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3.19 20:19

선 채로 손에 든 자료에 몰두해 있는 최재석 고려대 명예교수의 실루엣. 만권당 제공

식민사관에 맞선 원로 사회학자 최재석
<일본서기> 파헤쳐 ‘임나’ 허구성 폭로
일본 고대 사학자들 주장에 침묵하는
주류 사학계에 대답 요구
새 세대 사학자 하지연,
식민주의 이데올로그들 실체 폭로


역경의 행운
최재석 지음/만권당·2만원

식민사학과 한국 근대사
하지연 지음/지식산업사·1만8000원


“일본 고대 사서인 <일본서기>에 따르면, 적어도 6세기에 일본(야마토 왜)은 백제 왕이 파견한 백제 관리가 통치하는 백제의 식민지였다.” “그러나 일본 고대 사학자들 거의 모두가 이를 감추기 위해, 정반대로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통치한 것으로 뒤집었다.”


항해 수준이 형편없었던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불가능했다. 6세기에 일본은 백제의 직할영토였고, 백제 멸망 후 727년 이전은 신라에 복속됐으며, 727년 이후부터 10세기까지는 신라와 발해 두 나라에 복속됐다. 식민사학자들은 이를 감추기 위해,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전설 또는 조작”이라고 주장해 왔다.


과도한 내셔널리즘의 해악을 염려하는 사람들은 이런 얘기들의 진위를 제대로 따져보기도 전에 경계하면서 “또 그 소리” 식의 부정적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 가족제도사와 사회사 연구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사회학자 최재석(89) 고려대 명예교수가 30여년간 집요하게 파헤쳐 100편이 넘는 논문과 책으로 발표한 한일 고대사 연구들을 읽어 본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최 교수가 한국사회학 연구와 고대 한일관계사 연구, 기억에 남는 사람들과 자신이 직접 체험한 학계의 부조리, 못다 한 얘기 등을 담아낸 회고록 <역경의 행운>은 그의 학문적 삶의 총정리다. 그리고 한국 주류 사학계가 여전히 외면하고 있는, 뒤집힌 한일 고대사의 진실을 밝히려 했던 자신의 연구 인생의 정당성에 대한 재확인이기도 하다. 2011년에 낸 책을 다시 손질한 이 개정판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겠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식민사관과 뒤틀린 한일 고대사 문제, 일본이란 나라, 학연과 이해관계로 갈린 폐쇄적이고 ‘학문 사대주의’에 찌든 한국의 학계 풍토 등에 대한 풍부한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역경의 행운’이란 그런 폐습들로 인한 엄청난 고통이 오히려 학문적 정진을 자극해 좋은 열매를 맺게 해줬다는 뜻이다.


이화여대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하지연의 <식민사학과 한국 근대사>는 ‘우리 역사를 왜곡한 일본 지식인들’이라는 부제대로 식민사관을 창안해 일제의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고 수많은 추종자들을 양산해낸 일본의 대표적인 강단·재야 사학자 4명의 삶과 생각을 추적한다. <조선제국기> <근대 조선사> 등 식민지배를 정당화한 대중적 역사책들을 쓴 재야사학자 기쿠치 겐조, 도쿄제국대를 나와 경성제대 교수와 조선사편수회 위원을 지내면서 <조선사대계 최근세사> 등을 남긴 오다 쇼고, 한국 근대사와 근대 동아시아 외교사의 고전 대접을 받아온 <근대일선관계의 연구> 등을 쓴 다보하시 기요시, 그리고 일제 식민정책의 두뇌 구실을 한 식민학의 비조요 미국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 등 서방 식자들에게 일본의 조선 지배 정당성을 각인시킨 <무사도> 등의 저자 니토베 이나조.


<식민사학과 한국 근대사>는 <역경의 행운>과 직접적 연관은 없지만, 같은 시기에 발간된 이 두 책은 지금도 한일관계와 한국 사회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식민사관의 실체를 더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준다.


총리 후보로 지명됐던 문창극은 조선 500년 역사를 “허송세월”이라 깔아뭉갰다. 우리 민족이 식민지배를 당한 건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한 민족성 탓이라고 했다. 그게 친일파 윤치호 얘기라고 그가 둘러댄 게 불과 얼마 전이었다. 윤치호(1865~1945)가 조선을 “똥뒷간”으로까지 폄훼한 건 변절을 호도하는 자기정당화요 일종의 심리적 방어기제였다.


윤치호가 항일독립운동을 ‘맹목’적이라 비판하면서 조선 민족의 실력 양성만이 해법이라 주장한 것은 그 당연한 귀결이었다. 윤치호류의 ‘정신승리법’의 원류, 뿌리는 문창극이 속한 보수기독교에서 박정희(1917~1979), 이광수(1892~1950), 그리고 윤치호와 동시대를 산 니토베 이나조(1862~1933)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박정희는 5·16 쿠데타 뒤 권력 찬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쓴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우리의 반만년 역사는 한마디로 퇴영과 조잡과 침체의 연쇄사였다고 단언했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과 새마을운동을 내세운 박정희의 ‘새 역사 창조’는 1922년 이광수가 잡지 <개벽>에 발표한 ‘민족 개조론’의 새 버전이었으며, 그건 바로 윤치호의 조선 민족 실력양성론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고 그 뿌리가 바로 한때 5000엔짜리 지폐에도 등장했던 니토베가 쓴 <고사국(말라 죽어가는 나라) 조선>(1906)이었다.


최 교수는 <역경의 행운>에서 한국 주류 사학계를 향해 이렇게 요구한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조작이라 주장하는 쓰다 소키치, 이마니시 류, 미시나 쇼에이, 스에마쓰 야스카즈 등 대표적인 식민사관 주창자들의 주장을 ‘학계의 정설’이라고 한 근거를 밝혀달라. 한마디로, “일본 고대 사학자 거의 전부가 달라붙어 고대 한국을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 시종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 달라”는 얘기다. 아직 어떤 대답도 듣지 못했다고 그는 말한다.


<식민사학과 한국 근대사>는 최 교수의 요구에 대답해야 할 당사자들이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 식민사관을 그야말로 실증적으로 극복해 가고 있는 새로운 연구 세대의 성장을 알리는 또 하나의 징표로 읽힌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