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 강태화 | 입력 2014.05.20 02:32 | 수정 2014.05.20 09:28


박근혜 대통령이 조속한 처리를 요청한 '김영란법'은 국회에서 9개월째 잠자고 있다. 김영란법의 정식 명칭은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안'이다. 2011년 6월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 입법화를 제시하면서 김영란법이란 이름이 붙었다. 2012년 8월 공개된 '초안'에는 ▶100만원 이상 금품·향응을 제공받으면 형사처벌 ▶대가성·직무 관련성과 무관하게 처벌하는 파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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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지 5월 12일자 3면 ‘김영란법 필요성’ 보도

 2013년 8월 정부안이 제출됐지만 국회는 지금까지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관료들과 업계의 유착, 이 과정에서 빚어지는 부정부패가 세월호 참사를 야기했다는 지적이 나온 직후인 4월 25일에야 첫 논의가 이뤄졌을 정도다. 여야 지도부는 김영란법 통과를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직무 관련성이 있든 없든, 대가성이 있든 없든 금품을 수수했을 때는 처벌하는 법이 제정돼야 할 것"(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이라거나 "김영란법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조금 손볼 필요가 있는데 올해 안에는 통과시켜야 한다"(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고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19일 담화에서 "전·현직 고위 관료들의 유착고리를 끊는 게 중요하다. 국회의 조속한 통과를 부탁드린다"고 할 정도로 국회 논의엔 진척이 없다. 왜 그럴까.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의 김종훈(새누리당) 의원은 "개인정보 유출, 동양사태를 거치며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며 "더구나 야당이 법 원칙에 맞지 않는 주장을 강요하면서 논의 자체가 안 됐다"고 해명했다. 새정치연합의 김영주 의원은 "정부·여당이 방치해 통과가 안 된 법"이라며 "힘 있는 여당이 안건으로 올리지 않아 논의되지 못했다"고 했다.

 여야가 책임 떠넘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새누리당 의원은 "솔직히 의원들의 밥그릇 지키기라는 측면이 있었다"며 "매일 각종 청탁에 직면하는 의원 스스로를 옥죄는 법을 누가 빨리 만들자고 하겠느냐"고 했다. 지난달 25일 첫 법안소위에서도 여야는 공직자의 범위를 놓고 논란을 벌였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여야의 신경전만 계속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법적 완결성·형평성에서 위헌시비가 있는 걸 알면서도 입법을 요구하는 건 정치적 선명성을 강조하려는 의도"(강석훈 의원)라거나 "야당은 김영란법이 정치적 탄압의 수단으로 악용될 것을 두려워해 법안을 통과시킬 의도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익명을 원한 초선 의원)고 했다. 책임이 야당에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익명을 원한 한 야당 의원은 "김영란법에 저항하는 세력엔 국회의원과 국회직 전문위원도 포함된다. 허구한 날 민원인들한테 접대를 받으니…"라고 말했다. 여야 모두 내심 법 통과를 원치 않는다는 얘기다.

 김영란법이 국회로 넘어오기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명박 정부에선 국무회의 상정도 무산됐다. 김 전 위원장은 자신의 대담집에서 "처음엔 법무부가 반대하고 안전행정부가 반대했다. '참 철없는 여자구나. 세상 물정 모르는구나'라는 얘기가 들렸다"고 했다. 공직사회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법무부는 의견 제출에만 120일을 잡았고 대선정국으로 넘어가면서 논의는 흐지부지됐다.

 논의가 재개된 건 박근혜 정부 들어서다. 박 대통령이 공직사회 개혁을 국정과제로 제시하면서 정홍원 총리가 중재안(2013년 7월)을 도출했다. 여기서 '직무 관련성 여부를 막론하고 처벌한다'는 내용이 '직무 관련성이 있어야 처벌한다'는 내용으로 수정됐다. 직무 관련성이 없으면 형사처벌 대신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대신 100만원으로 규정했던 금품수수의 기준을 없애 기준을 강화시켰다.

 정부안이 나올 무렵 당시 민주당 김영주·이상민 의원은 별도의 법안을 제출했다. 작은 차이는 있지만 직무 연관성과 관계 없이 처벌한다는 '초안'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의원은 19일 "법무부가 핵심 조항을 세 번이나 수정하면서 법안이 누더기가 됐다"며 "국회가 기준을 완화시킨 정부안을 통과시키라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의원도 "지금도 공무원 중에는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다고 금품이나 향응을 받고도 처벌을 안 받는 경우가 많다"며 "원안(초안)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했다. 복수의 김영란법이 국회에 계류 중이지만 아직 정무위 법안소위도 넘지 못한 상태다.

강태화·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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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 '김영란법'을 원문 그대로 통과시키라는 것이 국민들의 명령이다. 절대로 내용을 수정하거나 빼지 말라. 09:44|삭제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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