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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2015-08-28 18:48수정 :2015-08-29 10:03
지난 8일 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박래군 석방 촉구 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의 석방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지난 8일 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박래군 석방 촉구 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의 석방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토요판] 르포
감옥에서 온 박래군의 편지
▶ 28일은 세월호 참사 500일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 운동을 벌여온 4·16연대 박래군(54) 상임위원은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박래군 위원이 <한겨레>를 통해 시민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해왔습니다. 박 위원은 말합니다. “포기하지 말자”고. “열일곱살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더 강해지자”고. 박 위원의 편지를 읽고 세월호 참사 500일 추모 행사에 참여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다시 한번 세월호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유난히 폭염 특보가 많았던 여름이 지나는군요. 입추를 지나자 새벽이면 선선한 바람 한 줄기도 불어오고, 풀벌레 소리 더욱 완연해졌습니다. 며칠 뒤(지난 23일)가 처서라지요. 무더위가 수그러진다는 처서를 앞두어서인지 하늘은 제법 가을이 온듯 높게만 보입니다. 지난여름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저는 지난여름(7월16일 구속 수감) 이곳에 왔습니다. 대한민국의 변방이지요. 독방만 있는 곳이고 그것도 마지막 방입니다. 그래서 저는 ‘적막 골방’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낮에 한시간 운동하는 시간과 일반 접견 및 변호사 접견하는 시간을 빼고는 생활을 대부분 이 방에서 합니다. 5.04㎡, 평수로는 약 1.5평이라고 하는데 실평수로는 좀 빠질 듯합니다.

누우면 팔 하나 정도가 남지요. 바로 그 위에 변기와 수도꼭지 하나만 있는 매우 비좁은 화장실이 있어요. 아내에게 쓰는 편지에 (방이) 우리 집 화장실만하다고 썼더니 그걸 보고는 울었대요. 그렇게 비좁은 공간에서 답답해서 어떻게 사냐고 걱정이더군요. 하지만 이곳에 종이 상자 깔아서 책상도 만들어 책도 보고 편지도 쓰고요. 거기서 밥도 먹지요. 화장실은 청결해야 해요. 거기서 샤워도 하지만 설거지도 하거든요.

평택 미군기지에서 광화문까지


모든 일과가 끝나는 저녁 6시 이후는 절대 고독의 공간이 되지요. 재미없는 프로그램만 골라서 보여주는 법무부판 티브이도 9시면 끝나지요. 24시간 켜져 있는 전등 아래서 책 읽다, 생각하다 그러다 잠들지요. 한번은 어디로 들어왔는지 새끼 귀뚜라미가 방에 들어왔어요. 쇠창살도 잡을 수 없게 붙박이 철망으로 창문도 틀어막았는데 어느 틈으로 들어왔을까요? 그놈이 귀여워서 한참 하는 짓을 보는데 정말 잠깐 한눈판 사이에 사라져버렸어요. 너무 서운했는데 며칠 뒤엔 귀여운 거미 한마리가 벽걸이 티브이에서 거미줄을 치는 게 보였어요.

녀석하고 친하게 지내보려고 두고 봤는데 녀석은 놀라운 점프 실력으로 자꾸 내 종이책상 쪽으로 거미줄을 치는 거지요. 그건 공간을 뺏기는 거라서 벽 쪽으로 유도해도 자꾸 고집을 피워대서 별수 없이 책 위에 얹어 식구통(밥을 넣어주는 구멍)을 통해 복도로 내보냈어요. 독방에서 살다 보니 이런 곤충들도 반갑네요.

며칠 전 아버님을 뵈었습니다. 장소는 29년 전 영등포 구치소 면회실이었습니다. 아버님이 거기 앉아 계셨습니다. 아마도 금방 눈물을 쏟아내실 것 같은 슬픈 표정으로…. “아버지?” 이렇게 말하다 깨었습니다. 꿈이었지요. 작년 말에 돌아가신 아버님을 처음, 잠깐 꿈에서 뵈었습니다.

아버님이 저승에서도 이 불효자를 걱정하시나 봅니다. 29년 전 술도 안 드시는 아버님의 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래군아, 골병든다. 반성문이라도 쓰고 빨리 나와라.” 울음 섞인 아버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돌아서 나왔던 그때, 저는 스물여섯살이었습니다. 효도 한번 못하고 평생 걱정만 끼쳤지요. 그때 매주 면회 오시던 어머님이 지금 시골에 계십니다. 어머님께 인사도 못 드리고 떠나왔네요. 어머님께는 언제나 인사드릴 수 있을까요?

그때부터 다섯번째 감옥행입니다. 첫번째 13개월 살았던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감옥살이는 짧게 짧게 살았습니다. 우리 딸들이 초등학생일 때는 평택 미군기지 싸움 하다 두번 감옥행을 했고, 딸들이 고등학생, 중학생일 때는 용산(참사) 싸움 하다 수배도 되고 구속도 되었지요.

딸들한테 미안해서 이번에도 미안하다는 말을 여러번 했나 봅니다. 큰딸이 편지에 미안하단 말 그만하라고 하더군요. 우리 딸들이 이해해주고 지지해주는 건 고마운 일이지요. 결혼 이후 가장으로 남편으로는 낙제점인 저를 응원하고 매번 옥바라지하느라 고생하는 아내에게는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이지요. 언제고 나가면 가족여행을 꼭 갔다 오리라 생각합니다. 가족끼리 헤어져 있던 기간을 여행 한번으로 메울 수는 없어도요. 그런데 저는 언제 우리 가족들과 여행할 수 있을까요? 이번엔 아마도 이곳 생활이 길어지지 않을까요? 오래 있고 싶지는 않은데 제 바람대로 되지는 않으니까요.

제가 있는 이곳은 책 읽기로는 최고로 좋은 곳입니다. 대한민국의 변방일 뿐만 아니라 ‘디지털의 오지’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에는 컴퓨터가 없습니다. 이메일이 없고, 인터넷이 없고, 스마트폰이 없습니다. 최적의 조건입니다. 386 컴퓨터가 보급된 게 90년대 초입니다. 20년도 넘은 얘기죠. 그런데 여기는 386 컴퓨터조차도 없습니다.

요즘에 사람들은 손편지보다는 ‘전자 서신’을 많이 이용합니다. 법무부 누리집에 들어가서 전자서신 보내면 구치소에서 그걸 내려받아서 프린트해다가 제게 줍니다. 그것을 본 저는 답장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지요. 주소를 모르니까요. 밖에서는 저의 석방을 위해 많은 분들이 애쓴다고 들었습니다. 인터넷 매체인 <뉴스타파>에서 30분 영상도 만들었다고도 하고 석방문화제도 했다 하는 소식을 면회 오시는 분들 통해 들었습니다.

또는 제가 구독하는 언론-감옥에서도 신문을 구독합니다-에 실리는 한장의 사진과 짧은 기사를 통해 알 뿐입니다. 에스엔에스(SNS)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움직이는 그런 활동을 접할 수 없지요. 그러므로 지금의 21세기에선 감옥만한 오지가 없습니다. 굳건하게 남은 ‘아날로그 지대’입니다.

그런데 정말 감옥에서는 컴퓨터를 쓰면 안 되나요? 편지나 원고는 컴퓨터로 하는 게 어렵지 않을 텐데 말이죠. 아무튼 감옥은 책 읽기 딱 좋은 공간입니다. 독방은 더욱 그렇지요. 그래서 저도 책을 많이 읽습니다. 2~3일에 한권은 예사로 읽어낼 수 있지요. 지난 광복절 연휴 이틀을 방 안에만 갇혀 지내는 동안 철학책 한권 독파했습니다.

1.5평 감옥방은 절대 고독의 공간
귀뚜라미도 거미도 여기선 반갑다
29년 전 술도 안 드시고 운 아버지
꿈에 슬픈 표정으로 나타나셨죠
하늘에서 불효자 걱정하시는듯

이번이 도합 다섯번째 감옥행
딸들에게 미안한데 딸들은 더이상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응원
언제쯤 가족여행 갈 수 있을까
세월호 광장에 꽃 한송이 놓아주길

 
머리에서 발로 이어지는 그 여행


<레미제라블> 다섯권 전부 여기 와서 읽었습니다. 고전은 역시 완역본을 읽어야 제대로 감동받을 수 있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하지만 번역이 좋아야 하는데 제가 읽은 번역본은 영 아니었습니다. 이곳에 와서 지금까지 본 책 중에 가장 좋은 책은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이었습니다. 특히 자신의 감옥살이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가는 2부 ‘인간학’ 교실이 너무 좋았습니다.

선생님의 감옥에 비하면 저는 너무 호사롭게 사는 거지요. 칼잠을 자는 동료를 깨지 않게 하려고 몸을 무 뽑듯 일으키고는 얼음장 벽에 기대고 명상을 하시던 그 시절의 감옥과 여름이면 선풍기 돌려주고, 겨울이면 난방 넣어주는 그런 감옥은 비교의 대상조차 될 수 없지요.

특히 선생님의 감옥 편지는 한달에 단 한번밖에 쓸 수 없기 때문에 한장 한장이 아름답게 빚어진 작품이었지요. 컴퓨터가 없어서 손글씨 쓰기 힘들다는 저는 검정, 파랑, 빨강 볼펜과 사인펜, 샤프펜까지 사와 내 방에서 언제고 편지를 쓸 수 있습니다. 그만큼 절박함에서 절대적인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야죠. 물론 이 정도의 변화는 그간의 사회 변화에 대면 발뒤꿈치도 못 쫓아간 거지요.

그, 선생님의 책 중에서 ‘여행’ 이야기에 다시 한번 감동했습니다. 선생님의 여행은 인생 전체를 놓고 말씀하시는 거지요.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로 이어지는 여행…. 우리는 그런 여행 중인 거겠지요. 그 인생 여행 중에 저는 지금 색다른 여행 중이고요. ‘가슴’은 공감인데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변화로 이어지는 그런 여행, ‘발’로 이어지는 여행을 꿈꾸어 봅니다. 그 변화는 결국 관계의 변화라는 말씀-사실 이 얘기는 여러번 읽고 들었던 것인데도-에 공감합니다. 결국 제가 강제로 이곳으로 여행을 오게 된 것은 ‘발’로 가는 여행길의 하나임을 느끼게 됩니다.

지난해 4월16일 누구도 잊을 수 없는 그날. 생중계 되는 세월호 상황과 아무도 구하지 못한-않은- 그 상황을 겪었지요. 304명의 생명이 수장된 그날 이후로 저도 한 인간으로 울고 분노하고 안절부절못하는 날들을 보냈습니다. 팽목항에도 달려가보고 진도체육관도 가고 안산도 가보면서 이대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싸움에 나섰습니다.

이런 공감대는 매우 넓었습니다. ‘가슴’까지의 여행은 성공적이었습니다. 교황이 오시고,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의 40일 단식이 이어졌습니다. 이어서 공감을 넘어 변화를 요구하는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그러자 이제 유가족의 신상을 털고 모욕을 해대고 급기야는 국회에서 만든 특별법(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안)을 무력화하려 했습니다. 우리가 만든 특별법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안전 사회를 위한 특별법이었습니다.

특별조사위원회(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이런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잘못된 이 나라, 이 사회의 잘못된 ‘관계’를 바로잡기 시작해야 합니다. 왜 1997년생 17살 학생들이 구조받지 못하고 거기 세월호에서 죽어갔는지를 밝히는 과정은 비정상적으로 돈과 이윤, 경쟁만 추구하는 야만, 세상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는 일입니다.

정치가, 경제가, 사회가, 문화가 ‘인간 존엄성’을 깡그리 부정하고 소수 기득권 세력만 잘 살도록 짜여 있는 것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일입니다. 무한 책임을 져야 할 대통령과 정부의 잘못을 모두 짚어내야 하는 일입니다. 어쩌면 그 일은 세상의 잘못된 근본을 바꾸는 일입니다. 그래서 권력을 쥔 자들은, 정치권력이든 경제권력이든 손에 쥔 자들은, 특별조사위원회의 가동조차 가로막고 나섰습니다.

내 자식이 어떻게 죽어갔는지 알고 싶다는, 진상을 규명하고 세월호를 인양해 달라는 유가족과 피해자들 앞에 돈을 흔들어대며 모욕을 일삼았던 정부에 저는 여러분과 함께 분노했습니다. 삭발한 유가족들, 상복 입고 아이의 영정 들고 행진에 나선 그들과 손잡고 잘못된 정부 정책, 방침에 항의해 싸웠던 지난 4월. 우리의 힘이 부족해서 저는 지금 이곳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지만, 한편으로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을 위해서는 훨씬 더 우리는 강해져야 함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박래군 위원이 지난달 22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되기 직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박래군 위원이 지난달 22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되기 직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모이고 토론하고 실천하며 바꿔갈 세상


‘가슴’에서 ‘발’로 가는 그 여행, 관계를 변화시키는 그 여행길에 저는 잠시 혼자 떨어져 있습니다만, 저는 “힘들면 쉬었다 가더라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될 싸움임을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 모두 가슴으로 만났고, 다시 발까지 가는 그 여행길은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여행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고 모두가 조금은 더 안전하게 사는,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받는 세상을 향한 여행이라 중도에 끝낼 수 없습니다. 오는 28일이 세월호 참사 500일 되는 날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연극(<세월호>, 서울 대학로 혜화동 1번지)도 있다 하고, 콘서트도 한다 하고, 29일에 500일 대회와 추모 문화제도 한다 합니다.

4·16연대 누리집(www.416act.net)을 찾아 함께해주십시오. 가슴이 있는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를 결코 잊지 않는다는 점을 반드시 서로 확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광화문 ‘세월호 광장’ 분향소에 꽃 한송이 놓아 주시고요. 유가족들, 미수습자 가족들 보시걸랑 손좀 꼬옥 잡아주시고요. 시간 되시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단원고 명예 3학년 교실(안산 단원고 2학년 교실은 ‘명예 3학년 교실’로 불려 그대로 보존중이고 시민들의 방문이 가능하다. 경기도교육청은 내년 1월까지만 이를 보존할 계획이다)도 가보시고요. 팽목항도 다녀오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몸은 이곳에서 한발짝도 나갈 수 없지만, 마음만은 그 모든 곳에 같이하겠습니다.

제가 집과 세월호 광장을 떠나온 게 벌써 한달도 더 넘었습니다. 9월초부터는 재판이 시작됩니다. 재판 준비도 열심히 해서 법정을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을 위한 장으로 만들겠습니다. 이번 ‘500일 추모 행사’에는 함께 못 하지만, 언제고 이곳에서 풀려나면 다시 여러분과 함께 손잡고 우리의 길을 같이 가겠습니다.

그리고 하반기 내내 계속될 인권선언 토론회에도 함께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계속 모이고, 토론하고, 실천하면서 세상을 바꾸어 나갈 것입니다. 잠시 떨어져 있는 저의 발끝은 항상 여러분이 가는 길 방향으로 향합니다. 저는 우리가 변화시켜갈 이 세상의 미래를 믿습니다. ‘사람’을 믿습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2015년 8월18일.
 

서울 구치소/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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