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7.16 20:28수정 : 2014.07.16 22:25


지난달 15일 저녁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 안 경기도미술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 사무실에서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이 세월호 침몰사고로 숨진 단원고 2학년 4반 정차웅군의 얼굴 그림을 들고 있다. 안산/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희생자 캐리커처 그리는 박재동 화백
“처음엔 아이들 사진 잘 못봐
영정 속 아이들 그려
부모·국민 가슴 속으로
돌려보내는 일 천직 같다”
24일 서울시청 앞 전시키로

“잊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지요. 그러니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이 중요한 거지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을 날마다 품에 안고 캐리커처를 그리는 시사만화가 박재동(62·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화백. 그는 “어린 아이들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전 국민이 지켜본 참담한 비극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하기에 그림쟁이로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지금 하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박 화백은 “너무도 원통하게 숨져간 아이들을 그림으로나마 살려내고 싶어 날마다 캐리커처를 그리고 있다”고 했다.

얼굴의 도드라진 특징을 잡아 그리는 캐리커처 작업의 특성상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을 유심히 봐야 하는 박 화백은 “처음에는 아이들 사진을 보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숱한 대형 사고와 사건이 끊이지 않는 나라이지만 그 모든 일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설명과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이번 참사는 도무지 설명도 이해도 안 된다. 그래서 숨진 아이들의 그림을 그릴 때마다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보고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다”며 애통해했다.

박 화백은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다. 너무도 예쁘고 소중한 아이들을 이젠 국민의 가슴에 새겨 넣고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영정 속 아이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그림을 그리면서 아이들을 하나씩 살려내 부모와 국민의 가슴속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이젠 천직처럼 느껴집니다.”

그는 “희생된 아이들을 ‘이제 그만 놓아주자. 작별을 해야 할 때가 아니냐’고 벌써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책임을 피하고 4·16 참사를 덮으려는 것에 불과하다. 희생자들의 영혼을 훨훨 떠나보내려면 정부가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지난달 16일 단원고 2학년 정차웅군을 시작으로 100여명의 희생자 캐리커처를 그린 박 화백은 앞으로도 작업을 이어가 나머지 희생자들도 그림으로나마 모두 살려내겠다는 각오다.

세월호의 아이들이 분명히 세상을 바꿀 것이고 지금도 바꾸고 있다고 굳게 믿는 박 화백은 참사 100일째인 오는 24일 <한겨레>에 실린 자신의 그림과 아이들의 사연이 담긴 기사를 서울시청 앞에 전시할 계획이다.

서울 휘문고와 중경고에서 미술교사로도 일했던 박 화백은 1988년 <한겨레> 창간에 참여해 8년 동안 ‘한겨레 그림판’을 그리며 시사만화가로 명성을 얻었다.

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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