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를 잊지말자] 그날의 기억 간직한 현장들         한국일보 | 유명식 이환직 채지선 | 입력 2015.04.01 04:48


광화문 광장의 실종자 가족, "유가족이 되는 게 소원" 먹먹

안산 합동분향소엔 추모객 뚝, "유족 다섯 가구는 안산 떠나"

인천 연안터미널 여객 21% 감소 / 허술한 승선 절차 안전 불감 여전

어둠이 내려앉은 30일 오후 전남 진도 팽목항 부둣가에 세월호 실종자 9명의 이름과 사진이 담겨 있는 노란색 현수막과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리본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세월호의 달 4월이 다가오면서 서울 광화문과 경기 안산 정부합동분향소, 인천 여객터미널 등 참사의 기억을 간직한 현장들도 지난 1년을 되새기며 다시 슬픔과 애도 모드로 돌아서는 모습이다.

잿빛 하늘이 추적추적 비를 뿌린 31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 내걸린 현수막 글귀는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아직, 세월호에 사람이 있습니다.' 차가운 바다에서 건지지 못한 실종자 9명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 실종자 가족은 "'유가족'이 되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세월호 참사의 최대 희생자인 안산 단원고 학생들은 광화문 농성 천막 앞에 전시된 단체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손으로 하트 모양을 그리고, 손가락 총을 쏘는 등 여전히 발랄한 모습이기에 보는 이들을 더욱 숙연케 했다. 지난해 4월 16일부터 300일 간의 기록을 사진으로 풀어낸 전시는 1년간의 아픈 기억을 들춰내기에 충분했다.

광화문 농성장에서 만난 단원고 희생자 안주현군의 어머니 김정해씨는 "28일이 아들의 생일이었는데 선물로 사준 옷을 입고 좋아하던 얼굴이 떠올라 어느 때보다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며 "아이를 잃은 부모로서 우리가 바라는 건 진실 규명뿐"이라고 절규했다. 김씨는 참사 1년이 다 되어서도 사고의 진실을 밝혀내겠다며 광화문을 찾게 될 줄은 몰랐다. 부르튼 입술과 거칠어진 피부에서 고통의 시간이 읽혀졌다.

단원고 아이들을 품은 안산은 황량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1년 전 매일같이 추모집회가 열리던 단원구 4호선 중앙역 앞 중앙광장은 참사에 대한 흐릿해진 기억만큼이나 노란색 추모 현수막의 빛깔도 바래있었다. 일부는 찢기거나 가로수 가지 위로 말려 올라갔다. 현수막 내용은 더 이상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화랑유원지에 2,520㎡ 규모로 차려진 정부합동분향소도 마찬가지였다. 30일까지 50만3,319명이 찾았지만 이제는 참배객이 평일 100여명, 주말 300여명 수준에 머물고 있다. 텅 빈 분향소 안에서 나지막이 흐르는 추모 노래와 영상만이 그날의 아픔을 대신할 뿐이었다. 슬픔을 덜어내려 안산을 등지는 유족은 늘고 있다. 안산시 세월호사고수습지원단 이석종 계장은 "희생자 유족 다섯 가구가 안산을 떠났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무관심 속에서도 치유는 계속되고 있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모습 그대로 보존된 단원고 2학년 교실은 '기억저장소'로 바뀌었다. 사고 직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선물한 목련도 어느새 뿌리를 내려 새싹을 머금었다. 재학생들은 1주년이 되는 16일 아직 돌아오지 못한 학생 4명과 교사 2명의 귀환을 기원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사를 구상 중이다. 단원고 관계자는 "다음주가 되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준비하는 프로그램의 세부안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참사 하루 전 세월호를 떠나 보냈던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은 겉으로는 일상을 되찾은 듯 했다. 하지만 터미널을 찾은 시민들의 아픈 마음까지 씻어낸 건 아니었다. 관광객 장순규(64)씨는 "어린 학생들은 대통령, 장관이 될 수도 있는 아이들이었다"며 "차라리 나 같은 나이든 사람들이 희생됐어야 했다"고 말했다. 참사 여파 때문인지 이 곳에서 서해 섬 지역을 오가는 여객선 이용객은 눈에 띄게 줄었다. 백령도와 연평도, 덕적도 등 5개 항로 여객선 이용객은 2013년 106만3,230명에서 지난해 83만8,922명으로 21.1%나 감소했다.

분위기는 차분했으나 안전 의식은 달라진 게 별로 없었다. 오전 8시45분 덕적도와 이작도행 여객선을 타기 위해 섬 주민과 관광객들이 개찰구로 몰렸다. '부정 승선 근절 검표원'이라고 적힌 목걸이를 건 터미널 관계자는 승선권을 검사하면서 이름과 주민번호 기재 여부, 기재 내용이 신분증과 일치하는지 등을 확인하지 않았다. 참사 당시 정확한 승객 숫자와 신원 파악이 늦어졌던 것은 허술한 승선 절차 때문이었다. 연평도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개찰구에서 신분증 검사를 하지 않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4월을 맞아 세월호를 기억하는 추모 행사는 곳곳에서 다양한 주제와 형식으로 열릴 예정이다. 광화문에서는 16일까지 유가족 등의 노숙 농성이 계속된다. 또 4일에는 세월호 인양과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정상화를 촉구하며 안산 정부 합동분향소를 출발해 광화문 광장으로 돌아오는 도보행진을 하고, 11일에는 가족협의회 등이 광화문과 안산, 진도 팽목항에서 동시에 참사 1주기 범국민집중추모기간을 선포한다. 안산시도 11~18일을 세월호 집중 추모기간으로 정하고 시민단체와 연계해 콘서트와 음악회, 미술전 등을 계획하고 있다. 경기교육청은 1주년에 맞춰 '4ㆍ16단원장학재단'을 출범시킨다.

안산=유명식기자 gija@hk.co.kr

인천=이환직기자 slamhj@hk.co.kr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