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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5-03-23 20:03수정 :2015-03-23 22:14

 

3월21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찾은 탈북 청년 단체 위드유(with-U) 회원들이 노 대통령이 잠든 너럭바위 앞에 선 채 고개 숙여 묵념하고 있다. 탈북자 단체 중 최초로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찾은 이들은 한쪽 이념에 치우치지 않은 새로운 탈북자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회원들 뒤 왼쪽 위편으로 부엉이 바위가 보인다.

[싱크탱크 광장]
지난 21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위치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 생전에 노 전 대통령이 즐겨 불렀던 노래 ‘상록수’의 선율이 낮게 흐르는 가운데 11명의 젊은이가 묘역 중앙의 헌화대에서 차례로 헌화와 분향을 하고 있었다.

주로 검은색 계통의 정장 차림을 한 이 젊은이들은 잠시 뒤 헌화대를 지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잠들어 있는 너럭바위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한해 70만명가량에 이르는 여느 참배객과 마찬가지로 “대통령 노무현”이라고 쓰여 있는 너럭바위 앞에서 묵념을 함으로써 가신 이에 대한 예의를 표시했다. 등 뒤로는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몸을 던졌던 부엉이바위가 이들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 평범해 보이는 젊은이들의 참배는, 하지만 그들의 소속 단체를 확인하는 순간 특별한 의미를 담은 참배가 된다. 참배를 한 11명의 젊은이는 모두 ‘위드유’(with-U)라는 탈북 청년 모임 회원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날 참배는 탈북자 단체가 주도한 최초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참배인 것이다.

‘위드유’ 회원 11명 봉하마을 방문
단체로는 첫 노 전 대통령 묘역 참배
‘금기 아닌 금기’ 깬 행보

남한 정규교육 받아 사고편향 탈피
민주적 원칙·회원들 힘으로 운영
정부 등록땐 제약…임의단체 고수

주체적 행동 노력, 탈북자 전체에 득
교육강좌서 역대 대통령들 참배 기획
참여 회원들, 기대·우려 섞여 상기돼


남한 사회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수가 3만명에 이르렀고 수많은 탈북자 단체가 활동하고 있지만, 탈북자 단체의 이름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찾은 적은 그동안 단 한차례도 없었다. 물론 탈북자 단체들이 모여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가지 말자고 공개적으로 결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탈북자 사회에서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을 단체의 이름으로 찾는 것은 사실상 하나의 금기가 돼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도 크게 영향을 주었다. 두 보수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과의 화해와 평화, 그리고 공동번영에 초점을 둔 참여정부의 대북정책과 결을 달리하고 있다. 사실 대부분의 탈북자 단체들이 정부의 지원 등에 크게 의존하는 상황에서, 이들이 공개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에 따라 탈북자들이 지니고 있는 ‘보수적인 이미지’는 보수정권을 거치면서 더욱 강화돼 버렸다. 위드유의 이번 노 전 대통령 묘역 참배는 탈북자 사회가 지닌 이런 ‘금기 아닌 금기’를 깨뜨리려는 탈북 청년들의 작지만 커다란 시도인 셈이다.

위드유가 이렇게 금기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은 조직의 구성원과 운영, 그리고 조직의 목표 등이 모두 기존 탈북자 단체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위드유는 핵심 구성원들이 직장을 가진 20~30대 청년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북한을 떠난 뒤 남한에 정착했다. 그 뒤 남한에서 대학이나 대학원 교육을 받았다.

남한에서 받은 정규교육은 이들에게 보수적인 사고에만 머물지 않도록 하는 큰 힘이 되어주었다. 올해 위드유의 대표를 맡고 있는 ㄱ(회사원)씨의 경우도 “남한에 온 뒤 초기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등 남한 내 진보인사들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다”며 “그러나 남한에서 대학원 교육을 받으면서 진보적인 인사들의 생각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됐다”고 말한다.

두번째로 위드유는 ‘구성원 자체의 힘으로, 민주적으로’라는 원칙 아래 움직인다. 이들은 큰 행사를 진행할 경우에는 뜻있는 사람들의 지원도 받지만, 일상적인 모임은 꼭 자체적으로 회비를 거두어서 진행한다. 지난해 위드유 대표를 지낸 회사원 박영철씨는 2013년 무연고 탈북 청소년을 돕기 위해 위드유가 벌인 ‘마중물 음악회’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음악회 연습 모임 때 들어간 식비 등은 모두 자체 회비로 충당했습니다. 그리고 매표를 통해 얻은 수익금은 전액 무연고 탈북자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위드유는 모임의 대표도 1년 임기로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맡고 있다.

세번째로 위드유가 ‘당신과 함께(with-You), 통일을 위해(with-Unification)’를 조직의 목표로 삼고 있는 점이다. 위드유의 유(U)자는 또 왼쪽과 오른쪽을 모두 감싸 안는 것을 상징화한 것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위드유는 보수나 진보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멋진 통일이 되기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의 두 날개가 필요한데 탈북자 단체라고 해서 진보의 날개 없이 보수 편향으로만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위드유의 구성원들은 보수적인 시각과 진보적인 시각을 고루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극좌와 극우적 사고를 배제한 상황에서 보수와 진보의 장점에 대한 토론을 통해 자신들의 생각을 키워오고 있다고 한다.

위드유는 이런 원칙들을 지키기 위해 ‘임의단체’를 고수하고 있다. 통일부에 정식 단체로 등록하자는 일부 의견도 있었지만 보류했다. 한 회원은 “통일부 등록 단체가 되면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참배 같은 활동을 마음대로 진행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 회원은 “위드유 회원 40여명이 2014년 8월 가수 이승철씨와 함께 독도에서 ‘홀로 아리랑’ 합창을 했지만, 이 또한 회원들이 주동적으로 기획하고 진행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만큼 탈북자들도 통일로 향하는 길에서 들러리가 아닌 주체가 돼서 판단하고 행동하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위드유 구성원들은 한쪽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려는 이런 노력이 3만명에 이르는 탈북자 전체의 남한살이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보수정권을 거치면서 남한 사회에서 탈북자들에 대한 이미지는 더욱더 나빠졌다. 위드유 회원들은 그 이유 중 하나로 무엇보다 현재 탈북자 사회의 이념적 편향이 강화되는 것처럼 보이는 점을 꼽는다.

이는 최근 남한 사회에서 키워드가 되고 있는 탈북자 얘기를 간단히 살펴보면 뚜렷해진다. 태어나면서부터 북한의 ‘14호 수용소’에서 살았다는 거짓증언을 해서 탈북자 이야기의 신뢰성을 떨어뜨린 신동혁씨를 비롯해서, 대북전단 살포를 강행하겠다고 나서며 접경지역 주민들과 갈등을 빚는 이들, 종편에 출연해 북한 사회를 과장해서 조롱하고 모욕을 주는 이들까지 ‘극우 프레임’ 속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주로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남한 사회에서는 점점 더 탈북자 사회 전체를 ‘극우 프레임’에 이용당하거나 이용하는 사람들로 인식한다. 위드유 회원들은 이런 상황이라면 정부가 정착금을 얼마간 올려주더라도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에서 제대로 정착하고 살아갈 수 없다고 판단한다. ‘극우 프레임’에 편승하는 일부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남한 사회에서 탈북자들의 지위는 떨어지기 때문이다.

위드유의 한 회원은 “사소한 사건이라도 유독 탈북자가 관련된 사건은 크게 기사화되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남한 사회에서 탈북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위드유는 탈북 청년들이 좌우의 날개로 날아가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이런 현상을 극복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다.

사실 이번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방문도 “좌우 이념갈등을 극복하고 균형 잡힌 역사관을 갖도록” 하기 위한 탈북 청소년 대상 교육강좌인 ‘통일세대를 위한 대한민국 현대사 강좌’ 프로그램의 하나로 이루어졌다.

‘현대사 강좌’는 남한의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 등 전직 대통령들의 리더십과 인생역정에 대한 강의를 듣는 과정으로 꾸려졌다. ㄱ 대표는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이지만, 보수 대통령이든 진보 대통령이든 모두가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분들이라는 인식으로 프로그램을 짰다”고 밝힌다. “남과 북을 잇는 징검다리가 될 우리 탈북 청년들부터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병폐인 이념논쟁을 극복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프로그램에 담았다는 것이다.

위드유는 이런 취지에 맞춰 네 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는 행사를 마련했다. 본격적인 강좌는 오는 7월께 시작되지만, 그에 앞서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대통령들의 묘역에 참배하는 것이 예의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지난 7일에는 이미 국립현충원을 찾아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 그리고 21일 서울에서 버스로 왕복 10시간이 넘는 길을 달려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방문한 것이다.

ㄱ 대표는 현재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원장인 류석춘 교수를,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박정희 정부 초대 경제 제2수석비서관을 지낸 신동식 한국해사기술 회장을,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김대중 총재 비서실장을 지낸 유재건 시지엔티브이(CGNTV) 대표이사를 강사로 섭외했다고 밝힌다. ㄱ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강의 또한 노 전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나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을 강사로 섭외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참배에 함께한 위드유 회원들은 서울에서 봉하마을까지 왕복 800㎞에 이르는 먼 여정에도 전혀 지치지 않았고, 다만 다소간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 상기됨은 기대감과 우려가 뒤섞여 만들어낸 것 같았다. “탈북자들 중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감으로써 탈북자들을 두 날개로 날게 하는 데 조금은 기여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함께 “기존 탈북자 단체가 위드유를 ‘빨간 물이 든 탈북 청년 단체’로 폄하해서 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마음속에 동시에 존재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들의 상기된 표정은 또다른 징표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그것은 탈북자 3만명 시대로 접어드는 이때, 좌우의 날개로 통일을 향해 나아가기를 바라는 탈북 청년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글·사진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손에 쥔 것 없지만…대통령이 된 도전정신이 큰 울림”


묘역 참배 탈북 청년들 소감 “남북관계 화해 노력에 공감”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위치한 노무현 전 대통령 임시 추모관 모습. 지난 21일 이 추모관을 찾은 위드유 회원들은 노 전 대통령이 탈북자와 닮은 점이 많다고 소감을 밝혔다.

“노무현과 탈북자는 공통점이 많다.”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참배 뒤 봉하마을에 있는 추모관 등을 둘러보고 난 다음 위드유 회원들이 밝힌 소감이다. 이들은 또 노 전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모셨던 김경수 새정치민주연합 경남도당 위원장과 1시간가량 간담회를 하면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이해도를 크게 높였다고 입을 모았다.

회원들은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시골 출신에 상고 졸업이라는 “아무것도 손에 쥔 것 없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된” 그 도전정신이 큰 울림을 준다고 밝혔다. 현재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는 한 회원은 “와서 보니 정말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이 실감난다”며 “우리도 북에서 내려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시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 회원은 이어 “한번 경쟁에서 실패하더라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한 노 전 대통령의 정신은 지금처럼 청년실업이 높은 상황에서 더욱 울림이 큰 것 같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위드유 대표로서 ‘독도 합창’을 이끌었던 회사원 박영철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관계 화해 노력에 크게 공감한다”고 밝혔다. 박 전 대표는 “통일이 돼야 북에 돌아갈 수 있는 우리들의 처지로서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그 누구보다 크다”고 덧붙였다.

강원철 위드유 초대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4년 7월 베트남에서 400여명의 탈북자를 한꺼번에 입국시키는 등 역대 대통령 중 재임 기간에 가장 많은 탈북자의 입국을 허용했다는 사실이 탈북자 사회에서는 잘 안 알려져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너무 탈북자 문제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위드유의 ㄱ 대표는 “새누리당은 탈북자들의 이념 편향을 조장하면서 이득을 취하는 정책을 편다. 그런데도 비례대표 의원을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탈북자를 위해 큰일을 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며 “새정치민주연합도 탈북자 사회에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탈북자들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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