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6.23 19:02

이수훈 경남대 교수·정치사회학

다시 6·25를 맞는다. 6·25 전쟁이 발발한 지 64년이 되었다. 너무나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한국전쟁은 아직도 휴전 상태일 뿐 공식적으로 끝나지 않았다. 1953년 여름 체결된 정전협정에 따라 전쟁도 아니고 진정한 평화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우리 민족이 정전협정체제를 종식시키고 평화체제로 대체해야 할 큰 숙제를 풀지 못하고 긴 세월을 살아왔던 셈이 된다. 이 숙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현재 한반도를 짓누르고 있는 적대와 대결, 군사적 긴장과 안보 위협은 말할 것도 없고 평화정착을 통한 통일의 돌파구도 열 수가 없다.


한국 사회에는 근년 들어 6·25 전쟁을 잊지 말자는 담론이 위정자들의 사고에 편승하여 위세를 떨치고 있다. 그 분위기가 한때 존재하였던 화해협력 분위기를 대체해가고 있다. 혹여 화해와 관용의 정신이 증오와 적대의 마음자세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 이렇게 되면 그 지긋지긋한 전쟁을 어떻게 종결짓고 다시는 그런 전쟁을 예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분위기가 위축된다. 정부와 다른 차원의 대안적 사고를 해야 마땅한 한국 시민사회의 숙제라고 하겠다.


지난 정부도 그랬고 현 정부마저 통일을 무척 강조한다. 근래에는 독일 통일을 우리가 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정치사회적 분위기도 드높다. 통일을 강조하는 것이야 탓할 일이 못 되고, 다른 사례를 참고하자는 취지도 시비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통일이 평화정착이라는 어려운 단계를 건너뛰어 이루어지리라는 사고는 잘못된 것이고, 독일 사례만 하더라도 우리 같은 동족상잔의 참극을 겪지 않았다는 점은 반드시 지적되어야 할 일이다. 따라서 정부로서는 통일이 구두선에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현재의 정전협정체제를 어떻게 평화체제로 바꿀 것인가에 대한 깊은 전략적 고민이 있어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의 과제도 마찬가지다. 한반도 평화정착과 그 토대 위에 통일기반을 구축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가동되지 못하는 배경에 북핵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북핵문제 해결에 최소한의 진전이라도 있어야 비로소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생각인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년간 한 발언들을 곰곰이 따져볼 때 이런 짐작이 가능하다. 북핵문제는 남북 간의 대화와 협상은 말할 것도 없고 6자회담에 참여하고 있는 나머지 동북아 국가들 간의 대타협이 있어야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최소한 미-중 간의 전략적 타협이 전제되어야 할 일이다. 이 역시 정전협정을 종식시키고 평화체제로 가는 과제와 엮여 있다. 미국과 중국은 정전협정 체결 당사국들이고, 북핵문제는 북-미 적대관계의 산물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정전협정체제를 종식시키는 것은 실로 엄청난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지도자의 정치적 의지, 긴밀한 남북 간의 대화, 국제사회와의 공조가 요구된다. 지금 한반도의 남북과 동북아 지역에 이를 위한 분위기가 있느냐는 회의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대통령이 결단하면 가능하다. 마침 2007년 남북 정상 간의 ‘10·4 선언’에는 바로 이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 조항이 들어 있다.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남·북·미·중 4자 정상들이 만나서 종전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 선언이 정전협정체제를 곧장 끝낼 수는 없어도 한반도 평화정착을 본격 개시하는 정치적·상징적 출발이 될 것이다.


이수훈 경남대 교수·정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