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5-04-02 20:46수정 :2015-04-03 01:51

세월호 참사 1주년을 앞두고 인문학자 열세 사람의 성 찰을 담은 책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출간되었 다. 지난해 7월22일 팽목항에서 그때까지 돌아오지 못 한 10명의 이름이 적힌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 진도/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인문학자 13인의 ‘세월호’ 담론
기억을 위한 ‘혼의 투쟁’ 강조
구조적 모순과 대안 마련 노력
비판하는 자신에 대한 비판도
 
‘애도의 정치’는 어떻게 가능한가
상상력 통한 공감의 재발명 필요
‘세월호 인문학’은 이제 막 출발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
인문학협동조합 기획
노명우·권명아·이광호 외 지음
현실문화·1만4000원


‘세월호’에 대해서 무엇을 더 말할 수 있을까.


2014년 4월16일 세월호의 침몰과 안타까운 목숨들의 수장 이후 숱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언론 기사와 시인들의 추모시, 학자들의 분석성 글 그리고 일반 시민이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올린 소박한 글들까지. 그뿐인가. 광장의 외침도 있었고, 유가족의 신음 같고 통곡 같은 호소도 있었으며, 골방에서 자판을 두드리는 ‘일베’의 패륜의 말도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세월호’에 대해 아직 할 말이 더 남았다면 그것은 어떤 말들일까.


세월호 참사 1주년을 앞두고 나온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인문학자 열세 사람이 이 미증유의 사태에 응답해 보려 한 시도다.


“사건화를 통해 희생자들의 얼굴이 사망자와 실종자라는 추상의 기호에 가려 급격히 사라져가고 있을 때, 이야기가 사건이 되어가는 막판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응수는 희생자를 추상명사화하여 사건화하려는 시도에 맞서 희생자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희생자의 이야기에서 유일무이하고 대체 불가능한 얼굴을 발견하고, 희생자의 그 얼굴과 대면하는 것이다. 이 대면을 피할 수는 없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의 글 ‘역사가 될 수 없는 이야기의 묵시’는 세월호 사태에 대해 인문학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을 알려준다. 사태를 사건과 역사로 추상화하려는 시도에 맞서 ‘이야기’를 ‘기억’하고 ‘발견’하며 ‘대면’하는 것이 인문학의 일이라는 것이다. 추상적인 법률·행정 용어와 건조한 숫자로 사태를 서둘러 봉합하려는 움직임에 인문학은 느리지만 질기게 저항해야 한다. 권명아 동아대 국문학과 교수가 ‘혼의 투쟁’이라 이른 것이 바로 그런 싸움일 터다.


그 싸움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닌데, 그 이유 중 하나는 경험과 관찰 사이의 괴리 또는 주체와 객체의 불일치에서 온다. 권 교수의 글 ‘사건 이후의 인간학’ 결론은 이러하다.


“고통의 타자성 혹은 타자의 고통에 대해 끝내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것들을 인정하는 것, 역설적이지만 그것이야말로 ‘나’의 한계를 넘어서는 고통에 다가가는 하나의 방법은 아닐까.”


싸움의 또 다른 어려움은 세월호가 물 밑으로 가라앉고 생때같은 목숨들이 속절없이 스러져 가는 장면을 우리 모두가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는 정황에서 비롯된다. “그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운 주체는 있을 수 없으며, 사건 이후의 모든 주체는 ‘죄’를 나누어 가진 자로서의 무력감과 부끄러움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이광호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의 지적이 그 점을 가리킨다.


팽목항에서 지난해 7월24일 열린 참사 100일 촛불문화제에서 초등학생이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글귀를 쓰는 모습. 진도/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비슷한 맥락에서 이 교수는 “타인에 대한 연민이란 이 사태를 가져온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를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라며 회의 섞인 질문을 던지는데, 연민과 공감은 이 책 필자들 사이에서 가장 표나게 견해가 갈리는 대목이다. 연민을 경계하고 부끄러움을 떠안으려는 이 교수는, 자신을 포함해서 세월호 사태에 대해 성찰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자기비판이라는 엄중한 짐 역시 요구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윤리적인 주체는, 비판의 주체인 자신을 그 비판의 가장 가혹한 대상에 위치시킨다. (…) ‘사건’은 자기 자신에 대한 뼈아픈 윤리적 질문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이 말이 그 자체로서 틀린 것은 아니겠으되, 그것이 혹시 사태의 본질과 책임 소재를 희석시키는 데에 악용될 가능성은 없겠는지. 철학박사인 허경 한국근현대문화사상연구소 공동대표의 우려가 향하는 지점이 그곳이다.

“우리가 이 질문에 대하여, 가령 이는 매우 비극적인 참사로서 우리 모두의 책임이며 따라서 우리 모두가 반성하고 스스로를 되돌아보아야 한다고 답한다면, 우리는 사건에 대한 ‘도덕(주의)적’ 답변을 제출하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도덕(주의)적 대응은-아마도 이를 수행하는 당사자의 의지와도 무관하게-이러한 불행한 사태의 반복만을 낳게 될 것이다. (…) 이처럼 개인 혹은 집단의 ‘도덕성’에 초점을 맞추는 인식은 정작 문제의 핵심이라 할 보다 큰 사회적 차원의 구조적 모순을 보지 못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자기반성을 포함해 근본적이며 윤리적인 성찰은 분명 필요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구조적 문제 제기와 정치적 대안 모색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세월호 참사는 ‘반의반의 주권’, 국가의 무책임, 사회적 연대가 결여된 한국 시스템의 한 결과”라며 “지난 시대에 ‘애국’의 기치 아래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군대 자원으로 동원해 쓰이던 가난한 ‘국민’들이 이제는 재난 상태에서 구조받지 못한 채 버려진 것”이라고 사태의 본질을 요약한다. 그보다 더 극단적인 견해를 국문학자인 권창규 연세대 강사의 글에서 볼 수 있다. “세월호 사고는 자본과 일체를 이루는 공리계(axiomatique)에서 태어난 자본주의 국가가 자본 축적에 방해가 되는 국민들을 사실상 학살한 결과다.”

이제 논의는 불가피하게 국가의 구실과 존재 의의 그리고 침탈당한 국민의 주권과 생명권을 어떻게 되찾아올 것인가 하는 문제로 나아간다. 정치철학자인 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인문한국연구교수가 강조하는 것이 바로 그 점이다.

“그렇다면 세월호가 국가의 중심에 존재하는 상징적 공백을 드러냄으로써 우리들 각자에게 호명하는 것은 주체적인 것으로서의 국가 또는 정치공동체를 어떻게 (다시) 구성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세월호 사태 이후 안산 지역 촛불행동에 대해 연구한 문화연구학자 정원옥 박사가 주창하는 ‘애도의 정치’가 주목된다. 그에 따르면 ‘애도의 정치’란 “애도의 불가능성에서 우울증의 고통을 동력으로 삼아 애도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창출하려는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죽은 자를 제대로 떠나보내기 위해서도 ‘정치’가 필요하다는 현실은 슬프지만 불가피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인문학과 ‘애도의 정치’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문화평론가 오영진은 상상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는 공감이 가진 시간적·공간적 편파성을 벗어나, 마음을 읽는 힘으로서 공감 능력을 발명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공감을 재발명해야 할까? (…) 결과적으로 공감의 편파성을 넘어서게 만드는 것은 상상력이다. 공감을 폐기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감을 증폭시키는 방식으로 공감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세월호 사태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뭉뚱그려 ‘세월호 인문학’이라 한다면,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세월호 인문학의 현주소는 어디쯤일까. 기민한 순발력보다는 느리고 신중한 접근이 인문학의 본질에 더 가깝다는 점에서 세월호 인문학은 이제 막 출발한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