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완주)지역 국민보도연맹원 수백 명이 ‘황방산’과 ‘소리개재’에서 총살되었다는 주장이 있다.(진실화해위원회에는 1명 신청인이 있음)

 

전북지방경찰국 사찰과에 근무한 경찰관 전씨(당 30세)는 “각 경찰서에서 다루기 힘든 거물급들은 도경 유치장에 검속되어 있었고 전주경찰서에 구금되었던 예비검속자들도 대부분 도경으로 이송되었다. 도경 유치장은 12개 방이 있고 한 방마다 20~30명 정도 있었기 때문에 꽉 차면 350명까지 있었다. 도경 유치장에 구금되었던 보도연맹원들 중에는 여자들도 많이 있었고 그 중에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보도연맹원들은 구금기간 동안 조사를 받으면서 고문을 당하기도 했고, 여름철이라 덥고, 먹는 것이 부족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잤기 때문에 유치장 안에서 자연사한 사람이 많았다”라고 하였다.

 

그는 살해경위에 대해서 “초기에는 일선 경찰서에서 검속한 보도연맹원들 중 우두머리급들을 도경에서 인수했는데 후퇴가 임박해서는 이송시킬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일선에서 처리하였다. 처음에는 갑종들을 먼저 죽이고 후퇴할 무렵에는 다 죽였다. 도경 유치장에 있던 보도연맹원들 살해장소는 여러 곳인데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지휘관(사찰3계장 김병노)이 선정하였으며 주로는 야산이 많았던 완주군 동상면을 이용하였고 이외에도 정읍 내장산골목에서도 일부 죽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하였다.

 

한편, 전쟁 발발 당시 전주형무소 형무관으로 근무했던 이씨는 “전주지역 보도연맹원들은 전주시 화산동 소재 강당재, 전주시 효자동 일대, 완주군 상관면 일대, 완주군 동상면 일대, 전주시 덕진동 소재 건지산, 완주군 용진면 소리개재 등 주로 야산 골짜기에서 사살되었다.”라고 하였다.

 

희생시기는 남원, 임실지역에서 국민보도연맹원들이 희생된 1950년 7월 20일경으로 판단된다.

 

출처,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