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7.07 20:10수정 : 2014.07.07 22:10

“위자료는 유사사건 재발방지 위해
개인전력과 무관하게 산정해야
형평성 원칙에 어긋나지 않아”

국가기관의 양민학살 책임을 덜어준 항소심 판결에 대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학살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은 피해자의 ‘전력’ 등과 무관하게 결정돼야 한다는 취지다.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터지자 ‘이승만 대통령은 대통령 긴급명령 제1호인 ‘비상사태 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을 내렸다. ‘보도연맹사건’의 근거가 된 명령이다. 충남 공주 지역에서도 전향한 남로당원 등 국민보도연맹원들이 이 명령에 의해 공주형무소에 구금됐고, 그해 7월 집단 총살당했다. 1948년 여주·순천 사건 당시 반란군에 협조한 혐의로 공주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김아무개씨도 이들과 함께 학살당했다.


2010년 6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400명 이상의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이 공주형무소에서 학살당했다는 진실규명 결정(공주형무소 재소자 학살사건)을 했고, 이에 김씨의 아들 4명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2부(재판장 서창원)는 “당시 군·경은 상부의 지시를 받아 공주형무소에 수감된 김씨를 정당한 이유와 절차없이 비무장 무저항 상태에서 총살해 생명권과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숨진 김씨 본인에게 8000만원, 숨진 김씨의 부인에게 4000만원, 유가족인 4형제에게 각각 800만원의 위자료가 인정됐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민사1부(재판장 정종관)는 김씨 본인은 2000만원, 김씨 부인은 1000만원, 아들들은 200만원으로 위자료를 크게 ‘깎았다.’ 김씨의 좌익활동 경력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김씨는 이미 좌익활동으로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사람으로 북한 공산군의 수중에 넘어갔을 경우 자발적으로 부역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원고들에 대한 ‘빨갱이’ 자식이라는 낙인은 학살사건이 아닌 이전의 좌익활동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한국전쟁 당시는 정상적인 헌법체제의 유지와 권력행사방식을 고집할 수 없는 비상상황으로, 국가기관의 존립을 위해 노력하던 과정에서 발생한 불법행위를 평상시 국가기관에 의한 불법행위와 동일한 척도로 평가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고 했다.


대법원 3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원심이 정한 위자료 액수가 지나치게 적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7일 밝혔다. 재판부는 “국가기관에 의해 조직적, 의도적으로 중대한 생명침해 행위가 자행된 경우에는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예방할 필요성도 위자료 산정에 참작돼야 한다”며 “원심은 위자료 산정에 참작해야 할 사정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아, 형평의 원칙에 현저히 반한다”고 밝혔다.


익명을 바란 한 판사는 “서울고법의 항소심 판결은 근대 법치주의의 기본원리와도 충돌하는 위험한 내용을 담고 있다. 대법원이 편향된 판결을 바로잡아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