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2.30 21:57수정 : 2014.12.30 22:24


박 대통령이 통치계획·능력 없는 탓”


00498539801_20141231.JPG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논평
박 대통령 민주의식 희박한데다
대통령 권력 자체 급속히 무기력화
세월호·비선실세·정당해산 등 난맥
미온비판 그치면 말려드는 꼴
분단체제 온존하는 한 보안법 족쇄
내년에는 다시 해방의 꿈을 꾸자
몰상식한 현실을 정돈해 가면서

“대통령 권력 자체의 급속한 무기력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핵심적 위기요 혼란의 진원이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계간 <창작과 비평> 편집인)가 올해를 돌아보며 세월호 사건, ‘비선실세’와 ‘문고리 3인방’의 국정농단, 헌법재판소에 의한 정당 강제해산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둘러싼 정권의 난맥상에 대해 논평하는 글을 발표했다.


30일 ‘창비주간논평’(weekly.changbi.com)에 ‘광복 70주년, 다시 해방의 꿈을’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발표한 백 교수는 지금 혼란의 핵심이 87년 체제의 말기 국면에서 오는 것이라고 보고, 자칫 정권의 “꽃놀이패”에 휘둘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이 글을 보면, 그는 체제말기적 혼란의 핵심으로 “87년 6월항쟁 최대 성과인 직선 대통령이라는 헌법 기관의 위기”를 꼽았다. “대통령 본인의 민주헌정 의식이 원래 희박한 점”과 “통치플랜은 없었던 준비부족 및 통치능력의 결여”가 문제라는 것이다. 나아가 “어느 누가 하더라도 발본적 전환 없이는 수습이 안 되는 체제말기적 여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 크다고 지적하며 “대통령중심제를 내각제 또는 이원집정제로 바꾸는 보수작업으로 시정될 일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서는 “파시즘의 복귀라고 단정한다든가 반대로 통진당 옹호가 될까 두려워 미온적인 비판에 그치는 것은 정권의 꽃놀이패에 걸려드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종북’과 선을 긋는답시고 헌재의 행태에 결연히 항의하지 못하고 쭈뼛거리는 정치권에 흔한 행태” 또한 마찬가지라고 그는 말했다.


대신 백 교수는 이번 헌재 결정의 이면을 분석했다. 이번 결정은 “묘수라기보다 분단체제 속에서 우리가 수없이 겪어온 하수농락법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1987년의 민주화가 독재를 무너뜨렸을지언정 “독재의 토대가 되었던 분단체제를 허물지는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불가피한 일이라는 뜻이다.


그는 “87년 체제의 민주헌법에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면헌법’이 수반했다”며 헌법이 놓인 딜레마를 지적했다. 이번 헌재 결정은 민주적 법치주의 원리가 있더라도 분단체제라는 한계가 있는 한, ‘이면헌법’이 우선한다는 점을 확인해주었다는 분석이다. 곧, 분단보다 나은 체제를 고민하지 못한다면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헌법을 빈껍데기로 만들 수 있는 위험”(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겨레> 22일치 8면)이 상존한다는 것이다.


백 교수는 내년 8·15 해방 70년을 맞아 역사의 큰 흐름을 바꾸고 진정한 ‘해방의 꿈’을 꾸자고 제안했다. 지금의 혼란과 고통은 “87년 체제의 막장이자 분단체제 자체의 전환기”로서 “말기국면 특유의 혼란과 퇴행현상”이라는 것이다. 이에 그는 단호한 태도를 제안했다. “분단체제의 일익인 북녘에 대한 비판의식이 부재하고 내부적 자기쇄신 노력이 결여된 집단이라면 통합진보당이든 누구든 원칙 있는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민주개혁세력이나 야권에 대해서도 “계속 밀리기만 한다면 언젠가 강력한 파시즘이 대안으로 떠오를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반도의 남북 모두에 지금의 분단체제보다 나은 체제를 이룩하는 중기적 과제와 보수·진보를 떠나 너무 몰상식한 현실을 남녘에서만이라도 일단 정돈하자는 단기작업을 적절히 배합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백 교수는 “이 시대는 보수 쪽도 ‘수구’가 주도하는 가운데 일부 합리적 보수주의자들마저 그 헤게모니 안에서 맥을 못 추고 있다”고 전제한 뒤 “보수·진보의 차원을 벗어나 몰상식을 정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현재의 위기에 대해 “단순히 신자유주의로 단순화하며 분단체제의 작용을 빼놓은 채 건성으로 생각하고 말하거나 대충 규탄하고 분노해서는 해결이 안 되는 상황이며, 정교한 판단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치밀한 ‘적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