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5-04-12 21:21수정 :2015-04-13 10:03

[인터뷰] 이석태 세월호특위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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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 11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분향소 앞에서 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인 박은미씨를 만나 위로하고 있다. 진도/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지금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객실에 갇힌 채 서서히 죽어가던 아이들 앞에 멈춰 서 있다. ‘엄마, 살고 싶어’ 혹은 ‘엄마, 아빠 사랑해’ 혹은 ‘우릴 기억해줘’, 손톱이 뭉그러지도록 벽을 뜯으며 울부짖던 아이들의 목소리 앞에 정지해 있다. 그건 국가개조 따위의 허황된 수사로 진실을 인멸하는데 골몰해온 이 정부 탓이다. 그들은 그것이 우리 공동체를 무너트리고 있다는 걸 애써 외면한다.

9일 서울시 중구 저동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특위) 임시사무실에서 이석태 위원장을 만난 건 고영주라는 새누리당 추천위원이 유가족과 상처받은 국민들에게 침을 뱉던 날이었다. 그는 전원회의에서 떼를 쓰면 주고, 점잖게 있으면 안 주고…. (그건) 국민성을 황폐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산 트라우마센터 건립에 대한 대꾸였다.

침몰 사고가 미증유의 참사로 비화한 것은 이 정부의 무능과 태만 무책임 때문이었다. 승객 304명이 선실에 갇힌 채 서서히 죽어가고 있을 때, 이 정부가 한 일이라곤 그저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지금 그들이 하는 짓이란 그때와 다르지 않다. 이번엔 특위를 피의자인 정부의 통제 아래 두려고 하는 등 진실을 침몰시키는데 몰두한다.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되었지만, 특별조사위원회 하나 가동하지 못하는 건 그 결과다. 이런 공동체가 어떻게 순항할 수 있을까.

시행령안은 특별법 깔아뭉개는것
민간인의 독립·중립적 조사
보장하도록 한게 특별법인데
시행령안은 파견공무원이
조사·지원대책 전체 관장케

대통령의 명령이 시행령인데
이렇게 문제되는데도 무관심

정부, 선체 인양 시간 끌며
특위활동 시한 넘길까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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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태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 9일 오후 서울 중구 저동 나라키움 빌딩 9층에 마련된 위원장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한 희생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봄이 오면 봄을 지우고, 꽃이 피면 꽃을 지우고 싶다.” 그런 자괴감은 희생자 가족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지난해 12월6일 위원장에 선출되고 벌써 4월 초순입니다. 5개월이 다 지났습니다. 참사 1주기가 되도록 특위가 출범하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빈손으로 1주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이유가 어찌됐든 위원장으로서 자괴감이 큽니다.”

-지난 1년간 무엇이 변했습니까.

“4.16 참사와 관련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변화가 있다면 오히려 좋은 쪽보다는 안 좋은 쪽입니다. 1년 전 국민들은 엄청난 충격 속에서 변화에 대한 거대한 소망을 분출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관심마저 옅어지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대처를 잘못해 참사로 비화했지만, 정부 입장에선 나라의 기틀을 바로 세우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었는데, 왜 그럴까요?

“단기적인 정치적 득실만 따지다 보니 그런 것 아닌가 싶습니다. 공연한 두려움이 컸던 거죠.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를 크게 변화시킬 수 있어 정권에도 큰 보탬이 될 수 있는 일입니다. 해양수산부가 입법예고한 특별법 시행령안은 상징적입니다. 가리려 한다고 가려질 진실이 아닌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파견 공무원이 기획조정실장을 맡아 조사와 지원과 대책 마련 전체를 관장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정부를 조사해야 하는 일인데, 어떤 파견 공무원이 한시적인 위원회를 위해 헌신하겠습니까. 실장 밑에 진상 규명과 안전사회 대책을 관장하는 기획총괄담당관을 두었는데 그것도 공무원이 맡도록 했습니다. 조사특위의 상임위원들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업무 지휘감독권도 없앴습니다. 민간인이 독립적이고 중립적으로 조사하도록 한 게 특별법인데, 모법을 완전히 깔아뭉갠 것입니다. 파견 공무원은 행정 보조나 지원 업무에 국한돼야 합니다.”

-친정부 언론들도 이 안을 두둔하지는 못하더군요.

“너무 지나치니까요. 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조사1과장을 파견 공무원에게 넘기고, 진상규명 대상을 정부가 조사한 결과에 국한하고, 감독할 사람도 국민안전처 공무원이니, 위원회는 관제 허수아비나 다름 없습니다.”

-파견 공무원들은 이미 특위의 내부 문건을 유출시켜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위원회 문건을 청와대, 해수부, 새누리당 쪽 인사들에게 보낸 것이 하나 있고, 그 전에는 김재원 의원에게 보낸 것도 있습니다. 논의 중인 것을 보고 김 의원은 ‘세금 도둑’ 운운했지요. 문서보안 규정 등을 마련해야 하는데, 시행령 안이 저 모양이니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나 과거사위원회가 있었습니다. 정부가 왜 선례를 따르지 않는 거죠?

“의지가 없기 때문이겠죠.”

-시행령은 대통령령입니다. 대통령의 명령이 시행령입니다. ‘시행령’이라고만 하다 보니 대통령과는 무관한 문제처럼 보여집니다.

“규범에는 헌법이 있고 하위 일반 법률이 있고, 법률이 모든 것을 규정할 수 없고 또 법률을 집행하는 건 정부이니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정부가 만듭니다. 그때 대원칙은 하위 규범이 상위 규범과 모순되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시행령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대통령이 모든 것을 직접 관장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되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저희가 두번이나 면담을 요청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정부가 뼈대를 바꾸지 않고 강행하면 어떻게 대처합니까. 정부는 이미 부분 수정만 하겠다고 했습니다.

“특별법에 따라 지난 2월 제출한 위원회 안을 토대로 즉시 개정안을 대통령에게 내려고 합니다. 특별법 8조엔 의안 제출권이 규정돼 있습니다. 설립 준비단계에서 위원회는 특위를 지원하는 입장인 해수부가 그렇게 위원회 안을 뭉개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선체 인양도 진상규명을 위한 조처의 하나입니다. 박 대통령이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는데, 선체 인양으로 진실 규명을 덮고 가려고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선체 인양의 목적은 실종자 수습과 진상 규명 두 가지입니다. 조사자의 입장에서는 사고 원인을 조사하기 위한 선체 인양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직접 눈으로 본 것과 보지 않고 추정하는 것에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눈으로 직접 살펴야만 권위 있는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잠수함 충돌설 등 온갖 오해와 갈등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선체 인양 이야기를 먼저 꺼낸 건 정부였습니다. 수습 과정이 길어지자 구조 논란을 인양으로 끝내려 한 것이었지요. 이번에 시행령 논란을 덮으려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때 인양 논란은 가족들의 반대로 쑥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수습이 끝날 즈음엔 선체 인양 불가론으로 돌아섰습니다. 5천억원이 든다는 둥 하면서 반대 여론을 조성했죠. 인양은 제대로 되겠습니까?

“사실 저희도 걱정입니다. 인양을 하더라도 돈 문제, 기술 문제를 끌어들여 특위 활동 시한을 넘길 것 같습니다. 해수부가 하는 걸 보면,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민간에 기술 검토를 의뢰했다는데, 그게 나오면 정부 차원에서 기술 검토한다고 하면서 시간을 끌겠죠. 돈 문제는, 이 정부가 그렇게 믿고 따르는 미국을 보십시오. 전쟁이 끝나고 한참 지난 뒤에도 미국 정부는 끝까지 실종자 수습을 합니다. 공동체의 신뢰를 쌓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박 대통령이 ‘나부터 성역없이 조사하라’고 하는 상황을 생각해봅니다. 그런다면 문제는 대부분 풀릴텐데요.

“언론에게서 가장 많이 받는 물음이 ‘대통령의 7시간을 조사할 건가’입니다. 위원회의 대원칙은 성역없이 조사한다는 것입니다. 그 원칙 아래서 소위원회가 대상과 방법을 정해 독립적으로 조사하게 될 겁니다.”

-특위를 출범시키고, 지켜주는 건 희생자 가족과 국민입니다. 그들이 바라는 건 진실입니다. 참사의 진실은 왜 반드시 규명돼야 합니까?

“한 사회의 건강성을 좌우하는 건 신뢰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신뢰는 와르르 무너지고 있습니다. 사고가 발생해도 서로 돕고 위로하고 치유한다면, 시민들은 공동체를 믿고 의지합니다. 반대로 미증유의 참사를 겪고도 달라지는 게 없다면, 시민들의 공동체에 대한 믿음은 사라집니다. 그렇게 가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게 정부입니다. 그 첫 삽이 바로 진상 규명입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슬퍼하고 무거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정부는 고민해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라.’ 우리 사회는 아직도 그 수준에 멈춰 서 있습니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정리 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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