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3-20 20:50:29수정 : 2015-03-20 21:20:55

기고
[기고]67년의 기다림… ‘4·3’의 사회적 치유
허상수 | 지속가능한사회연구소 소장

다가오는 4·3 국가 추념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통령의 제주도 방문은 일부 극렬 보수단체가 요구하는 4·3 비극 희생자 재심의는 물론 위패 존치 여부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진영논리에 빠져 있는 보수우익들은 과거사 청산과 사회통합 작업에 어깃장을 놓으며 역사적 반성과 미래지향적 행보에 정면으로 역행하고 있다.

1947년 3월, 미군정 경찰의 발포로 시위행렬을 구경하던 6명의 시민이 희생되었다. 여기서부터 엄청난 참극(탄압-봉기-학살)이 촉발되고 말았다. 대한민국 국가 형성기에 제주에서 수만명의 무고한 민간인들이 참혹하게 집단희생을 당했다. 이 대형 참극은 형언할 수 없는 육체적, 정신적, 물질적 피해와 상처를 남겼다. 사건 발생 56년 만에 진상규명이 이뤄지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가 공권력의 잘못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했다. 그 뒤 몇몇 정치인들이 완전한 해결을 말했지만 여전히 과거청산은 답보와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67년 만에야 미 군정 시기에 일어난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정의를 통한 사회적 치유’라는 올바른 길을 모색하기 위해 제주 4·3 유족회와 천주교 주교, 학자들이 대표단을 꾸려 미국 워싱턴으로 향한다.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의회에 제주도민 학살 비극의 사회적 치유를 위한 청원을 제기하기 위해서다.

에릭 야마모토 등 한·미 학자들과 한 미국 예비역 대령은 제주 4·3 비극과 관련해 미국도 과거와 현재까지 계속된 피해와 상처들을 치유하는 데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한다. 이들은 독립적으로 미군과 정부 관리들이 이 사건에 참여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현재까지 이어진 화해 작업에 미국이 빠져 있거나 거의 협조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미 원트워스공대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제주 4·3 비극에 대해 “아직까지도 미국에 의해 사실 인정이 되지 않고 있다”고 했고, 미 시카고대 커밍스 교수는 “만약 한국인 누군가가 1945년부터 1953년까지 벌어진 사건에 대해 미국 정부로부터 시인을 받아낸다면, 분명히 제주 사람들이 제일 먼저 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주대 고창훈 교수는 한국 정부에 의한 초기의 회복 조치들을 제외하고 “한국과 미국 양 정부 다같이 책임을 지고 화해를 위한 권고안을 이행하는 데 실패했다”고 보았다.

이번 미 의회에 제기하는 4·3 비극의 ‘정의를 통한 사회적 치유’ 청원 작업은 미국 민권운동 경험의 반영이다. 하와이 원주민이 당했던 가혹행위에 대한 미국 연방정부의 사과,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일어났던 일본계 미국인 12만명 강제 구금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사과와 배상작업이 이뤄져왔다. 미·일 법학자들은 이 사안의 중대성과 긴급성에 주목해 공동연구를 계속해 왔다.

과거사 청산은 단순히 불미스러운 과거사를 들춰내는 데 있지 않다. 사회 진화를 위한 미래지향적 가치, 지속가능성과 생명, 인권과 평화를 추구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4·3 비극의 사회적 치유를 위한 한·미공동위원회를 구성하고, 기존의 성과와 한계들을 검토한 뒤 “끝나지 않은 과업”이라는 점을 확인해 진정한 화해를 위한 국제적 확장이 필요하다. ‘사실 인정’ ‘책임’ ‘배상’ ‘공동체 재건’이라는 4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노력을 같이 해나가야 한다. ‘정의를 통한 사회적 치유’는 두 나라 사이 민주주의와 인권, 공동이익의 실현에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할 것이다. 결코 양국에 낭비나 소모적 사업이 되지 않을 것이다. 특히 한·미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한 양심 회복운동의 부활에 큰 자양분을 제공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