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MB... <광주일지> 재출판 돼야"
[인터뷰④] <한국전쟁의 기원> 저자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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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기원>을 쓴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대가 브루스 커밍스(68) 미국 시카고대 교수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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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지>는 5·18민주화운동과 미국의 역할을 모르는 미국인들을 위해 만든 책이기 때문에 반드시 재출판되어야 한다."

 

<한국전쟁의 기원>을 쓴 한국현대사 연구의 권위자 브루스 커밍스(68) 미국 시카고대 교수의 말이다. <광주일지>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최초 기록물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영문 번역서다. 1999년 출판돼 미국, 캐나다 등 여러 대학에서 한국현대사 강의 교재로 채택돼 사용됐으며, 한국을 이해하기 위한 대표적인 필독서로 꼽혔지만 지난 2007년 출판사의 사정으로 절판됐다(관련기사 보기). 출판 당시 커밍스 교수가 장문의 서문을 써서 화제가 됐다.

 

커밍스 교수는 당시 서문에서 "의식 있는 미국인 또한 이 책을 읽어야 한다"며 "단순히 이 책이 한국 최근대사에 중대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만이 아니라, 광주의 비극이 워싱턴과 서울에 의해 자행되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커밍스 교수는 지난 17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도 "중국 천안문사태보다 한국이 심각했던 것은 미국이 그 독재 체제, 전두환 정권을 지원했다는 것"이라며 "광주 진압은 최악의 반미주의의 만연을 낳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명박 정부는 많은 문제에 대해 시계를 되돌리려 하고 있다"며 진실화해위원회 해체를 그 근거로 들었다. 

 

커밍스 교수는 지난해 뉴욕에서 시작된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와 관련 "시위대가 한 일은 미국의 정치 논쟁을 '불평등' 쪽으로 완전히 바꿔버렸다는 것"이라며 "'1%대 99%'는 올해 대선에 중요한 테마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980년 광주항쟁은 우익독재에 대항한 세계 최초의 대중 반란"

 

-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1985)의 영문 번역서 <광주일지>(1999)에 쓴 서문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천안문 사건'에 비유했는데.

"두 사건은 매우 유사하다. 광주나 천안문도 주변 도시로 퍼져 갔고, 중앙 정부의 대응은 폭력적이었다.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한국전쟁보다 광주항쟁이 한국사에서 더욱 중요한 사건이라고 믿는데, 중국 젊은이들도 천안문 항쟁이 중국 혁명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광주항쟁은 그들이 그들을 죽일 수 있는 독재 체제 하에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케 했다.

 

중국 천안문사태보다 한국 광주항쟁이 심각했던 것은 미국이 그 독재 체제, 전두환 정권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전두환이 실각한 후, 미국 관료들이 이러저러한 핑계를 댔지만, 사실 미국은 한국의 안정을 우선 과제로 삼고, 시위자들을 지지하지 않았다. 또한 본질적으로 이것이 부시 행정부의 천안문에 대한 대응이었다. 부시는 자신의 안보보좌관을 북경으로 보내 미중 관계는 아주 양호하다고 말했다.

 

이 두 사건에서 미국은 독재자와 관계를 유지했다. 적어도 천안문 진압은 중국 공산당의 책임이다. 그러나 광주 진압은 전두환과 미국의 공동 책임이다. 왜냐하면 미국이 자신의 작전지휘권 하의 한국군을 풀어줬기 때문이다. 광주 진압은 최악의 반미주의의 만연을 낳았다. 아들 부시 정권 때보다도 더 심각했다. 1980년대 중후반 서울거리를 걷다보면 거의 병영과 같았다. 전투경찰이 상주하고 있었고, 시위는 만연했다. 연세대학교는 실상 휴교 중이었고, 서울대와 고려대에서는 항상 시위가 있었다.

 

1987년 6월항쟁 때에는 대규모 도시 반란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정권을 물러나게 했다. 미국인들은 잘 모르지만, 광주항쟁은 한미 관계에 심각한 문제제기를 했고, 궁극적으로 승리했다. 전두환은 물러났고, 1995년에 전두환·노태우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15년이 걸렸지만, 이로서 '소외받았던' 호남인들이 승리했다. 천안문은 이런 식의 심판을 겪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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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기원>을 쓴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대가 브루스 커밍스(68) 미국 시카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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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한국의 민주항쟁과 2011년 아랍의 봄을 비교하자면?

"1980년 광주항쟁은 우익독재에 대항한 세계 최초의 대중 반란 중 하나였다. 그 후에 전 세계적으로 많은 우익독재가 무너졌다. 필리핀의 마르코스, 1987년 전두환, 그리고 중남미의 독재자들이 무너졌다. 그리고 동유럽에서는 1980년대 내내 폴란드 연대노조가 일어났고, 1989년에 이르러 체코슬로바키아, 동독에서 시위가 일어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동서의 민중운동이 많은 독재체제를 무너뜨렸다. 본질적으로 동일한 민중운동이었다. 거리에서 위력을 보여줬다.

 

아랍의 봄을 보자면, 아마도 기대하지 못했다. 그들이 1980년대의 대중운동으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았다고는 보지 않는다. 시위참여자가 1980년대에 태어나지도 않은 젊은이들이라 당시 사건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거리를 점거한다는 점에서 1980년대 운동과 양상이 비슷하다. 정권들의 대응은 다양하다. 튀니지에서는 요구가 수용됐고, 이집트에서는 수용되는 듯하다가 군부가 실권을 장악했다. 시리아는 매일 시위대에 발포를 한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를 예측하기는 쉬운 일은 아니다. 각각의 체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잊고 있는 점은 1980년대에 반공주의에 의해 베를린 장벽만이 붕괴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반독재 투쟁이 있었다는 것이다. 영국사학자 메리 칼도(Mary Kaldor)는 1980년대가 대중운동의 시기라고 했다." 

 

"'1%대 99%'는 올해 미 대선에 중요한 테마"

 

- 뉴욕에서 처음 시작된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은 어떤가?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은 아마도 아랍의 봄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아랍의 봄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러시아에서는 엄동설한에 푸틴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다.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은 현재 겨울이라 많은 사람들이 해산했다. 이들이 한 일은 미국의 정치 논쟁을 '불평등' 쪽으로 완전히 바꿔버렸다는 것이다. '1%대 99%'는 올해 대선에 중요한 테마가 될 것이다. 오바마는 이 시위대를 지지하고 나섰다.

 

우선 금융위기가 있었고, 오바마에 반대한 티파티 운동이 등장했다. 티파티의 주장은 정부가 개인의 삶에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개입은 나쁜 일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부자들이 원하는 대로 방치하라는 것이다. 이런 식의 논쟁을 일으키다가,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이 이를 종결시켜버렸다. 한마디로 현재는 '정부가 나쁘다'에서 '불평등이 나쁘다'로 바뀌었다. 이것이 대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오바마가 재선되기가 용이해질 것이다. 그러나 봄이 되면 어떻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더 많은 점거가 있을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영문본인 <광주일지>가 미국 현지 출판사의 사정으로 절판됐지만, 한국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이를 방관하고 있다. 게다가 교육과학기술부가 새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에 5·18민주화운동을 삭제하기로 해 반발을 사기도 했는데.             

"이명박 정부는 많은 문제에 대해 시계를 되돌리려 하고 있다. 진실화해위원회도 해체했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광주일지>의 절판은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한국전쟁의 기원>도 15년 만에 절판되었다. MB는 김대중이 틀렸다고 말한다. 한국의 일부 역사학자들도 한국전쟁에 대한 나의 입장이 틀렸고, 한국전쟁이 소련의 사주를 받은 남침이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시계를 다시 되돌리려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1~2년 전에 한 말이 있는데 아직도 유효한 것 같다. 이미 치약 튜브에서 너무 많은 치약이 나와버려 되담을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시계를 되돌리기는 불가능 할 것이다. 역사는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광주일지>는 5·18민주화운동과 미국의 역할을 모르는 미국인들을 위해 만든 책이기 때문에 반드시 재출판되어야 한다. 광주항쟁이든 여순사건이든 4·3제주항쟁이든 한국 역사에서 지워지기는 힘들 것이다. 역사의 시계를 되돌리려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커밍스는 누구?] "내 일생 중 가장 보고 싶은 건 남북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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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기원>을 쓴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대가 브루스 커밍스(68) 미국 시카고대 교수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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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마치 박물관 같네요."

 

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선 기자가 탄성을 지르자, 브루스 커밍스(69) 교수도 "박물관 같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며 맞장구를 친다. 높은 천장과 널찍하면서도 미로 같은 통로, 수십 년도 더 된 듯 한 가구와 그림들. 이어진 그의 말은 왜 기자가 '박물관'을 연상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이 직접 이 집을 설계했다는 것이다. 그제야 기자가 커밍스 교수를 만나기 위해 온 버지니아대학교가 토머스 제퍼슨이 정계에서 은퇴한 뒤인 1819년 건립됐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미 시카고대 석좌교수이자 역사학과 과장인 커밍스 교수는 미국 내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최고 권위자다. 그는 수업이 있는 주중 며칠만 시카고에 머물고 금요일부터 주말 내내 그의 아내가 있는 버지니아대학 학장 관사에서 지낸다. 그의 아내 우정은(메레디스 우 커밍스·53)씨는 한국계 여성 정치학자로 버지니아대 예술과학대학 및 대학원 학장이다. 커밍스 교수는 우정은씨와의 사이에 두 자녀를 두고 있다.

 

지난 17일(현지 시각) 커밍스 교수를 인터뷰하기 위해 뉴욕에서 자동차로 내리 8시간을 달려왔다. 커밍스 교수 역시 코네티컷주 등에서 학술회와 강연회를 마치고 막 집에 도착한 상태였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는 거침이 없었다. 특히 그의 답변은 그의 저서만큼이나 논란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의 표정은 자신감과 확신에 차 있었다.

 

커밍스 교수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그가 1968년 평화봉사단으로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한국에 오면서부터다. 미 콜롬비아대학으로 돌아와서는 베트남전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박사(동아시아 전공) 학위를 받고, 1981년 첫 저작이기도 한 <한국전쟁의 기원>을 출판하면서 한국학 학자로서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누가 방아쇠를 먼저 당겼느냐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한국전을 1945년 이후 해방공간에서 형성된 한국 내부의 모순에서 비롯된 '내전'으로 규정,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 비밀자료와 북한 노획문서 등 폭넓은 자료 발굴로 연구 주제, 시기, 영역 등을 대폭 확장한 것은 물론 기존의 친미-반공주의적 연구 접근법에서 탈피함으로써 한국전쟁 연구의 수준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던 그의 주장은 1980년대 대학가를 휩쓸었던 민주화, 통일, 반미 운동과 맞물리면서 거세게 확산됐다. 그러나 '남침 유도설' 또는 '남침 묵인설'로 오인돼 북한의 남침을 믿는 보수파들로부터 비판을 받았고, 1980년대 공안당국의 '금서' 목록에도 올랐다. 또한 기존의 전통주의 시각은 물론 냉전 해체 이후 새롭게 발견된 자료들을 기반으로 한 주장들로부터도 공격을 받으며 줄곧 논쟁의 대상이 됐다.

 

한국 현대사를 진보적 시각에서 파헤쳐온 그는 한반도내 미국의 역할을 비판적으로 다루면서 주한미군 철수, 광주민주화운동 미국 개입설 등을 주창, 국내 사회과학계로부터도 지속적인 관심을 받아왔다.

 

그는 2시간에 걸친 인터뷰에서도 스스로를 '반미주의자'라고 부를 정도로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에 대해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아무런 성과도 없이 적대심만 쌓았다"고 성토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남한의 우익에게는 미안한 소리이지만, 난 아주 오래 살 것 같다"며 "내 두뇌가 작동하는 한 계속 한국전쟁을 연구하고 싶다"고 우스갯소리도 잊지 않았다. 그는 특히 "내가 정말 일생 중에 보고 싶은 것은 남북통일"이라고 강조했다.

 

저서로는 <전쟁과 TV>(1993), <한국현대사>(1997), <양지 속의 한국>(1997),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2001년, 김동노 역), <김정일 코드:브루스 커밍스의 북한>(2005년, 남성욱 역> 등이 있다. 그는 2010년에 발간한 <한국전쟁> 서두에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헌정한다"라고 적어 김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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