15일부터 세월호 추모 기획으로 연재된 학생들의 얼굴 그림과 가족들의 편지를 모은 책이다. 독자들은 매일 아침 그들과 마주했다. 한국 언론 역사에 지속적으로 거론될 만한 일이다. 글을 쓴 유가족들은 물론 박재동 화백과 김기성·김일우 기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나는 끝까지 읽은 글이 거의 없다. 그러나 그들은 고통과 마주하는 초인적 인격을 발휘했고 책이 나왔다.

사실, 잊지 말아야 할 유일한 주체는 국가밖에 없다. 그들만 안 잊으면 된다. “잊지 않겠습니다”는 공무원이 월급 받고 하는 업무다. 재발 방지, 유가족 위로, 진실 규명… 국가가, 대통령이, 있는 나라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정치는 당연한 행정까지 마비시켰다.

“잊지 않겠다”는 선의의 언어지만 엉뚱한 곳을 떠돌고 있다. 유가족이 아닌 사람의 입장이다.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앞이 깜깜해지는 이 길을 어떻게 걸어 나가야 할지…”(314쪽) 김동현군 어머니의 심정은 유가족의 보편적인 상황일 것이다. 현실과 현실부정, 그리움 사이에서 몸부림칠지언정 “잊지 않겠다”는 다짐은 가능하지 않다. 반대로, 당사자가 아닌 사람은 다짐을 거듭해야만 잊지 않을 수 있다. 그것도 보장된 일은 아니다. 이미 다른 처지. “당신 아이는 살아 있잖아요”, “아이(시신)를 찾았잖아요.” 언어의 가장 큰 특징은 의미의 배타성이다. 각자의 인생이 다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죽음 앞에서 무슨 합의가 가능하겠는가. 말마저 외로워진다.

‘잊지 않겠습니다’는 원래부터 문제적인 언설이다. 일단, 잊지 말아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1993년 전북 부안군 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292명 사망), 1995년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502명 사망),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192명 사망).(14쪽) 내가 어렸을 적 이리(익산)역 폭발 사고도 기억난다. 그 누구도 다 기억하고 살 수는 없다.

예상치 못한 심각한 문제가 또 있다. 사건 이후 몇 개월간 나는 계속 세월호에 대해 썼는데, 어느 날 독자 편지를 받았다. “불공평하다, 왜 세월호만 기억하냐”는 것이다. 자신은 중증 장애 아동을 키우는데 그런 부모의 고통을 생각해 본 적이 있냐고 ‘항의’했다. 고통을 비교하는 대신 연대하자는 하나 마나 한 답장을 보냈지만 나는 깨달았다. “잊지 말자”는 일상이 고통인 이들에겐 해당되지 않는, 배제의 말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이제 시간이 계속 흐를 것이다(428쪽, 박재동)”, “잊힐 것이다(430쪽, 김기성·김일우)”. “잊지 않겠습니다”보다 “잊힐 것이다”가 더 윤리적이다.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과 망각의 필연 사이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 피로 운운하는 여론이 고개를 들 것이다. 이 책이 소중한 이유는 잊힐 것이라는 자각, 4·16이 이제부터 시작임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보편적인 말은 없다. 어떤 이에게 착한 말이 어떤 이들에겐 비현실적이다. “잊지 않겠다”는 고통 외부의 시각이다. 기억해‘준다’가 아니라 당사자의 언어를 찾아야 한다. 예컨대, 슬픔이 일상의 일부라면 기억 투쟁은 필요하지 않다. 상실과 상실감은 인간성이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번호
제목
글쓴이
304 '유서 대필 사건' 강기훈, 24년 만에 누명 벗었다
[관리자]
2150   2015-05-14
입력 2015.05.14. 10:40 | 수정 2015.05.14. 11:40 [한겨레]대법원, '자살 방조 혐의' 무죄 선고 원심 확정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린 '유서대필 사건'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강기훈씨가 재야단체 동료의 유서를 대신 써...  
303 “베트남전, 기억을 위한 투쟁 됐다”
[관리자]
2496   2015-05-11
등록 :2015-05-11 19:20 베트남전쟁. 윤충로 박사 최근 논문서 주장 민간인 학살 진실규명 위한 1999~2000년 ‘한겨레21’ 캠페인 ‘반공·발전 위한 전쟁’ 공식기억 깨자 참전군인 기억 공고화로 반발 1999~2000년 <한겨레21>의...  
302 단원고 교감선생님의 ‘자살’…‘순직’ 인정 받을까?
[관리자]
2748   2015-05-11
등록 :2015-05-10 14:24수정 :2015-05-11 19:15 교사 2만1989명 ‘순직 인정’ 탄원서. [뉴스 쏙] 21일 ‘순직 여부’ 선고 공판 ‘생존자 죄책감’과 자살…순직일까 아닐까 “아마도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  
잊힐 것이다
[관리자]
3075   2015-05-09
등록 :2015-05-08 19:34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잊지 않겠습니다>, 4·16가족협의회·김기성·김일우 엮음 박재동 그림, 한겨레출판, 2015 모든 가족이 화목한 것은 아니다. 사고무친으로 태어난 이들도 있다. 가정의 달,...  
300 [포토] "힘내라 네팔”…사랑의 동전밭
[관리자]
2223   2015-05-06
등록 :2015-05-05 19:42수정 :2015-05-05 21:01 네팔 지진 피해자를 돕기 위한 ‘사랑의 동전밭’ 행사가 열린 5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광장 들머리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동전을 자루에 담고 있다. 모금한 동전 2억원은 네팔의 아...  
299 탈북청년들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참배…작지만 큰 시도
[관리자]
2244   2015-05-05
등록 :2015-03-23 20:03수정 :2015-03-23 22:14 3월21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찾은 탈북 청년 단체 위드유(with-U) 회원들이 노 대통령이 잠든 너럭바위 앞에 선 채 고개 숙여 묵념하고 있다...  
298 “유가족에 최루액 물대포…우린 국민 아닌 것 같다”
[관리자]
2245   2015-05-02
등록 :2015-05-02 17:36 노동절 노동자대회에 참석했던 노동자와 416세월호국민연대가 주최한 1박2일 행동에 참가했던 시민단체 회원, 시민들이 1일 밤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려하자 서울 안국네거리에서 경찰이 차벽으로 가로막은...  
297 네팔 대지진…참사 그 이전과 이후[포토]
[관리자]
3428   2015-05-02
등록 :2015-04-29 17:00수정 :2015-04-30 08:09 지난 토요일 낮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네팔의 유서 깊은 문화유적들이 파괴됐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네팔의 상징인 다라하라 타워를 포함해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 7곳...  
296 오월은 푸르구나 / 하성란
[관리자]
2335   2015-05-02
등록 :2015-05-01 18:39수정 :2015-05-01 20:24 큰이모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혹시나 평소처럼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나 너무 아파 까맣게 타들어간 메마른 얼굴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영정 속 모습은 ...  
295 ‘5·18 기념식’ 올해도 반쪽으로 치르나
[관리자]
2185   2015-05-02
등록 :2015-04-30 20:02 정부 ‘님을 위한 행진곡’ 제외에 행사위, 6일 박 대통령 면담 추진 “안받아들여지면 정부행사 불참” 제35주년 5·18민중항쟁 기념행사 위원회가 30일 오전 광주 동구 금남로 와이엠시에이(YMCA) 2층...  
294 송강호·김혜수 등 문화예술인 594명 ‘세월호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
[관리자]
3130   2015-05-02
등록 :2015-05-01 17:18수정 :2015-05-01 22:20 문화예술인 594명이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촉구했다. 왼쪽부터 배우 송강호, 김혜수, 박해일, 감독 박찬욱. 한겨레 자료사진 영화·미술·음악·문학·만화 등 총망라…“박 대통령,...  
293 공동선
[관리자]
2213   2015-04-29
05+06 122호 아, 대한민국!(*2015.3.설교에서) 지도자의 정신이 혼미한 나라 지도자의 이성이 마비된 나라 지도자가 영혼이 없는 나라 지도자가 없는 나라 자기만의 생존을 위해 지도자부터 도망치는 나라 죽음의 위험 앞에서 지도...  
292 김연아 “큰 고통 네팔 어린이들 도와요” 10만달러 기부
[관리자]
2458   2015-04-29
등록 :2015-04-28 19:01수정 :2015-04-29 00:55 유니세프한국위원회에 쾌척 김성령씨·블랙야크도 구호 지원 김연아가 네팔 지진 피해 어린이 돕기 성금으로 10만달러(1억700여만원)를 기부했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28일 전 피겨 ...  
291 사망자 4천명 육박…네팔 당국 “절망적 상황…장비 없어”
[관리자]
3213   2015-04-29
등록 :2015-04-27 20:03수정 :2015-04-27 23:32 26일 네팔 수도 카트만두의 주민들이 군 부대의 운동장을 대피소로 삼아 모여있다. 네팔 주민들은 여진의 공포 때문에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건물 밖에 나와 있다. 카트...  
290 미군 가는 곳이면 자위대도 간다
[관리자]
2214   2015-04-29
등록 :2015-04-28 00:49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26일 보스턴의 부유층 주거지인 비컨힐에 있는 자택에서 미국을 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오른쪽 둘째)와 그의 부인 아키에(오른쪽)를 맞이하고 있다. 보스턴/AP 연합뉴스 ...  
289 미-일 정상 ‘중국 견제 공동성명’
[관리자]
3693   2015-04-29
등록 :2015-04-28 23:29 버락 오바마(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28일 백악관에서 미국을 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환영하는 공식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힘에 의한 국가 행동은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  
288 ‘위안부’ 사죄·반성 없이…아베 “세계평화에 공헌 새롭게 결의”
[관리자]
2469   2015-04-29
등록 :2015-04-28 20:30 홀로코스트 기념관 계산된 방문 관람 마친뒤 반성 아닌 ‘자화자찬’ 방미 이틀째 하버드대 첫 연설 학생들 질문에 책임 회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 두번째)와 부인 아키에(왼쪽)가 27일 미국 워...  
287 미-일 정상회담 ‘공동 비전’…중국 견제 문구 명기
[관리자]
2386   2015-04-29
등록 :2015-04-28 20:29수정 :2015-04-28 21:35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오른쪽) 일본 총리가 27일 함께 차를 타고 워싱턴의 링컨기념관으로 향하고 있다. 백악관이 제공한 사진이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힘에...  
286 폐허 속 “살려주세요”…네팔의 절규
[관리자]
2381   2015-04-29
등록 :2015-04-26 19:54수정 :2015-04-27 09:56 규모 7.8의 강진이 네팔 수도 카트만두와 그 인근을 강타한 25일 카트만두의 한 주민이 무너진 빌딩 잔해 속에서 구조되고 있다. 카트만두/EPA 연합뉴스 7.8 강진에 사망자 24...  
285 봄도 저만치 피멍으로 피어있다 - 호곡! 세월호 1주기 온 몸으로 온 심장으로
[관리자]
2366   2015-04-17
등록 :2015-04-15 20:41수정 :2015-04-15 22:36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시 아까운 생목숨들 눈 뻔히 뜨고 검은 바다에 떼죽음으로 수장된 후 이 땅의 모든 거울은 깨진 거울이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아직 하늘 보기 두렵고 땅...  

알림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