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2012년 8월21일(화) 11시. 새누리당 당사 앞

 

 

 

[논평] 장준하선생의 의문사 진상규명 국가가 나서라

일제시기 학도군에 징집되었다가 탈출하여 광복군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에 참여하였고, 이후 독재정권에 반대하며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장준하 선생은 1975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사 당하였다.

당시 정권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일제의 군인으로 이후에는 군사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였다. 장준하선생은 박정희와 정반대의 삶을 살았고, 유신으로 무한정권유지를 꿈꿨던 박정희에게 장준하선생은 눈에 가시였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장준하선생의 의문사는 박정희에 의해 저질러진 살인이라는 것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는다.

선생의 죽음이후의 남은 가족들의 삶 또한 평탄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했던 큰아들은 멀리 타향으로 떠나야 했고, 남은 가족들은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이 땅의 많은 의문사 유가족들과 함께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였다.

선생의 의문사 진상규명은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를 통해 국가차원의 조사들이 진행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당시 안기부 등 국가정보기구들의 조사 비협조로 실체적 진상규명에는 이르지 못하고 말았다.

평생을 광복과 민주화에 헌신한 선생의 삶은 아직도 의문사라는 이유로 국가에 의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

선생의 묘지 이장 과정에서 나타난 외부 가격으로 추정되는 뒤쪽 두개골 함몰 검안 결과는 그동안 진상규명 과정에서 조사 된 어떤 사실보다 선생의 죽음이 타살의 흔적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제라도 국가가 나서서 장준하 선생의 의문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할 수 있는 조사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이 조사 기구에서는 37년간 비협조와 은폐로 일관했던 국가정보기구의 직권조사가 우선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장준하선생의 의문사 진상규명을 계기로 중단된 의문사와 과거 사건들의 진실규명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012년 8월 17일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 연대회의(추모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