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 김필규 | 입력 2016.03.03. 22:16


[앵커]

'아버지는 미치지 않았다.' 작년 12월에 경향신문에 난 칼럼의 제목입니다. '한 학생이 찾아와 아버지가 치매를 앓고 있다고 했다. 병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이게 고약한 인권침해적인 용어라는 걸 깨달았단다. 치매라는 두 글자는 모두 미치다, 어리석다는 뜻이다. 그러니 치매환자는 곧 미친 환자, 어리석은 환자가 된다.' 이런 내용입니다.

일본에서 건너온 말을 생각 없이 쓰고 있지만 정작 일본은 이 말을 인지증으로 바꿔 부르고, 대만은 실지증, 홍콩은 뇌퇴화증으로 불린다고 하는데요. 이처럼 우리가 관성적으로 쓰고 있지만 당사자에겐 크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부적절한 용어들, 아직도 주변에 굉장히 많습니다. 오늘(3일) 팩트체크에서는 이 문제 짚어보겠습니다.

김필규 기자, 최근에 교육부에서 '정신지체'라는 표현을 쓰지 말라는 공문을 보냈다고 하죠?

[기자]

예, 지난달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 개정됐는데 여기서 그동안 '정신지체'라고 돼 있던 부분을 모두 '지적장애'로 바꿨습니다.

그러면서 일선 학교에서도 앞으로는 지적장애라는 용어를 쓰라는 공문을 보낸 겁니다.

그동안 여러 법에 있던 '정신지체'라는 용어를 단계적으로 바꿔오다가, 이번 개정으로 법전에선 완전히 사라지게 된 겁니다.

[앵커]

정신지체 대신 지적장애라는 말을 쓰자는 이야기는 그동안 꾸준히 나오긴 했습니다. 아직도 주변에서는 많이 쓰이고 있으니까 이런 말이 나오는 거겠죠?

[기자]

1980년대에는 관련법에서 '정신박약'이라는 용어를 썼습니다. 그러다 90년대부터 '정신지체'라는 말로 바뀌었는데, 2000년 이후부터 이 역시 '지적장애'로 점차 대체됐습니다.

이런 변화는 전 세계적으로 먼저 일어났는데, 정신지체(Mental Retardation)라는 말 자체가 'Retard', '뒤처지다' '낙후되다'라는 뜻에서 온 겁니다.

그래서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런 문제제기가 있었던 겁니다.

[조한진 교수/대구대 사회복지학 : '정신지체'가 지체되었다는 거잖아요. 낙인감 있는 용어죠. 본인한테는. 그리고 객관적인 용어라기보다는 개인의 결함에 초점을 맞춘 용어기 때문에 그렇죠. 미국은 벌써 오래전에 '지적장애'라는 용어로 바꿨죠. 바뀌어 가고 있는 게 아니라 이미 바뀌었습니다. 가능하면 장애인에게 부정적이거나 혹은 낙인감이 가거나, 손상에 초점을 맞추는 용어는 개선되어야 하고요.]

[앵커]

'정신지체' 말고도 그동안 "바꾸자" 했는데 여전히 부적절하게 쓰이고 있는 용어들 많지 않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최근 한 보건소에서 발급한 문서인데 농자, 아자, 맹자 이런 표현이 적혀 있습니다.

청각장애인과 언어장애인, 시각장애인이라고 해야 하는데 여전히 적절하지 않은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거죠.

2014년 장애인 비하 의미가 있다고 해서 법제처가 장애인단체와 함께 바꾸기로 한 법률 용어들을 보면, 간질병자는 뇌전증환자, 불구자는 신체장애인이라고 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워낙 여러 법에 예전 용어들이 들어가 있다 보니 일일이 개정을 하지 못해 여전히 남아 있는 경우가 많은 거죠.

그런데 이와는 또 다른 면에서 부적절하게 쓰이고 있는 게 '장애우'라는 표현입니다.

[앵커]

이건 사실 요즘도 헷갈리고 쓰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친근하게 배려한다는 의미이긴 하지만, 오히려 당사자들은 이런 표현을 원치 않는다고 하잖아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기원을 좀 보면요. 1980년대까지만 해도 폭넓게 쓰이던 용어가 '장애자'입니다. 그러다가 89년 이후 법개정을 통해 '장애인'이 공식적으로 쓰였는데 비슷한 시기에 '벗 우'자를 쓰는 '장애우'라는 말도 등장을 합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이 용어를 쓰지 말아 달라는 게 많은 장애인단체들의 입장인데, 이유는 이렇습니다.

[박김영희 사무총장/장애인차별철폐연대 : 용어가 가지는 의미는, 사회적으로 그 집단이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장애우라고 불리는 것도 장애인을 타자화시키고요, 장애인 입장에서는 누구의 친구라고 불리는 게 아니라 존재를 분명히 밝히고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기 위해서 장애우가 아니라 장애인으로 불려야 한다.]

그러니까 '장애우'라는 표현에 어쩌면 항상 도움이 필요한 대상이라는 전제가 있고, 또 그런 선입견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인 겁니다.

[앵커]

가장 중요한 기준은 불리는 당사자들에게 어떻게 들리느냐 하는 문제, 어떻게 불리기를 원하는가,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 된다는 얘기일 것 같은데요. 마무리를 좀 하죠.

[기자]

예, 또 지금 보시는 게 최근 미디어에 나온 기사 제목들입니다.

꼭 이렇게 쓰지 않아도 되는데, 무신경하게 관성적으로 장애와 관련된 표현들이 쓰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런 부분 역시 법개정 못지않게 시급히 고쳐야 할 문제란 지적인데, 혹시 오늘 방송 보시면서 "용어나 표현이 뭐 그렇게 중요하냐" 하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용어를 바꾼다고 해서 장애인의 지위가 갑자기 상승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히려 지위를 떨어뜨리고 장벽과 고정관념을 만든다면 모두가 나서서 바꿔야 한다"는 미국 장애인단체의 이야기, 귀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앵커]

팩트체크 김필규 기자였습니다. 수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