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9.1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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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낮 서울 종로구 세월호특별법 제정 촉구 광화문 단식농성장에 부모와 함께 나들이 나온 어린이들이 ‘세월호 참사 추모 게시판’에 추모글을 남기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세월호 해법 연속기고]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세월호 참사 5개월을 맞는다.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고, 불귀의 10위를 생각하면 숨쉰다는 것이 부끄럽다. 먼저 돌아가신 이들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과 동조단식자 및 온 국민에게 따뜻한 위로와 새 희망이 깃들기를 빈다. 진상을 밝혀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산 자들의 책임이거늘, 특별법이 정쟁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 곡할 노릇이다. 최근에는 ‘세월호 피로감’이니 ‘이제 그만하자’는 말에다 세월호 유족들에 대해 근거없는 유언비어와 극우세력의 ‘패륜과 야만’까지 난무하고 있다. 뻔뻔스러움이 점차 대담해지는데도 수수방관하고 있으니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이 부끄럽다.



참사의 본질은 국가의 구조실패
정부 수장은 책임 의식한 듯
진상규명·특별법 약속해놓고
그 약속 헌신짝처럼 폐기처분중


‘한국사 분수령’ 될 세월호 참사
제대로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박근혜 정권은 역사에 살아남는다


세월호 참사의 핵심은 간단하다. 사고가 일어난 지 3시간 내지 3일간의 골든타임에 아이들을 구해내지 못한 것이 사건의 본질이다. 그 앞뒤로 외연을 확대하면, 세월호의 갑작스런 급회전 등 여러 가지를 더 따질 수 있다. 그러나 사건의 핵심은, 사고가 났을 때 국가의 방대한 조직과 장비로 아이들을 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도 제대로 구하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이를 지실한 듯, 정부 수장은 진상 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신속히 약속했다. 세월호 특별법은 책임을 의식한 정부 여당이 내놓은 자구책이기도 하다. 때문에 그 참화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여 다시는 그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담보해야 한다. 세월호 특별법은 유족의 애틋한 심정을 담아야 했고, 합리성과 강제성을 부여하여 그간의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여야가 두 차례나 합의한 법안을 떠올려본다. 경험에 의하면, 그것으로는 조사가 시작될 것 같지도 않고 더더구나 진실을 밝힐 수도 없다. 세월호 국정조사가 청와대의 벽을 넘지 못했듯이, 강제 수단이 없는 법안으로는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기관이 너무 많다. 청와대의 ‘일곱시간’이 도마 위에 오르게 되면, 그것은 특위의 종말을 의미할 수도 있다. 합의한 법안은 진실 밝히기를 꺼리는 세력에 의한 것이 분명하지만, 진상 규명이 불가능한데도 이걸 우기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려는 것이 뻔하다. 입법 당사자들에게 묻는다. 그런 법안으로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정말 기대하는가’. 속으로 진실을 외면하면서 겉으로는 궤변을 늘어놓는다면 국민 모독이다. 잔꾀(小貪大失)가 아니라 큰길(大道無門)이 정답이다.


세월호 참사 후 정부는, 304명을 수장시킨 무능함 못지않게, 책임전가의 교활함을 보였다. 참사가 난 직후 유병언을 등장시켰다. 언론은 지극정성 그 뻔뻔함에 동조, 보필했다. 희생양은 국민의 눈을 가리고 속이는 데 충분히 공헌했다. 최근에는 세월호 참사를 경제 위축의 주범으로 만들고 ‘세월호 피로감’ 여론도 확산시킨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에도 가계의 외식비·숙박비 지출이 증가했다는 통계청 발표는 세월호 참사가 경기침체의 주범인 양 떠들어댄 정부 여당을 궁지로 몰았다. 국민을 기만하려는 시도가 들통 나도 사과 한마디 없다.


세월호 유족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작태는 더 있다. 요즘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유포되는, 필자도 수차례 받은 바 있는 악성 유언비어다. 이를 의식한 듯,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세월호 특별법, 오해와 진실: 10가지 오해에 대해 답하다’를 누리집에 올렸다. 유족들이 ‘피해자 전원 의사자 지정’을 요구했다는 사항 등에 대해 기윤실은 자신의 명예를 걸고 조목조목 해명했다. 특히 “특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이 사법체계를 흔들어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것은 “사법체계를 흔드는 것과 전혀 상관이 없으며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지 않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법학자 230여명이 낸 성명과도 일치하는 것으로, ‘위헌’을 빌미 삼아 유족들의 특별법 제안에 딴죽을 걸고 있는 세력에 대한 비판이다.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악성 유언비어를 방치, 조장하는 사회 분위기와 당국의 미온적인 태도다. 유언비어는 신뢰사회를 붕괴시키는 공적이며 척결의 대상으로, 유리하다고 방치하고 불리하다고 단속하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걸 방조하고 즐기는 듯한 국가공권력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 정권은 정통성에 취약점을 갖고 출발했다. 지난 정권이 저지른 것이지만, 국가정보원·국방부 등의 선거 개입과 개표 과정의 불법성 의혹이 정통성에 심대한 하자를 남겼다. 그렇다면 이 정권은 무엇보다 신뢰 회복에 힘써야 한다. 대선공약의 파기로 신뢰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지만, 이번 세월호 참사는 신뢰 회복과 정통성 의혹 극복에 절호의 기회다. 그걸 의식했음인지 몇 차례에 걸쳐 진실을 밝히겠다고 공언했고, 진정성을 보이느라 눈물까지 흘리며 ‘국가개조’라는 말까지 끄집어냈다. 그러나 그 약속마저 헌신짝처럼 폐기처분하는 중이다.


그래도 역사는 귀중하다고 생각하는지, 이 정권은 자기들의 역사인식을 주입시키려고 애쓴다. 검정교과서 수정 지시와 교학사 교과서로도 불가능하니까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기도하고 있다. 역사가 중요한 줄 안다면, 역사 왜곡의 잔꾀를 부릴 것이 아니라, 지나간 역사를 반면교사 삼아 현재 진행 중인 역사를 제대로 만드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세월호 참사가 한국사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역사에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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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추석 전 4주간 페이스북에 오른 231만건의 글에서 4주차의 38만건을 분석한 어느 여론조사기관의 결론이다. “여당은 국민에게 관심이 없고, 야당은 집권세력과 타협했다”. 이게 자신의 글로 이 시국을 대하는 국민의 진솔한 여론이다. 그런데도 ‘선거 승리’와 지지도 보장의 ‘여론조사’에 눈이 먼 정부 여당은 계속 잔꾀를 부리고 있다. 맹자가 인용했던 서경(書經)의 한 구절을 떠올려본다. “하늘은 백성의 눈을 통해서 보고, 백성의 귀를 통해서 듣는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