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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5-05-26 22:02수정 :2015-05-27 10:35

 

혁명사 연구의 권위자 피에르 세르나 교수(오른쪽)가 25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혁명사 연구의 권위자 피에르 세르나 교수(오른쪽)가 25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담] 피에르 세르나 : 최갑수

“민중이 야만적? 되레 지배자들이 폭력 동원해 기득권 유지”
“지배자들은 늘 민중이 야만적이라고 얘기하지만 혁명 연구를 통해 배운 건 정반대다. 지배자들이야말로 폭력을 동원해 기득권을 유지하려한다.”

‘혁명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26일부터 사흘 연속 서울에서 강연을 하기 위해 서울대 서양사학과 초청으로 방한한 피에르 세르나(52) 교수는 지배자들의 이런 태도를 극중도(極中道; l’extreme centre)라는 말로 설명하며 현대 정치를 병들게 하고 있는 지배자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파리제1대학교 프랑스혁명사 강좌 주임교수를 맡고 있는 그는 혁명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로 통한다. 세르나 교수를 초청한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극중도적 태도를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자신들의 이념적 가치를 고수하겠다, 즉 국가폭력을 동원해서라도 행정부 지향의 중도가치를 견지하겠다는 것으로, 이것이 현대 프랑스 정치까지 관통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태도가 좌우논쟁을 막고 정치발전도 막아 결과적으로 ‘기회주의자들’(팔랑개비)을 살아남게 했다는 것이다. 세르나 교수의 공화국과 민주주의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은 한국 정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25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세르나 교수와 그를 초청한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가 3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나눴다. 박윤덕 충남대 사학과 교수가 함께 했다.

프랑스 정치체제는 병들어
한국 등 다른 나라도 비슷
자유·평등·우애 제대로 작동 안해

민주주의 없는 공화국이나
공화국 없는 민주주의
모두 바람직하지 않아

최근의 테러리즘 근원도
자본주의 발전모델 실패서 비롯


최갑수(최): 프랑스 혁명 20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역사전쟁은 진행 중이다. 이걸 어떻게 볼 것인지, 그리고 그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우리에게도 주요 관심사다. 40대 나이에 프랑스혁명사 연구를 주도하는 프랑스혁명사강좌 주임교수가 됐다. 지난해 가을 세르나 교수를 만나보고 혁명사 연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세르나 교수는 프랑스혁명기(1789~99) 가운데 특히 총재정부기(1795~99)를 대의제 민주주의 및 민주공화국의 발명이라는 시각에서 복원시킨 공로로 제10대 주임교수가 됐지만, 폭력의 문화사, 극중도의 정치사, 자매공화국과 ‘유럽합중국’, 노예해방과 식민지 등 다양하면서도 일관된 문제의식과 연구 성과를 토대로 장기적인 전망과 전 지구적인 시각에서 전인미답의 혁명사를 구축해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최근에 ‘모든 혁명은 독립전쟁’이라는 도발적인 혁명관을 제시했는데, 이는 서구가 이룩한 근대국가-제국의 이중성과 모순을 그 창건기의 현장으로 돌아가 ‘혁명=독립전쟁=식민지 해방’이라는 새로운 역사문법으로 화해시키고 종합하려는 시도라고 본다.

세르나: 현재의 제5공화국에 이르는 프랑스 공화국 역사는 애초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프랑스혁명을 누구나 다 받아들인 건 아니다. 1789년 7월14일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다음날인 15일 10~15%의 프랑스인들이 혁명에 대한 거부의사를 표명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 프랑스는 정치세력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좌와 우로 나뉘어져 있다. 우(오른쪽)에는 왕당파들이 포진하고 있는데 둘로 나뉘어 있고, 그 반대편 좌(왼쪽)도 둘로 나뉘어져 있다. 좌의 한쪽에는 애국파로, 부르주아 혁명을 수행한 세력이다. 또 한쪽은 민중운동세력인데, 그들은 평등이라는 목표를 성취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혁명은 계속돼야 한다. 우파 중에서 왕당파는 입헌군주제를 지지하며, 또 한쪽에는 절대군주제를 지향하는 흑색파가 있다. 프랑스는 이처럼 4개파의 정치세력이 존재한다. 물론 그동안 좀 바뀌긴 했지만 2015년인 지금도 프랑스 정치지형은 기본적으로 이 4개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

왜 혁명사를 연구하는가? 지금 세계는 정치에서 이탈하고 있다. 세계화로 정치 이데올로기나 사상이 환영받지 못하고 공화국과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경제에 대한 관심으로 대체되고 있다. 바로 그래서 혁명사 연구자들은 공화국과 민주주의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그것이 혁명사가가 해야 할 일이다.

누가 혁명의 주체인가? 혁명의 주체는 길거리에서 실제로 혁명을 실행하는 민중이다. 사회주의권의 붕괴 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을 얘기했다. 하지만 25년 뒤 ‘오큐파이(점거) 운동’이 벌어졌다. 그것은 민중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 혁명 200주년 당시 혁명의 해석에 크게 3가지 흐름이 있었다. 인상적인 것은, 굉장히 개성 강하고, 계보가 다른 데도 세르나 교수가 선행 연구자들을 받아들이고 장기적 전망 속에 16세기 이후 지금까지 500년을 조감하면서 글로벌한 관점에서 혁명을 연구한다는 점이다. 특히 탁월한 건, 프랑스 혁명 최성기가 아닌 총재정부 시기(1795~99)에 이룩한 긍정적 성과를 포착해낸 것인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민주공화국이라는 것이다. 자코뱅적 연방주의를 프랑스식 공화연방기획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예 해방과 식민지 문제까지 끌어안고 가는데, 이는 놀라운 학문적 성취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피에르 세르나 프랑스 파리1대학 교수
피에르 세르나 프랑스 파리1대학 교수

세르나: 책임감이 무겁다. 특히 프랑스 아날학파의 그 엄청난 무게를 느끼고 있다. 1929년에 설립된 아날학파가 사회경제 구조가 전체사회를 끌어간다는 생각을 중심에 놓으면서 인물이나 정치사건으로서의 역사는 끝났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자들도 이를 환영했다. 하지만 정치적 요소의 중요성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아날학파 이래의 전통, 즉 사회경제적 기초가 사회의 기초라는 것만으로는 혁명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계급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정치적 요소를 넣어야 자유라는 게 의미가 있다. 그런 쪽으로 가야 진보적 혁명사를 이해할 수 있다.

박윤덕: 프랑스 혁명연구에서 심성사 연구를 발전시킨 미셸 보벨의 은사 알베르트 소불은 상부구조, 하부구조론에 매여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려 했다.

세르나: 왜냐면 거기엔 자유의지가 작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혁명을 받아들이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 나도 자유에 중점을 두고 정치의 중요성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대서양혁명 연구가 중요하다. 부르주아 혁명인데다 각기 다른 미국혁명 전통과 프랑스혁명 전통 뒤엔 혁명의 근본이 숨겨져 있다. 제일 큰 게 인권 혁명이다. 그런데 미국과 프랑스 역사학계는 의도적으로 이를 무시해 왔다. 미국혁명은 혁명이 아니라 독립전쟁이라고만 그들은 주장한다. 독립전쟁이라면 인권문제를 건드리지 않아도 되고, 대서양혁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니까.

미국혁명은 세 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다. 노예주의에 바탕을 둔 공화국건설이었다는 점, 원주민 학살, 그리고 참혹한 사회적 폭력을 동원했다는 점이다. 1860년대 미국에서 왜 내전(남북전쟁)이 일어났나? 그것은 그때의 실패요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 문제가 남아 있다. 결국 폭력의 문제다.

프랑스혁명도 폭력문제를 제대로 제기하지도 못했다. 이게 문제다. 혁명은 본래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역사는 폭력적이다. 1792년 9월의 파리 학살사건 때 로베스 피에르는 말했다. “당신은 혁명없는 혁명을 원하는가? 폭력은 불가피하다 숨길 수 없다.”프랑스 혁명 때 주변국들은 혁명을 원치 않았다. 따라서 혁명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전쟁이 불가피했다.

나폴레옹을 혁명의 아들이라 일컫는 것도 그 전쟁을 나폴레옹이 수행했기 때문이다. 총재정부를 연구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때 처음으로 자유주의 공화국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총재정부에 반대하던 민주공화파가 그 시기에 민주공화국을 작동시키는 대의민주주의라는 아이디어를 창출했다. 이게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헌법을 만들었다.

: 그때의 대의민주주의가 요즘 것보다 오히려 내용이 훨씬 더 풍성하다. 민주공화주의 전통은 지금의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세르나: 프랑스 정치체제는 지금 굉장히 아프다. 병들었다. 한국도 비슷할 것이고,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공화국을 곧잘 혼동한다. 보통 2, 3년 마다 투표하는 걸 자유로운 정치참여요 민주공화국이라 인식하지만, 민주주의가 정치적 삶을 위한 참여 과정과 기술적 결정이라면 공화국은 참여 구성원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체제의 틀이요 가치 체계다. 민주주의 없는 공화국도, 공화국 없는 민주주의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를 전 세계의 모든 구성원들이 공유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애의 보편 공화국을 추구해야 한다.

: 2015년 현재의 프랑스나 한국 모두 자유·평등·우애라는 민주공화국 추구 가치에 비춰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프랑스는 무슬림의 히잡 착용을 금지하고 있고, 한국에선 수많은 비정규직들이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

세르나: 자유·평등·우애라는 프랑스 혁명의 가치가 지금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게다가 21세기는 18세기와 달리 그것을 확보하려면 돈(비용)이 든다. 공화국 공민·시민으로서 결속을 다지는 데에는 국민과 국가의 차이를 좁혀야 한다. 여기에도 비용이 든다. 따라서 (현대에서 그런 가치의 실현은) 사회보장 쪽으로 무게가 옮겨갔다.
 

세르나 교수는 최근 테러리즘의 근원을 서구가 제시한 모델들, 즉 자본주의 사회주의 발전모델의 실패에서 찾았다. “2차 대전 뒤 서구가 제3세계에 투입한 그 모델들이 예컨대 무슬림 전통과 맞지 않았다. 그 30여년 뒤 그 모델들은 모조리 실패했다. 서구는 희망을 잃어버렸다. 나는 한국, 일본에 굉장한 관심을 갖고 있다. 한국 일본은 서구 모델을 받아들인 뒤 변용해서 자기화하는 데 성공한 것 같다. 서구가 그것을 참고해야 할 것 같다.”

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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