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pressEngine ver.2

글 수 444
2016.05.28 23:41:23 (*.96.151.82)
4963

등록 :2016-05-27 18:49수정 :2016-05-27 21:49

 

봄은, 언제나 5월27일까지만 봄이다. 그리하여 5월은 이제사 끝났다. 여름은 정확하게 6월10일날에 시작한다. 계절을 쇠는 순환적 관습과 사회심리적 시간은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그해 5월은, 27일에 끝났다. 윤상원과 그의 벗들이 남도 도청에서 항전 끝에 사살되면서. 새벽 뜨락에서는 감꽃이 지고 있었다. 아까시꽃으로 피어난 5월은 감꽃으로 우수수 떨어져내렸다.

6월10일에야 비로소 여름이 시작하는 건 거기 격발하는 시간이 장전되어 있는 터다. 6·10 항쟁. 5월27일과 6월10일 사이에는 굳이 계절이 없었다. 1980년대 내내, 그 시간은 죽어 있었다. 살아남은 자의 죄로. 그리하여 살아 있었다. ‘산 자여, 따르라'는 격동하는 가락을 타고 넘나드는 봉기로. 6월은 7년 열사나흘이 걸려서 가까스로 도착했다. 1987년 6월10일 정오 서울시청 앞 광장에. 에릭 홉스봄의 언설구조를 빌리자면 ‘장기 5월'이었다. 그날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장기 유신'이 끝나고 새 헌법 첫 줄이 매무새를 가다듬고 있었다.

그해 5월은 유난히 더웠다. 1천9백5십년 6월을 낀 여름이 가장 긴 여름이었듯. 5월은 비닐로 칭칭 감은 살점이 썩어가는 속도로 진행되었다. 날마다 죽어나가는 제 육신을 담을 관짝마저 5월은 부족했다. 27일은 너무 빠르게 왔고 또 너무 더디 왔다. 그 5월 열흘 동안에 시간은 일종의 액체였다. 비가 나흘을 뿌려서만은 아니었다. 시계는 흐렸다. 구름이 자주 끼어서만도 아니었다. 아무렇게나 트럭에 실려 도청 앞을 떠나 망월동 묘지로 실려가면서도 5월은 이별이 없었다. 그것은 긴 5월의 시작이었을 뿐이었다.

사람들이 기억하듯 그 5월은 정말 더웠던 것일까. 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지역 평균기온은 23.6였고 20일은 17.5로 내려가더니 24일은 26.8로 가장 높았다. 열흘 동안 강수량은 56.3㎜였다. 정작 평년보다 기온이 조금 낮다 싶은 날들이었다. 봄이 끝나는 마지막 날인 27일 공수부대가 진입해 오던 새벽 4시는 가을인 양 수은주가 떨어져 10 아래였다. 섭씨 8도. 그래도 5월은 더웠다. 그 새벽이 쌀쌀했다고 기억하는 이는 여적지 아무도 없다. 그것이 역사와 인간의 계절이다.

집단학살의 좌표는 21일 대낮 정오에서 55분쯤이 지나 난데없이 울려 퍼진 ‘대한사람 대한으'와 ‘로' 사이에 있었다. 애국가는 그 노래를 5월 내내 목놓아 부른 제 백성을 죽이는 신호탄이 되어 가장 모욕적으로 발사되었다. 진압군 한 지휘관이 실탄상자를 옮겨주면서 외쳤다. 이 새끼들아, 왜 조준사격 안 해. 총알 아깝게. 총알은 애국가를 찢으면서 날아왔다. 그 애국에는 양심, 인간애, 이성 따위는 없었다. 그날 초파일 행사에 바쁜 탓이었을까. 부처님은 미처 당도하지 않았고 조국의 탄환이 시민의 심장을 관통해 갔다. 이러한 것들이 5월의 수은주를 끌어올린 요소들이다. 그리하여 분명히 그해 5월은 더웠다.

서해성 소설가
서해성 소설가
아직 5월은 덥다. 5월을 피로 물들였던 자들은 여전히도 노래를 틀어막는 일 따위로 5월을 처형하고 있다. 그 5월에 한 소녀가 일기를 썼다. 5월19일(월). 도청에서 난리가 났다고 한다…하루빨리 이 무서움이 없어져야겠다. 일기장 말미 메모난에는 이렇게 써두었다. 산수 복습. 오늘, 그 5월의 날씨와 기억을 복습한다. 한 치도 잊지 않기 위하여. 민주주의 후퇴는 독재와 학살의 시간을 잊어버린 자들에게 깃드는 망각의 복수다. 기억은 죽을 수 있지만 망각은 결코 죽지 않고 떠돌다 대낮을 범한다. 또 다른 애국의 이름으로. 그리하여 오늘도 필시 덥다.

서해성 소설가


번호
제목
글쓴이
444 송헌주선생 후손들 독립유공자 보상금 전액기부
[관리자]
2096   2016-05-12
등록 :2016-05-12 08:25 LA 대한인국민회 “미주독립운동사·역사 교육에 쓸 것” 재미 독립운동가 송헌주 선생(1880∼1965)의 후손들이 국가보훈처로 받은 독립유공자 보상금을 로스앤젤레스(LA) 소재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에 전액 ...  
443 미국 전문가 “북 로켓, 미사일 아니다”
[관리자]
2170   2016-02-18
등록 :2016-02-15 20:56수정 :2016-02-16 08:36 북한이 7일 발사한 장거리 로켓은 미사일이 아니며 미사일로 발전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전문가의 분석이 제기됐다. 북한의 이번 로켓 발사가 미사일 발사라는 정부의 주장을 정...  
442 ‘뉴욕타임스’ 사설로 박 대통령 비판
[관리자]
2184   2015-11-21
등록 :2015-11-20 16:28수정 :2015-11-20 19:26 ‘뉴욕 타임스’ 19일치 사설. “민주주의적 자유 퇴행시키려 골몰…우려스럽다” 미국 유력지 <뉴욕 타임스>는 19일 ‘한국 정부, 비판자들을 겨냥하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  
441 4·3항쟁 다룬 ‘지슬’ 원화 광주서 전시
[관리자]
2200   2016-03-29
5·18기념재단·제주4·3희생자유족회 공동 주최 4월20일까지 5·18기념문화센터 전시실에서 김우리 uri@gjdream.com 기사 게재일 : 2016-03-29 14:26:59 제주4·3사건 68주기를 맞아 5·18기념재단이 제주4·3 만화 ‘지슬’ 원화 전시회를 2...  
440 새책 '4.3과 미국' / 허상수 운영위원
[관리자]
2207   2016-04-04
2016.04.03 17:17 방배동 유족회 발신 : 허상수 교수 (전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자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운영위원장)가 4월 1일(금) 오후 5시 30분, 서울시민청 콘서트홀에서 '4.3과 미국'이라는 책을 출간하는 기념회를 가졌...  
439 < YS 서거> 孫여사, '65년 반려' 서거 소식에 "춥다.."(종합)
[관리자]
2218   2015-11-22
연합뉴스 | 입력 2015.11.22. 18:44 임종 못해…현철 "쇼크 올 것 같아 서거 때 곧바로 말씀 못드려" '청와대 안주인' 시절에 '전통적 영부인' 모습 역할 83년 23일 단식투쟁때 남편 간호하며 외신에 전화로 소식 알리기도 (서...  
438 ‘세월호 특검’ 필요성 일깨우는 ‘그날의 기록’
[관리자]
2228   2016-03-11
등록 :2016-03-10 20:55수정 :2016-03-10 21:11 ‘2014년 4월16일’을 시민의 눈으로 기록한 세월호 백서가 세상에 나왔다. 재단법인 ‘진실의 힘’의 세월호 기록팀이 10개월 동안 방대한 자료를 꼼꼼히 살펴 펴낸 <세월호, 그날...  
437 새해인사
[관리자]
2230   2016-01-01
우리 회원 여러분께 새해인사 올립니다. 오늘 불끈솟아 타오름을 이은 태양은 '빨간 원숭이 해'(丙申年)를 출발했습니다. 올해 내내 우리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진상규명범국민위원회' 회원가족 여러분께, 여러분의 가정에, 아울러...  
436 “한반도 평화 위한 ‘비핵무기지대화’ 논의 이끌어야”
[관리자]
2239   2015-01-30
등록 : 2015.01.29 19:08수정 : 2015.01.29 23:43 이삼성 교수. 사진 한승동 선임기자 [짬] ‘동북아 안보공동체 토론회’ 발제 이삼성 교수 “핵무기가 파괴가 아닌 평화의 수단이라고 인식하는 핵무기주의의 미망에서 벗어...  
435 [사설] 선거법 볼모 삼지 말고 테러방지법 합의해야
[관리자]
2241   2016-02-29
등록 :2016-02-28 18:43수정 :2016-02-28 21:33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가 28일 4·13 총선에 적용될 선거구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애초 정해진 국회 제출 시한을 139일이나 넘겼으니 지각도 이만저만한 지각...  
434 한국에 ‘샌더스’는 없는가
[관리자]
2245   2016-02-21
등록 :2016-02-19 19:06 미국 대선판을 뜨겁게 달구는 미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 한국 정치인 중에 그와 같은 리더십과 성과를 보여줄 인물은 없는가. AP 연합뉴스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미국을 변화시키려면, 정치혁명...  
433 [포토] 전태일 열사 45주기 추모대회 열려
[관리자]
2246   2015-11-09
등록 :2015-11-08 16:03수정 :2015-11-08 16:04 8일 오전 서울 종로 전태일다리(버들다리)에서 전태일 열사 45주기를 추모대회가 열렸다. 비가 내려 생긴 웅덩이에 전태일 동상이 비쳐보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  
432 누가 ‘헌법’을 유린하는가. 복면(심상정) vs 복면(김세균).
[관리자]
2260   2015-12-02
등록 :2015-12-01 19:29수정 :2015-12-01 22:10 복면 쓴 심상정 대표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오른쪽 둘째)와 김세균 공동대표(맨 오른쪽)가 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복면금지법의 문제점과 대응 방안 토론회’에서 가면을 써보이...  
431 의원직 제명 사태 부른 YS의 <뉴욕타임스> 격정 인터뷰
[관리자]
2266   2015-11-24
등록 :2015-11-23 19:02수정 :2015-11-24 01:21 1979년 8월11일 새벽 2시 와이에이치무역 여성노동자들이 농성중인 신민당사에 경찰 1000여명이 들이닥쳤다. 경찰은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를 당사에서 강제로 끌어내 집으로 보냈...  
430 "정부의 제주4·3희생자 재조사는 '사상검증'"..반발 확산(종합)
[관리자]
2274   2016-01-06
연합뉴스 | 입력 2016.01.06. 15:22 | 수정 2016.01.06. 15:22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변지철 기자 = 행정자치부의 제주 4·3 희생자 재조사 요구에 대해 4·3 관련 단체와 지역 야당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제주4·3연구소는 ...  
429 고영주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변형된 공산주의자’”
[관리자]
2275   2015-10-07
등록 :2015-10-06 15:47수정 :2015-10-06 18:03 고영주 방송문화진흥재단 이사장이 6일 오후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야당 의원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공산주의자라는 과거 ...  
428 26일 해군기지 준공때…강정 “평화마을 선포”
[관리자]
2275   2016-02-25
등록 :2016-02-24 20:43 23일 오후 제주시청 앞에서 시민들이 강정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공 25일까지 평화센터서 촛불문화제 “희망의 끈 놓지 않는다 알리고파” 제주해군기지가 지역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  
427 “오직 통일만이 살길이다”
[관리자]
2281   2016-04-11
등록 :2016-04-07 20:26 한승동의 독서무한 “선교사들은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중매쟁이 역할을 했어요. 많은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을 일본이 합병할 때 대부분 정교분리정책을 빙자해 묵인 내지 동조했어요. (…) 3·1운동 일어날...  
426 올해의 사자성어 ‘혼용무도’…어리석은 군주가 세상을 어지럽히다
[관리자]
2283   2015-12-21
등록 :2015-12-20 10:38수정 :2015-12-20 21:58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4월16일 오후 5시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았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8시간, 첫 보고를 받은 지 7시간 만이었다. 대통령이 참사의 심각성을...  
425 [5·18기념재단] '푸른 눈의 목격자' 故 위르겐 힌츠페터 추모식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관리자]
2287   2016-05-12
故 위르겐 힌츠페터 기념정원(Memorial garden) 조성 및 추모행사 열려글쓴이 : 5·18기념재단 작성일 : 2016-05-03 조회 : 238 故 위르겐 힌츠페터 기념정원(Memorial garden) 조성 및 추모행사 열려  오는 5월 16일 오후 1...  

알림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